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 가속화…커지는 스타트업과 '협회들' 간 갈등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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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스타트업 업계와 전문직 협회 간 '전선(戰線)'이 확대하고 있습니다. 프롭테크(부동산기술)업계를 겨낭한 규제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습니다. 기득권을 가진 한국공인중개사협회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죠.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이 정보기술(IT)을 앞세워 관련 산업의 디지털 전환에 나서자 기존 사업자들이 정부와 정치권을 끌어들여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기존 사업자는 소비자 보호를, 스타트업은 소비자 편익 증가를 각각 주장합니다. 일부 다툼은 경찰과 검찰의 수사, 재판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도 스타트업의 전문 영역 진출이 이어지고 이용자는 늘고 있습니다. 산업계의 변화 흐름을 무조건 막기는 어렵기 때문이죠. 한경 긱스(Geeks)가 심화하는 스타트업 업계와 전문직 단체 간 갈등을 짚어봤습니다.
직방, 다방 등 스타트업 중심의 프롭테크(부동산기술)업계는 이 개정안에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기존 공인중개사의 기득권만 보호하는 법”이라는 이유에서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한공협이 프롭테크업체와 제휴하는 중개사를 다양한 이유로 압박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프롭테크포럼은 “특정 이익단체의 독점화에 따른 공정 경쟁 기반을 훼손하고 소비자 편익 침해와 서비스 다양성, 품질 저하 등의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롭테크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중개 시장의 기득권 세력이 혁신은 외면하고 ‘반값 중개수수료’ 등 새로운 서비스를 시도하는 프롭테크업체를 견제하기 위해 정치권을 끌어들였다”고 말했다. 앞서 한공협은 프롭테크 기업이 신규 서비스를 내놓을 때마다 “골목상권 침해”라며 비난했다.
변호사 광고 플랫폼 ‘로톡’을 운영하는 로앤컴퍼니와 대한변호사협회(변협) 간 대립도 격화하고 있다. 변협은 지난달 로톡에 가입한 변호사 9명에게 최대 과태료 300만원의 징계를 내렸다. 변협이 로톡 가입을 이유로 변호사를 징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변협은 작년 5월 변협의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로톡을 통한 변호사 알선 및 광고를 원천 차단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올해 5월 변협의 변호사 광고 규정에 대해 ‘일부 위헌’ 결정을 내렸다. 사건이 아니라 변호사 소개나 알선은 변협이 제재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변협과 로앤컴퍼니는 각자 유리하게 헌재 판결을 해석하면서 양측의 충돌은 심화했다. 변협은 로톡의 서비스는 불법 브로커 같은 행위로 안전한 법률 서비스 제공을 위해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로앤컴퍼니는 변호사와 법률 소비자 간 거리를 좁히고, 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리걸테크(법률기술)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의료 분야에서도 유망 스타트업과 협회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체 닥터나우는 지난 6월 ‘원하는 약 담아두기’ 서비스를 출시 한 달 만에 중단했다. 서울특별시의사회가 “해당 서비스는 의료법·약사법 위반”이라며 닥터나우를 고발하면서다. ‘원하는 약 담아두기’는 환자가 닥타나우 앱에 나온 의약품 중 원하는 것을 골라 의사의 처방을 원격으로 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의사회는 의료 관련 알선 행위를 금지한 의료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성형정보 플랫폼 ‘강남언니’를 운영하는 힐링페이퍼와 사사건건 다투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정부가 강남언니 등 온라인 의료 플랫폼을 통해 ‘비급여 진료비’ 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 의료계가 반발했다. 의협은 “비급여 진료비 정보가 공개된다면 환자들이 진료비만 단순 비교하고 의료기관을 선택하는 상황이 조성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의협은 강남언니 등 온라인에 올라온 병원 홍보 게시글도 ‘의료 광고’라며 관련 협회의 심의를 받도록 소관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정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힐링페이퍼는 의료 소비자의 편익 증진과 소규모 의원의 홍보를 위해 관련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다툼이 커진 것은 사회 곳곳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하면서다. 스마트폰 확산과 인터넷 속도 향상 등으로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연계하는 서비스가 급증했다. 