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 정년퇴직자도 대부분 건강
멀쩡한 은퇴자, 젊은 노인 많아
연금법, 노인기준 등 바꿔
더 오래 일하도록 하는게
고령자를 제대로 위하는 것
서화동 논설위원
지금은 60세에 정년퇴직하는 이들도 대부분 아저씨 느낌 그대로다. 각종 운동과 취미활동으로 젊은이 못잖은 체력을 자랑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2020년의 건강수명(유병기간을 제외한 기대수명)은 66.3세, 주관적으로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기대수명은 71.0세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건 좋은데 제도가 현실을 반영하지 않아서 문제다. 달라진 인구 현실에 맞게 신속하게 법을 바꾸고 제도를 손질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시급한 개혁과제로 대두된 국민연금도, 고령자 건강보험 진료비 급증도, 노인 기준 연령 문제도 달라진 인구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탓이 크다. 국민연금만 해도 그렇다. 2018년 연금재정 계산 때는 2057년에 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추산했지만 고령화가 빨라지면서 2~3년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평균수명이 늘고 노인 인구가 급증해서다.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4%를 넘는 고령사회를 지나 2025년이면 이 비율이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이태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인구구조대응연구팀장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도입된 1988년 기준 수급 개시연령인 60세의 기대여명은 18년이었으나 현재 수급 개시연령인 62세의 기대여명은 24년으로 6년이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더 내고 덜 받는’ 식의 모수개혁만으로는 한계가 뻔하지 않겠는가. 더구나 연금이 노후생활의 실질적 버팀목이 되려면 소득대체율도 높여야 한다. 그러자면 멀쩡한 은퇴자, 젊은 노인들에게 더 오래 일하고 더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연금보험료 내는 기간과 연금 수급 개시연령은 65세 이후로 확 미루고, 은퇴 후 연금을 받기까지 생기는 몇 년간의 소득 공백(크레바스)이 없도록 둘을 일치시켜야 한다. 일본과 프랑스는 이런 식의 연금개혁을 추진한다는 소식이다. 일본은 연금 납부기간을 64세까지로 5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고, 프랑스는 연금 수급 개시연령을 현행 62세에서 65세까지로 늘려나가는 방안을 내년부터 실시할 계획이다.
건강보험 재정 문제도 마찬가지다. 정부에 따르면 건강보험은 내년에 1조4000억원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매년 적자폭이 커지면서 2028년에는 적립금이 바닥날 거라고 한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부터 보장성을 강화한 탓이 큰데, 고령화로 인해 건강보험료를 내는 사람은 줄고 병원 이용량은 늘어난 결과다. 올 상반기 건보 적용 인구 중 만 65세 이상은 16.6%인데 이들이 이용한 건보 진료비는 전체의 42%를 넘는다. 게다가 동네병원에서 노인들이 진료비 할인받은 것을 매년 건보 재정에서 내주는 게 5000억원에 이른다.
결국 ‘노인’의 법적 기준이 문제다. 늘어난 평균수명을 반영하지 못하는 국민연금법, 국민건강보험법, 노인복지법, 노인장기요양법, 고령자고용법(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등을 인구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65세를 기준으로 요금 면제 또는 할인 혜택을 주는 지하철, 기차, 고궁, 국공립 박물관·공연장 등도 마찬가지다.
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면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망친다. 심각한 저출생으로 젊은 인구는 줄고 노동력이 모자라는데, 노인 비율은 늘기만 한다. 그런데 노인들 중에는 ‘젊은 노인’ ‘멀쩡한 노인’이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 더 오래 일하고 더 오래 세금을 내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자면 고령자 재고용, 정년 연장 또는 폐지 등 고령자 고용 확대를 위한 제도적 정비가 필수적이다. 여러 법이 걸린 만큼 범정부적으로 논의해서 신속하게 결론을 낼 필요가 있다. 고령자 고용을 늘린다고 젊은 층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고령자가 일하도록 하는 것이 국가적으로도 이득일 뿐만 아니라 젊은 층의 노인 부양 부담을 덜어주는 길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연금개혁을 천명하면서 “더 오래 살수록 더 오래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노인들이 가급적 오래 일하도록 하는 게 초고령사회에 고령자를 제대로 대우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