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엔 관심 없다, 고객 문제에 집중한다"…CVC 5인 최고의 투자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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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벤처투자 시장에서 대기업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이 활동 보폭을 넓히고 있습니다. 투자 혹한기에 재무적 투자자(FI)인 일반 VC의 운신 폭이 더욱 좁아져서인데요. 지금의 CVC 열기가 스치는 바람이 되지 않기 위해선 장기적인 투자 안목이 필요합니다. 긱스(Geeks)가 국내 CVC를 이끌어가고 있는 5인에게 각각 내 인생 최고의 투자를 물었습니다.
①이종훈 엑스플로인베스트먼트 대표
=서비스 로봇의 구글, 베어로보틱스 이종훈 엑스플로인베스트먼트 대표는 국내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분야에서 입지가 탄탄하다. 2007년 SK그룹 계열 투자사인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서 '오픈이노베이션 펀드'를 만들었으며 이후 국민대 창업벤처 글로벌대학원 조교수와 롯데벤처스 투자본부장을 지내며 창업보육부터 초기 투자까지 스타트업 생태계를 두루 경험했다. 올해 GS건설의 신설 CVC인 엑스플로인베스트먼트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이 대표의 주요 포트폴리오는 2020년 초 롯데벤처스에서 투자한 베어로보틱스다. 그는 2018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우연히 하정우 베어로보틱스 대표를 만나 인간적인 면모를 먼저 알아봤다. 이 대표는 "일자리를 빼앗는 게 아니라,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게 해주려는 창업자의 애정이 제품에 드러나있다"며 "서비스 로봇의 구글을 만들겠다는 그의 포부를 응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음식 서빙 로봇을 개발한 베어로보틱스는 롯데그룹의 식음료 매장에서 최초로 실증을 거쳐 솔루션 데이터를 쌓았다. 투자 당시 400억원의 기업가치를 평가받았던 베어로보틱스는 차기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으로 손꼽힌다.
한우 숙성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 한우연도 CVC 투자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그는 "대기업이 절대 건드릴 수 없는 민감한 문제를 스타트업은 해결할 수 있다"며 "농협도 풀지 못했던 마블링을 기준으로 한 한우 등급제를 이런저런 눈치 볼 필요가 없는 한우연이 단숨에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CVC가 투자할 때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활용하는 게 아니라 스타트업이 대기업을 이용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성공한다"고 역설했다. 모기업의 리소스를 잘 빼먹고 활용하는 스타트업이 '효자'라는 설명이다.
2007~2008년에도 CVC 바람이 불었다. 그는 "지금 다시 포모(FOMO)처럼 CVC가 생겨나고 있다"며 "대기업 오너의 관심과 지원에 기반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CVC를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②신성우 현대차 CVC팀 상무
=대체 불가능 기술 보유한 슈어소프트테크 신성우 현대차 CVC팀 상무는 최근 성과를 거둔 투자처로 슈어소프트테크를 꼽았다. 슈어소프트는 안전 검증 소프트웨어 회사로 내년 스팩을 통한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다. 자동차 국방 에너지 분야에서 다양한 고객 요구사항을 코딩으로 구현하고 단위, 통합,시스템 시험 등 단계를 거쳐 소프트웨어 안전성을 확보한 회사다. 신 상무는 "현대차 연구소의 소개로 슈어소프트테크에 투자하게 됐다"며 "대안이 없는 기술력을 보유한 회사"라고 평가했다.
2010년 도요타의 리콜 사태 이후 슈어소프트가 자체 개발한 '코드 스크롤'이 시장의 관심을 끌며, 2012년 현대차로부터 15억원 투자받았다. 올해 상반기 기준 현대차 지분율은 15.89%로 3대 주주다. 최근엔 소형모듈러 원전(SMR) 대표기업인 뉴스케일에 슈어소프트 기술이 적용되는 성과를 이뤘다.
신 상무는 현대모비스 연구소 출신으로 중국 상해 CEIBS에서 MBA를 마치고 SK이노베이션에서 중국 M&A를 담당하기도 했다. 2011년 현대차 CVC팀에 합류했다.
대기업 CVC 중에선 현대차와 삼성전자가 '맏형'이다. 현대차는 2000년 4월부터 사내에서 CVC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17년 이후 500억원 미만 투자 규모에 대해 전결권이 주어지면서 투자가 활발해졌다. 직접 투자한 사례는 100건, 공동 운용(GP)까지 포함하면 200건에 달한다.