이를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라고도 부른다. 오프라인 서비스가 인터넷 위에 올라오면서 관련 산업은 혁신으로 이어졌다. 소비자는 스마트폰으로 음식 주문, 택시와 렌터카 호출, 숙박과 레저 시설 예약, 부동산 계약, 가사도우미 요청 등을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게 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국내 O2O 시장 규모는 2018년 2조2765억원에서 지난해 5조4323억원으로 3년 새 두 배 이상 커졌다. 거래액으로 따지면 지난해 147조3877억원까지 증가했다. 카카오모빌리티,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등 업체들이 포함된 운송 서비스 분야의 시장 규모는 3조904억원으로 가장 컸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의료 서비스 수요도 크게 늘었다. 의료 및 보건 서비스 분야의 작년 매출은 1년 전보다 81.1% 급증하기도 했다. 다양한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디지털 전환 수요가 급증하면서 기존 사업자도 O2O 스타트업을 마냥 막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전문직 단체와 다투는 스타트업의 사업 경로는 크게 두 가지로 예상할 수 있다. ‘제2의 토스’ 아니면 ‘제2의 타다’가 되는 경우다. 핀테크 스타트업 비바리퍼블리카는 간편 송금 서비스 토스를 앞세워 가입자를 확대했다. 은행업, 증권 등 다른 금융 서비스로 사업을 확대하자 금융권은 반발했고, 금융당국도 각종 규제로 토스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급증하면서 기존 금융권도 토스 서비스를 참고하기 시작했다. 정부도 금융규제 샌드박스 등을 통해 관련 규제 개선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토스는 국내 금융권에서 ‘메기’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평가다. 지난해 오프라인 영업점이 없는 토스뱅크, 토스증권 등을 잇달아 내놨다. 토스뱅크는 지난달 출시 1년 만에 이용자 480만 명을 확보했다. 기존 제1금융권에서 대출받기 어려웠던 중저신용자의 대출 비중이 39%로 가장 높았다. 반면 타다는 디지털 전환의 흐름을 정치권이 막은 사례다. 타다는 2018년 차량 호출 서비스를 시작했고, 1년 만에 회원 170만 명을 모았다. 기존 택시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고급 차량과 승객 맞춤 서비스로 소비자를 공략했다. 하지만 택시업계의 반발이 거셌다. 택시업계는 타다가 ‘위법 콜택시’라고 주장했다. 이에 정치권은 2020년 택시 면허를 다량 확보하거나 일정 기여금을 내는 업체만 모빌리티 사업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법제화했다.
모빌리티 서비스를 갓 시작한 스타트업에는 버거운 조건이었다. 업계가 해당 법안을 ‘타다 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으로 부른 이유다. 결국 타다는 관련 서비스를 접어야 했다. 이후 카카오의 자회사인 카카오모빌리티 등 자금력이 있는 일부 기업만 모빌리티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 타다도 지난해 비바리퍼블리카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받고서야 모빌리티 사업을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피해는 소비자들이 봤다. 모빌리티 시장의 진입 장벽이 높아져 신규 업체가 크게 줄어든 가운데 코로나19 확산으로 택시 운전사들이 택시업계를 떠나자 택시 대란이 터졌다. 소관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과거 타다와 비슷한 서비스(플랫폼 운송 사업 타입 1) 관련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지난달 밝혔다. 모빌리티업계 관계자는 “모빌리티 시장에 진출하기에는 여전히 거금이 필요하다”며 “법인택시, 개인택시, 택배업체 등 이해관계자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곳곳에 규제가 많아 새로운 시도가 나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그동안 한걸음 모델로 이해관계자 간 갈등이 제대로 해결된 경우가 없었다. 2년 동안 농어촌 빈집 숙박, 산림 관광, 도심 공유 숙박, 단초점 안경 전자상거래, 드론과 로봇 등 미래형 운송 수단을 활용한 생활물류 등 다섯 개 사안을 논의했다. 농어촌 빈집 숙박만 규제 샌드박스 정책으로 지난해 시범 사업을 시작하는 데 그쳤다. 이 사업도 50채만 한시적으로 허용해 규제 완화 효과가 거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재부는 지난 3월 강남언니와 로톡도 한걸음 모델의 신규 과제로 선정했다. 하지만 이 역시 해당 업체를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기는커녕 분란을 키웠다. 정부가 규제 개혁, 신구 사업자 갈등 중재 등에서 시늉만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정부 규제개혁 만족도는 2018년 15.1%에서 2021년 7.8%로 떨어졌다. 국내 창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규제 개선 방향을 연구한 ‘2022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박경수 삼정KPMG 상무는 “정부가 국내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넘어 국내 기업들이 향후 규제가 해소된 뒤에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을지 우려가 크다”고 했다.
