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찬 한국경제신문 기자가 충북 충주 시그너스CC 라미 코스 7번홀에서 티샷하고 있다.  충주=이솔 한경디지털랩 기자
조희찬 한국경제신문 기자가 충북 충주 시그너스CC 라미 코스 7번홀에서 티샷하고 있다. 충주=이솔 한경디지털랩 기자
충북 충주는 골프장 입지로는 그저 그런 편이다. 서울 인천 등 수도권에 사는 아마추어 골퍼들이 가기엔 거리가 부담이다. 경기 동남부와 강원 서남부, 충북에선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지만, 골프 인구가 수도권처럼 많지 않다. 이 지역 골프장들이 손님 유치에 골머리를 앓아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에도 그랬고, 코로나19 유행이 끝나가는 요즘도 그렇다.

시그너스CC는 예외다.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전국의 아마추어 골퍼들이 찾는다. 세 가지 이유에서다. 먼저 위치. 여주IC에서 15분 거리다. 서울에서 출발하면 경기 여주에 있는 골프장 가는 데 걸리는 시간과 별 차이가 안 난다. 두 번째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여주IC 인근 골프장에 비해 페어웨이나 그린 상태가 그리 떨어지지 않는데도 충청권이란 이유로 그린피가 싸다. 세 번째는 인지도다. 김구라의 ‘뻐꾸기 골프’와 박세리의 ‘세리머니클럽’ 등을 촬영하면서 어느새 ‘유명 골프장’이 됐다.

한 달 전 취재차 시그너스CC를 방문했을 때도 ‘풀부킹’이었다. “충청권 골프장을 시작으로 ‘코로나 특수’가 끝나기 시작할 것”이란 전망을 도대체 누가, 어떤 근거로 했는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안고 코스를 돌았다.

○‘2온’ 가능한 515m 파5홀

라미 코스 7번홀(파5)은 시그너스CC의 시그니처 홀이다. 앞선 1~6번홀에 비해 난이도가 급격하게 올라간다. 일단 길다. 블루티 535m, 화이트티 515m, 레드티 463m다. 잘 맞아야 220m 정도 날아가는 기자의 드라이버 샷으론 ‘2온’은 불가능한 거리다.

게다가 ‘ㄱ’자로 휘어진 도그레그 홀인 탓에 티잉 구역에선 그린이 보이지 않는다. 페어웨이 우측에는 30m 높이의 폭포가 벽을 치고 있다. 티잉 구역에서 폭포까지 거리는 250m. 이렇게 멀찌감치 떨어졌는데도 캐디는 “1년에 폭포 안에서만 약 1000개의 골프공을 수거한다”고 했다. 티잉 구역에 서면 ‘이 홀을 무사히 끝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박순경 시그너스CC 고문은 “보기보다 내리막 경사가 심하기 때문에 드라이버로 평소 220m를 보낼 수 있으면 충분히 2온 할 수 있다. 왼쪽으로 나무를 보고 지르면 지름길”이라고 했다.

1996년 남강CC(당시 18홀)로 문을 연 이 골프장은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고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2001년 인수하면서 시그너스CC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그런 인연으로 노 대통령도 이 골프장을 자주 이용했다. 2000년 골프에 본격 입문한 것으로 알려진 노 대통령은 “골프는 참 재미있는 운동”이라고 자주 얘기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이 재임 시절 골프장 건설 규제를 완화하는 등 골프 대중화 정책을 내놓는 데 시그너스CC가 한몫한 셈이다.

강 회장은 2005년 9홀을 추가해 27홀짜리 골프장으로 키웠고, 각 코스에 라미, 실크, 코튼 등 섬유소재 이름을 붙였다. 강 회장이 2012년 세상을 뜬 뒤 경영은 아들 강석무 대표가 맡고 있다.

○위협적인 그린 앞 낭떠러지

경쾌한 타구음과 함께 묵직한 손맛이 느껴졌다. 쭉 뻗어나간 공은 내리막을 타고 홀에서 195m 떨어진 지점에 멈춰섰다. 두 번째 샷을 그린에 올리려면 두 개의 장애물을 피해야 한다. 페어웨이 한가운데 있는 소나무와 그린 앞을 지키고 있는 해저드다. 캐디는 “내리막 경사인 만큼 조금만 잘못 쳐도 해저드에 빠질 수 있다”며 3온 전략을 권했다.

듣지 않았다. ‘모 아니면 도’란 심정으로 3번 우드를 꺼냈다. 힘이 들어갔는지, ‘뒤땅’이 났다. 마치 끊어간 것처럼 빗맞은 공은 해저드 바로 앞에 떨어졌다. ‘하늘이 돕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질긴 중지 러프에 공이 걸렸지만. 시그너스CC는 티잉 구역에 켄터키 블루 글래스, 페어웨이와 러프에 중지(조이시아), 그린에 벤트 그래스를 심었다.

해저드는 약 10m 깊이로 파여 있는 그래스 벙커로 낭떠러지에 가까웠다. 그 아래에 얕은 물웅덩이가 입을 벌리고 있다. 박 고문은 “공이 물에 빠지지 않으면 많은 골퍼가 밑에 내려가 공을 치는데, 별로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아니다”며 “10명 중 9명은 탈출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도 공이 살아 있는데, ‘언플레이어블’을 선언할 수는 없는 터. 내려갔다. 그린까지 남은 거리는 30m에 불과했지만, 깃대는 보이지 않았다. 대충 잡은 방향대로 56도 웨지로 걷어 올렸다. 그린 위로 올라서니, 공은 홀 옆 3m 정도에 서 있었다. 투 퍼트. 파였다.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하며 다음 홀로 걸어가는데, 저 멀리 오리 가족이 눈에 들어왔다. 박 고문은 “농약 사용을 줄이기 위해 오리를 풀어 벌레를 잡는다”고 했다. 사과와 배, 각종 채소를 코스 곳곳에 심은 것도 골프장에선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충주=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