현대차는 사내벤처의 스핀오프 사례가 이어지자 엑셀러레이터 역할을 하는 제로원을 별도로 만들었다. 외부 시드 단계의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예술가, 디자이너, 과학자 등 창의인재를 육성하는 기능도 담당한다.
현대차 CVC팀은 여느 VC처럼 수익률 자체가 목표인 것은 아니다. 신 상무는 "CVC는 문제 해결이 목표"라며 "VC의 게임보다 모빌리티를 사용하는 고객의 문제를 푸는 게 더 재밌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빌리티는 인공지능(AI) 소재기술 같은 딥테크부터 서비스까지 라이프 스타일 모두 포함한다"며 "고객의 페인 포인트를 해결하기 위한 투자를 하는 게 CVC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③이성화 GS리테일 상무
=CVC 최고의 선순환 이룬 몰로코 이성화 GS리테일 상무는 인생 최고의 투자로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몰로코를 꼽았다. GS리테일은 2019년 몰로코에 72억원을 투자했다. 몰로코는 구글 엔지니어 출신인 안익진 대표가 2013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회사다. AI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해 고객사가 온라인 광고로 수익을 내도록 돕는 애드테크 스타트업이다. 한국인이 미국에서 창업한 회사 중 첫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반열에 올랐다.
이 상무가 주목한 건 GS리테일과의 시너지다. 당시 GS리테일(전 GS홈쇼핑)은 AI를 활용해 온라인몰 내 알고리즘을 고도화하려던 중이었다. 종합 몰의 특성상 카테고리가 복잡하게 나뉘어있었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선 AI를 활용한 머신러닝 기술이 필수라고 판단했다. 이 상무는 "미팅 때 이런 얘기를 했더니 본인들이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당차게 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회상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몰로코의 지원사격을 받은 GS리테일의 쇼핑몰 GS SHOP은 광고비 대비 매출액(ROAS)이 4000%까지 상승했다. 플랫폼 이용자들의 행동과 구매 이력을 바탕으로 앱 화면에 가장 적절한 제품을 띄워주면서 얻은 성과다. 이 상무는 "CVC로서 투자금을 집행해주고, 그룹은 투자기업과 시너지를 내고, 투자기업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파일럿 플랫폼을 내줬다"며 "CVC가 투자를 통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진 셈"이라고 설명했다.
재무적 성과도 최고였다는 평가다. GS리테일이 투자한 이후 3년 만에 몰로코의 기업가치는 20배 넘게 뛰었다. 향후 기업공개(IPO)에 나설 경우 GS리테일은 최대 50배의 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이 상무의 예상이다.
이 상무는 CVC의 주 역할론으로 그룹의 신사업을 찾아내는 것을 꼽았다. 이를테면 GS리테일은 핏펫, 어바웃펫, 펫프렌즈, 바램시스템 등 다양한 펫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펫 산업을 새 먹거리로 낙점한 셈이다. 그는 "그동안 펫테크 분야는 시장 잠재력은 컸지만 사업모델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며 "반려동물 헬스케어부터 용품 커머스, 사료 등 다양한 분야가 사업으로 확장될 수 있는 만큼 미리 씨를 뿌려놓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산업의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것도 CVC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보고 있다. 펫이라는 주제(Theme)에 맞춰 생겨나는 다양한 산업군 가치사슬의 중심에 서겠다는 뜻이다. 이 상무는 "펫 스타트업에 처음 투자할 땐 '반려동물'이라는 주제 하에 분양, 간식, 의료, 장례 등 다양한 사업모델을 가진 회사들의 지도를 그려놓고 심사역들이 모든 회사들을 일일이 만나고 다녔다"며 "이런 과정을 통해 산업의 '파이'를 스타트업과 함께 키워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④임정민 시그나이트파트너스 상무
=창업자의 진심이 느껴지는 데이원컴퍼니 임정민 시그나이트파트너스 상무는 성인 대상 교육 콘텐츠 스타트업 데이원컴퍼니를 빛났던 투자 사례로 들었다.
데이원컴퍼니는 온라인 교육 플랫폼 '패스트캠퍼스' 운영사다. 직무 교육, 기업 대상(B2B) 교육, 외국어 교육, 취업 특화 교육 등 성인 이용자에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시그나이트파트너스는 지난 4월 데이원컴퍼니의 시리즈D 투자 라운드에 참여한 바 있다.