혁신을 앞세운 스타트업과 기존 사업자 간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최근 화상투약기 제조 스타트업인 쓰리알코리아의 ‘약 자판기’가 정부의 규제 샌드박스 심의를 통과하자 대한약사회가 크게 반발했다. 세무회계 플랫폼 ‘삼쩜삼’을 운영하는 텍스테크(세무기술) 스타트업 자비스앤빌런즈와 한국세무사회 간 다툼도 확산 일로에 있다. 유망 스타트업이 신규 디지털 전환 서비스를 내놓을 때마다 기존 사업자는 반발하고, 관련 이용자가 증가하면 갈등의 골은 깊어진다.
도심항공교통(UAM), 로봇 등 정부가 집중 육성하겠다는 신산업 분야 역시 장기적으로는 이 같은 갈등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3년 뒤인 2025년 UAM을 통한 에어택시의 상용화를 예상한다. 지금은 상상 같은 얘기지만 현실이 되면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정부와 정치권에 안정성 우려 등을 제기하며 막아설 가능성이 높다.
참 한 가지 더
세계 100대 유니콘 중 몇 곳이나 한국에서 제대로 영업 활동할 수 있을까? 기존 사업자의 반대뿐만 아니라 각종 규제로 한국에서 스타트업 운영이 만만치 않다. 누적 투자액 기준 글로벌 100대 기업 중 절반 이상이 규제로 인해 지난 5년간 국내에서 제대로 된 사업을 할 수 없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아산나눔재단,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5개 기관과 업체는 이 같은 내용의 ‘2022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를 지난 9월 내놨다. 관련 보고서는 2017년에도 글로벌 유니콘 100개 중 56개 업체가 국내서 규제 때문에 제대로 영업 활동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당시 56개 유니콘 기업 중 23개 업체는 이미 상장사로 성장했다.
보고서는 규제혁신 제도의 실효성 부족이 문제 원인으로 지목했다. 규제 해소와 지원 방안 강화가 동시에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사업 검토 단계에선 스타트업이 관련 규제를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후엔 규제 샌드박스 등에 참여해 상용화 가능성을 검증받고 투자 유치 등이 연계될 수 있도록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규제 샌드박스의 경우에는 소요 기간과 평가 기준을 명확하게 정비해서 기업의 운영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장석환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은 “창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관련 연구를 시작한 지 5년이 지났지만 글로벌 유니콘 기업의 핵심 사업은 여전히 국내 시장에 도입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김주완 기자
타다금지법에 이어 직방금지법?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공인중개사가 한국공인중개사협회(한공협)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하는 내용의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12만여 명이 가입한 국내 최대 공인중개사 단체인 한공협을 법정단체로 인정하고, 앞으로 공인중개사가 개업하려면 한공협 회원으로 반드시 가입해야 한다. 한공협의 회원 감독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정부가 놓칠 수 있는 사기 등 무질서한 부동산 중개 행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것이 개정안의 취지다.직방, 다방 등 스타트업 중심의 프롭테크(부동산기술)업계는 이 개정안에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기존 공인중개사의 기득권만 보호하는 법”이라는 이유에서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한공협이 프롭테크업체와 제휴하는 중개사를 다양한 이유로 압박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프롭테크포럼은 “특정 이익단체의 독점화에 따른 공정 경쟁 기반을 훼손하고 소비자 편익 침해와 서비스 다양성, 품질 저하 등의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롭테크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중개 시장의 기득권 세력이 혁신은 외면하고 ‘반값 중개수수료’ 등 새로운 서비스를 시도하는 프롭테크업체를 견제하기 위해 정치권을 끌어들였다”고 말했다. 앞서 한공협은 프롭테크 기업이 신규 서비스를 내놓을 때마다 “골목상권 침해”라며 비난했다.
