당 총재 시대가 끝난 것은 2002년이다. 새천년민주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들들의 비리 의혹으로 탈당하자 총재직을 없앴다. 한나라당도 이회창 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하면서 총재 명패를 내려놨다. 총재의 힘은 ‘제왕적’이란 말 그대로 막강했다. 당과 총재의 운명은 한묶음, 즉 ‘인계철선(引繼鐵線)’이었다. 총재가 당을 만들기도 쪼개기도 했다. 웬만해선 책임질 일이 없었다. 대선에서 지면 잠시 물러가 있다가 다시 등장하면 그만이었다.

당 대표는 공천권 등 상당한 권한을 갖고 있었지만, 제왕적 총재와는 비교가 안 됐다. 선거 패배 등 툭하면 정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지난 10년간 임기 2년을 채운 주요 정당 대표는 몇 안 된다. 대표직이 ‘독이 든 성배’에 비유될 정도다. 정당정치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고 볼 수 있지만 제왕적 시절에 비해 탈(脫)권위 쪽으로 진전한 것은 확실하다.

검찰의 칼날 끝에 서 있는 이재명 대표가 위기다. 검찰이 가지를 치고 몸통인 이 대표를 향하자 더불어민주당은 ‘결사옹위’를 외치고 있다. 국정감사도, 예산안 시정연설도 안중에 없다. 이 대표와 민주당의 일체화에 대해 당내에서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조응천 의원은 ‘인계철선’을 거론하며 “대표를 건드리면 당 전체가 끌려 들어가고, 대여 전면전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김해영 전 의원은 이 대표 사퇴를 요구했지만, 이런 목소리는 찻잔 속 미풍에 불과하다.

한 중진 의원은 “이 대표 의혹은 당과 무관한 개인 일인데도 당력을 쏟아 방탄에 나서면 공도동망(共倒同亡)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또 다른 의원은 “대선 패배 주역이 선거가 끝나자마자 방산 주식을 사는 게 정상이냐”고 불만을 터뜨리면서도 마찬가지 주문을 했다. 팬덤 ‘개딸’이 무서워서다.

지금 민주당은 이 대표 한 명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 이미 대표 경선 때 이 대표에게 유리하게 룰을 바꾼 데 이어 ‘부패 혐의 기소 땐 당직 정지’ 당헌도 개정했다. “감옥 가도 이재명 대표직 사수”를 외친다. 제왕적 총재가 부러워할 지경이지만, ‘이재명=민주당’ 인계철선은 우리 정치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