임 상무는 데이원컴퍼니의 창업자인 박지웅 대표에 주목했다. 그는 박지웅 대표가 스톤브릿지캐피탈 심사역이던 시절부터 친분이 있었다. 박 대표의 '워커홀릭' 기질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 연쇄 창업을 거치며 여러 번 실패를 경험했다는 점도 높이 샀다. 임 상무는 "잠을 줄여가며 일할 정도로 일에 '진심'인 사람"이라며 "10개 넘는 회사를 창업하면서 조직을 이끌어가는 능력도 검증됐다"고 말했다.
친환경 여성용품 스타트업 라엘 역시 임 상무가 애정하는 포트폴리오사다. 프로젝트 펀드를 통해 올 초 260억원을 투입했다. 2016년 미국에서 한국인 여성 3인방이 창업한 라엘은 아마존에서 생리대 분야 판매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임 상무는 구글 캠퍼스 서울 총괄 재직 당시인 2017년부터 라엘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라엘이 시드(초기) 단계 투자를 받을 때였다. 그는 "미국에서 소수집단인 동양 여성들이 여성용품 분야를 혁신하며 시장을 장악한다는 게 큰 도전으로 여겨졌음에도 보란듯이 성공한 회사"며 "라이프스타일에 초점을 맞춘 신세계그룹과도 '핏'이 잘 맞았다"고 설명했다.
시그나이트파트너스는 재무적투자자(FI)와 전략적투자자(SI)의 성향을 동시에 띤다. 알토스벤처스 같은 톱티어의 순수 VC의 길을 가면서도 신세계그룹이라는 브랜드를 활용해 투자기업의 기업가치를 강화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시그나이트파트너스는 주요 투자 분야를 'WHERE'로 나눴다. 업무방식을 효율화하는 회사(Work), 헬스케어(Healthcare), 교육(Education), 전자 상거래 등 리테일테크(Retail),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등이다.
임 상무는 또 시그나이트파트너스만의 강점으로 투명한 의사소통 구조를 내세웠다. '개인 플레이' 성향이 짙은 벤처투자업계에서 조직이 투자 과정을 다함께 공유해 더 나은 의사결정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그는 "심사역들이 서로 뭐가 부족한지, 동료들은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고 있는지 등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며 "덕분에 새로 합류한 인력이 빠르게 조직에 적응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라고 했다.
⑤배준성 롯데벤처스 상무
=미래 트렌드에 적중한 레티널 배준성 롯데벤처스 상무는 증강현실(AR) 글라스 제조기업 레티널을 가장 CVC다운 투자로 꼽았다. 레티널은 구글 글라스,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그램과 경쟁하는 국내 순수 스타트업으로 이제 막 양산체제를 구축했다. 바늘구멍 사진기의 핀홀 효과에 착안해 AR 광학렌즈를 개발했다. 올해 말부터 매출이 본격화될 예정이다.
배 상무는 "김재혁 하정훈 공동창업자가 고등학생 때의 아이디어를 사업화로 실현하고 전공 석박사가 아닌데도 시제품까지 완성한 회사"라고 평가했다. 롯데벤처스는 2020년 500억원 기업가치로 평가받을 때 레티널에 투자했으며, 현재 5000억원에서 1조원까지 기업가치를 기대하고 있다.
배 상무가 레티널 투자를 결정했을 때만 해도 모회사와 전격적인 시너지를 예상한 것은 아니다. 롯데월드나 롯데택배 물류센터와의 협업을 염두에 둔 정도였다. 하지만 지난해 롯데그룹이 전사적으로 메타버스 사업에 돌입하면서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됐다.
배 상무는 "당장 모회사와의 사업 시너지에만 집중할 경우 새로운 트렌드에 대응이 늦는다"며 "많은 부분은 모회사와의 전략적 방향에 맞춰서 투자를 진행하고 있지만 CVC 스스로 미래 트렌드에 대비하는 투자를 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감한 투자 결정도 재무적 투자자(FI)와의 차별점으로 꼽았다. 수산물 제조업체 얌테이블은 재무적 관점에서만 보고 일반 VC들은 투자를 주저했다. 하지만 롯데백화점에 입점해 이미 성과를 냈고, 모회사와 유통이라는 연결 고리가 있다는 점에서 CVC로서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다.