변호사 광고 플랫폼 ‘로톡’을 운영하는 로앤컴퍼니와 대한변호사협회(변협) 간 대립도 격화하고 있다. 변협은 지난달 로톡에 가입한 변호사 9명에게 최대 과태료 300만원의 징계를 내렸다. 변협이 로톡 가입을 이유로 변호사를 징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변협은 작년 5월 변협의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로톡을 통한 변호사 알선 및 광고를 원천 차단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올해 5월 변협의 변호사 광고 규정에 대해 ‘일부 위헌’ 결정을 내렸다. 사건이 아니라 변호사 소개나 알선은 변협이 제재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변협과 로앤컴퍼니는 각자 유리하게 헌재 판결을 해석하면서 양측의 충돌은 심화했다. 변협은 로톡의 서비스는 불법 브로커 같은 행위로 안전한 법률 서비스 제공을 위해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로앤컴퍼니는 변호사와 법률 소비자 간 거리를 좁히고, 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리걸테크(법률기술)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의료 분야에서도 유망 스타트업과 협회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체 닥터나우는 지난 6월 ‘원하는 약 담아두기’ 서비스를 출시 한 달 만에 중단했다. 서울특별시의사회가 “해당 서비스는 의료법·약사법 위반”이라며 닥터나우를 고발하면서다. ‘원하는 약 담아두기’는 환자가 닥타나우 앱에 나온 의약품 중 원하는 것을 골라 의사의 처방을 원격으로 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의사회는 의료 관련 알선 행위를 금지한 의료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성형정보 플랫폼 ‘강남언니’를 운영하는 힐링페이퍼와 사사건건 다투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정부가 강남언니 등 온라인 의료 플랫폼을 통해 ‘비급여 진료비’ 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 의료계가 반발했다. 의협은 “비급여 진료비 정보가 공개된다면 환자들이 진료비만 단순 비교하고 의료기관을 선택하는 상황이 조성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의협은 강남언니 등 온라인에 올라온 병원 홍보 게시글도 ‘의료 광고’라며 관련 협회의 심의를 받도록 소관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정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힐링페이퍼는 의료 소비자의 편익 증진과 소규모 의원의 홍보를 위해 관련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전환 가속화에 신·구 사업자 갈등 격화
이런 다툼이 커진 것은 사회 곳곳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하면서다. 스마트폰 확산과 인터넷 속도 향상 등으로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연계하는 서비스가 급증했다. 이를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라고도 부른다. 오프라인 서비스가 인터넷 위에 올라오면서 관련 산업은 혁신으로 이어졌다. 소비자는 스마트폰으로 음식 주문, 택시와 렌터카 호출, 숙박과 레저 시설 예약, 부동산 계약, 가사도우미 요청 등을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게 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국내 O2O 시장 규모는 2018년 2조2765억원에서 지난해 5조4323억원으로 3년 새 두 배 이상 커졌다. 거래액으로 따지면 지난해 147조3877억원까지 증가했다. 카카오모빌리티,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등 업체들이 포함된 운송 서비스 분야의 시장 규모는 3조904억원으로 가장 컸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의료 서비스 수요도 크게 늘었다. 의료 및 보건 서비스 분야의 작년 매출은 1년 전보다 81.1% 급증하기도 했다. 