배 상무는 1993년 KAIST 전산과를 졸업했다. 한국 IBM, 삼성SDS를 거쳐 딜로이트에서 전략컨설팅을 담당했으며 물류 자동화 중견기업 SFA의 전략기획부서에서 일했다. 10년 전쯤 롯데그룹에 몸담았으며 4년 전 롯데 지주회사에서 롯데벤처스로 자원해 CVC로 활약 중이다. 그는 "딥테크 한무물만 판 게 아니라 전문성이 없는 게 아닌가 고민한 적도 있다"며 "하지만 IT부터 컨설팅 제조업까지 다양한 산업을 경험한 것이 지금 스타트업을 투자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허란/김종우 기자 why@hankyung.com
=서비스 로봇의 구글, 베어로보틱스 이종훈 엑스플로인베스트먼트 대표는 국내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분야에서 입지가 탄탄하다. 2007년 SK그룹 계열 투자사인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서 '오픈이노베이션 펀드'를 만들었으며 이후 국민대 창업벤처 글로벌대학원 조교수와 롯데벤처스 투자본부장을 지내며 창업보육부터 초기 투자까지 스타트업 생태계를 두루 경험했다. 올해 GS건설의 신설 CVC인 엑스플로인베스트먼트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이 대표의 주요 포트폴리오는 2020년 초 롯데벤처스에서 투자한 베어로보틱스다. 그는 2018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우연히 하정우 베어로보틱스 대표를 만나 인간적인 면모를 먼저 알아봤다. 이 대표는 "일자리를 빼앗는 게 아니라,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게 해주려는 창업자의 애정이 제품에 드러나있다"며 "서비스 로봇의 구글을 만들겠다는 그의 포부를 응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음식 서빙 로봇을 개발한 베어로보틱스는 롯데그룹의 식음료 매장에서 최초로 실증을 거쳐 솔루션 데이터를 쌓았다. 투자 당시 400억원의 기업가치를 평가받았던 베어로보틱스는 차기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으로 손꼽힌다.
한우 숙성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 한우연도 CVC 투자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그는 "대기업이 절대 건드릴 수 없는 민감한 문제를 스타트업은 해결할 수 있다"며 "농협도 풀지 못했던 마블링을 기준으로 한 한우 등급제를 이런저런 눈치 볼 필요가 없는 한우연이 단숨에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CVC가 투자할 때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활용하는 게 아니라 스타트업이 대기업을 이용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성공한다"고 역설했다. 모기업의 리소스를 잘 빼먹고 활용하는 스타트업이 '효자'라는 설명이다.
2007~2008년에도 CVC 바람이 불었다. 그는 "지금 다시 포모(FOMO)처럼 CVC가 생겨나고 있다"며 "대기업 오너의 관심과 지원에 기반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CVC를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②신성우 현대차 CVC팀 상무
=대체 불가능 기술 보유한 슈어소프트테크 신성우 현대차 CVC팀 상무는 최근 성과를 거둔 투자처로 슈어소프트테크를 꼽았다. 슈어소프트는 안전 검증 소프트웨어 회사로 내년 스팩을 통한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다. 자동차 국방 에너지 분야에서 다양한 고객 요구사항을 코딩으로 구현하고 단위, 통합,시스템 시험 등 단계를 거쳐 소프트웨어 안전성을 확보한 회사다. 신 상무는 "현대차 연구소의 소개로 슈어소프트테크에 투자하게 됐다"며 "대안이 없는 기술력을 보유한 회사"라고 평가했다.
2010년 도요타의 리콜 사태 이후 슈어소프트가 자체 개발한 '코드 스크롤'이 시장의 관심을 끌며, 2012년 현대차로부터 15억원 투자받았다. 올해 상반기 기준 현대차 지분율은 15.89%로 3대 주주다. 최근엔 소형모듈러 원전(SMR) 대표기업인 뉴스케일에 슈어소프트 기술이 적용되는 성과를 이뤘다.
신 상무는 현대모비스 연구소 출신으로 중국 상해 CEIBS에서 MBA를 마치고 SK이노베이션에서 중국 M&A를 담당하기도 했다. 2011년 현대차 CVC팀에 합류했다.
대기업 CVC 중에선 현대차와 삼성전자가 '맏형'이다. 현대차는 2000년 4월부터 사내에서 CVC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17년 이후 500억원 미만 투자 규모에 대해 전결권이 주어지면서 투자가 활발해졌다. 직접 투자한 사례는 100건, 공동 운용(GP)까지 포함하면 200건에 달한다.
현대차는 사내벤처의 스핀오프 사례가 이어지자 엑셀러레이터 역할을 하는 제로원을 별도로 만들었다. 외부 시드 단계의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예술가, 디자이너, 과학자 등 창의인재를 육성하는 기능도 담당한다.
현대차 CVC팀은 여느 VC처럼 수익률 자체가 목표인 것은 아니다. 신 상무는 "CVC는 문제 해결이 목표"라며 "VC의 게임보다 모빌리티를 사용하는 고객의 문제를 푸는 게 더 재밌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빌리티는 인공지능(AI) 소재기술 같은 딥테크부터 서비스까지 라이프 스타일 모두 포함한다"며 "고객의 페인 포인트를 해결하기 위한 투자를 하는 게 CVC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③이성화 GS리테일 상무
=CVC 최고의 선순환 이룬 몰로코 이성화 GS리테일 상무는 인생 최고의 투자로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몰로코를 꼽았다. GS리테일은 2019년 몰로코에 72억원을 투자했다. 몰로코는 구글 엔지니어 출신인 안익진 대표가 2013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회사다. AI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해 고객사가 온라인 광고로 수익을 내도록 돕는 애드테크 스타트업이다. 한국인이 미국에서 창업한 회사 중 첫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반열에 올랐다.
이 상무가 주목한 건 GS리테일과의 시너지다. 당시 GS리테일(전 GS홈쇼핑)은 AI를 활용해 온라인몰 내 알고리즘을 고도화하려던 중이었다. 종합 몰의 특성상 카테고리가 복잡하게 나뉘어있었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선 AI를 활용한 머신러닝 기술이 필수라고 판단했다. 이 상무는 "미팅 때 이런 얘기를 했더니 본인들이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당차게 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회상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몰로코의 지원사격을 받은 GS리테일의 쇼핑몰 GS SHOP은 광고비 대비 매출액(ROAS)이 4000%까지 상승했다. 플랫폼 이용자들의 행동과 구매 이력을 바탕으로 앱 화면에 가장 적절한 제품을 띄워주면서 얻은 성과다. 이 상무는 "CVC로서 투자금을 집행해주고, 그룹은 투자기업과 시너지를 내고, 투자기업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파일럿 플랫폼을 내줬다"며 "CVC가 투자를 통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진 셈"이라고 설명했다.
재무적 성과도 최고였다는 평가다. GS리테일이 투자한 이후 3년 만에 몰로코의 기업가치는 20배 넘게 뛰었다. 향후 기업공개(IPO)에 나설 경우 GS리테일은 최대 50배의 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이 상무의 예상이다.
이 상무는 CVC의 주 역할론으로 그룹의 신사업을 찾아내는 것을 꼽았다. 이를테면 GS리테일은 핏펫, 어바웃펫, 펫프렌즈, 바램시스템 등 다양한 펫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펫 산업을 새 먹거리로 낙점한 셈이다. 그는 "그동안 펫테크 분야는 시장 잠재력은 컸지만 사업모델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며 "반려동물 헬스케어부터 용품 커머스, 사료 등 다양한 분야가 사업으로 확장될 수 있는 만큼 미리 씨를 뿌려놓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산업의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것도 CVC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보고 있다. 펫이라는 주제(Theme)에 맞춰 생겨나는 다양한 산업군 가치사슬의 중심에 서겠다는 뜻이다. 이 상무는 "펫 스타트업에 처음 투자할 땐 '반려동물'이라는 주제 하에 분양, 간식, 의료, 장례 등 다양한 사업모델을 가진 회사들의 지도를 그려놓고 심사역들이 모든 회사들을 일일이 만나고 다녔다"며 "이런 과정을 통해 산업의 '파이'를 스타트업과 함께 키워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④임정민 시그나이트파트너스 상무
=창업자의 진심이 느껴지는 데이원컴퍼니 임정민 시그나이트파트너스 상무는 성인 대상 교육 콘텐츠 스타트업 데이원컴퍼니를 빛났던 투자 사례로 들었다.
데이원컴퍼니는 온라인 교육 플랫폼 '패스트캠퍼스' 운영사다. 직무 교육, 기업 대상(B2B) 교육, 외국어 교육, 취업 특화 교육 등 성인 이용자에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시그나이트파트너스는 지난 4월 데이원컴퍼니의 시리즈D 투자 라운드에 참여한 바 있다.
임 상무는 데이원컴퍼니의 창업자인 박지웅 대표에 주목했다. 그는 박지웅 대표가 스톤브릿지캐피탈 심사역이던 시절부터 친분이 있었다. 박 대표의 '워커홀릭' 기질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 연쇄 창업을 거치며 여러 번 실패를 경험했다는 점도 높이 샀다. 임 상무는 "잠을 줄여가며 일할 정도로 일에 '진심'인 사람"이라며 "10개 넘는 회사를 창업하면서 조직을 이끌어가는 능력도 검증됐다"고 말했다.
친환경 여성용품 스타트업 라엘 역시 임 상무가 애정하는 포트폴리오사다. 프로젝트 펀드를 통해 올 초 260억원을 투입했다. 2016년 미국에서 한국인 여성 3인방이 창업한 라엘은 아마존에서 생리대 분야 판매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임 상무는 구글 캠퍼스 서울 총괄 재직 당시인 2017년부터 라엘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라엘이 시드(초기) 단계 투자를 받을 때였다. 그는 "미국에서 소수집단인 동양 여성들이 여성용품 분야를 혁신하며 시장을 장악한다는 게 큰 도전으로 여겨졌음에도 보란듯이 성공한 회사"며 "라이프스타일에 초점을 맞춘 신세계그룹과도 '핏'이 잘 맞았다"고 설명했다.
시그나이트파트너스는 재무적투자자(FI)와 전략적투자자(SI)의 성향을 동시에 띤다. 알토스벤처스 같은 톱티어의 순수 VC의 길을 가면서도 신세계그룹이라는 브랜드를 활용해 투자기업의 기업가치를 강화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시그나이트파트너스는 주요 투자 분야를 'WHERE'로 나눴다. 업무방식을 효율화하는 회사(Work), 헬스케어(Healthcare), 교육(Education), 전자 상거래 등 리테일테크(Retail),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등이다.
임 상무는 또 시그나이트파트너스만의 강점으로 투명한 의사소통 구조를 내세웠다. '개인 플레이' 성향이 짙은 벤처투자업계에서 조직이 투자 과정을 다함께 공유해 더 나은 의사결정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그는 "심사역들이 서로 뭐가 부족한지, 동료들은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고 있는지 등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며 "덕분에 새로 합류한 인력이 빠르게 조직에 적응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라고 했다.
⑤배준성 롯데벤처스 상무
=미래 트렌드에 적중한 레티널 배준성 롯데벤처스 상무는 증강현실(AR) 글라스 제조기업 레티널을 가장 CVC다운 투자로 꼽았다. 레티널은 구글 글라스,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그램과 경쟁하는 국내 순수 스타트업으로 이제 막 양산체제를 구축했다. 바늘구멍 사진기의 핀홀 효과에 착안해 AR 광학렌즈를 개발했다. 올해 말부터 매출이 본격화될 예정이다.
배 상무는 "김재혁 하정훈 공동창업자가 고등학생 때의 아이디어를 사업화로 실현하고 전공 석박사가 아닌데도 시제품까지 완성한 회사"라고 평가했다. 롯데벤처스는 2020년 500억원 기업가치로 평가받을 때 레티널에 투자했으며, 현재 5000억원에서 1조원까지 기업가치를 기대하고 있다.
배 상무가 레티널 투자를 결정했을 때만 해도 모회사와 전격적인 시너지를 예상한 것은 아니다. 롯데월드나 롯데택배 물류센터와의 협업을 염두에 둔 정도였다. 하지만 지난해 롯데그룹이 전사적으로 메타버스 사업에 돌입하면서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됐다.
배 상무는 "당장 모회사와의 사업 시너지에만 집중할 경우 새로운 트렌드에 대응이 늦는다"며 "많은 부분은 모회사와의 전략적 방향에 맞춰서 투자를 진행하고 있지만 CVC 스스로 미래 트렌드에 대비하는 투자를 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감한 투자 결정도 재무적 투자자(FI)와의 차별점으로 꼽았다. 수산물 제조업체 얌테이블은 재무적 관점에서만 보고 일반 VC들은 투자를 주저했다. 하지만 롯데백화점에 입점해 이미 성과를 냈고, 모회사와 유통이라는 연결 고리가 있다는 점에서 CVC로서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다.
배 상무는 1993년 KAIST 전산과를 졸업했다. 한국 IBM, 삼성SDS를 거쳐 딜로이트에서 전략컨설팅을 담당했으며 물류 자동화 중견기업 SFA의 전략기획부서에서 일했다. 10년 전쯤 롯데그룹에 몸담았으며 4년 전 롯데 지주회사에서 롯데벤처스로 자원해 CVC로 활약 중이다. 그는 "딥테크 한무물만 판 게 아니라 전문성이 없는 게 아닌가 고민한 적도 있다"며 "하지만 IT부터 컨설팅 제조업까지 다양한 산업을 경험한 것이 지금 스타트업을 투자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허란/김종우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