다양한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디지털 전환 수요가 급증하면서 기존 사업자도 O2O 스타트업을 마냥 막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전문직 단체와 다투는 스타트업의 사업 경로는 크게 두 가지로 예상할 수 있다. ‘제2의 토스’ 아니면 ‘제2의 타다’가 되는 경우다. 핀테크 스타트업 비바리퍼블리카는 간편 송금 서비스 토스를 앞세워 가입자를 확대했다. 은행업, 증권 등 다른 금융 서비스로 사업을 확대하자 금융권은 반발했고, 금융당국도 각종 규제로 토스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급증하면서 기존 금융권도 토스 서비스를 참고하기 시작했다. 정부도 금융규제 샌드박스 등을 통해 관련 규제 개선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토스는 국내 금융권에서 ‘메기’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평가다. 지난해 오프라인 영업점이 없는 토스뱅크, 토스증권 등을 잇달아 내놨다. 토스뱅크는 지난달 출시 1년 만에 이용자 480만 명을 확보했다. 기존 제1금융권에서 대출받기 어려웠던 중저신용자의 대출 비중이 39%로 가장 높았다. 반면 타다는 디지털 전환의 흐름을 정치권이 막은 사례다. 타다는 2018년 차량 호출 서비스를 시작했고, 1년 만에 회원 170만 명을 모았다. 기존 택시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고급 차량과 승객 맞춤 서비스로 소비자를 공략했다. 하지만 택시업계의 반발이 거셌다. 택시업계는 타다가 ‘위법 콜택시’라고 주장했다. 이에 정치권은 2020년 택시 면허를 다량 확보하거나 일정 기여금을 내는 업체만 모빌리티 사업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법제화했다.
모빌리티 서비스를 갓 시작한 스타트업에는 버거운 조건이었다. 업계가 해당 법안을 ‘타다 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으로 부른 이유다. 결국 타다는 관련 서비스를 접어야 했다. 이후 카카오의 자회사인 카카오모빌리티 등 자금력이 있는 일부 기업만 모빌리티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 타다도 지난해 비바리퍼블리카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받고서야 모빌리티 사업을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피해는 소비자들이 봤다. 모빌리티 시장의 진입 장벽이 높아져 신규 업체가 크게 줄어든 가운데 코로나19 확산으로 택시 운전사들이 택시업계를 떠나자 택시 대란이 터졌다. 소관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과거 타다와 비슷한 서비스(플랫폼 운송 사업 타입 1) 관련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지난달 밝혔다. 모빌리티업계 관계자는 “모빌리티 시장에 진출하기에는 여전히 거금이 필요하다”며 “법인택시, 개인택시, 택배업체 등 이해관계자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곳곳에 규제가 많아 새로운 시도가 나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립서비스만 하는 정부?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토스의 성장과 타다의 좌절에 모두 정부가 깊이 개입했다. 정부가 마련한 인터넷전문은행 제도의 자격을 얻은 토스는 사업을 확대했다. 반면 타다는 택시업계 반발을 의식한 정치권이 타다 금지법을 내놓자 시장을 떠나야 했다. 정부는 타다 금지법에 대한 비난이 커지자 2020년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한걸음 모델’이라는 신구(新舊) 사업자를 중재하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신산업 분야 활성화를 위해 이해관계자가 각자 ‘한걸음’씩 양보해 함께 ‘더 큰 걸음’을 내딛자는 취지였다.하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그동안 한걸음 모델로 이해관계자 간 갈등이 제대로 해결된 경우가 없었다. 2년 동안 농어촌 빈집 숙박, 산림 관광, 도심 공유 숙박, 단초점 안경 전자상거래, 드론과 로봇 등 미래형 운송 수단을 활용한 생활물류 등 다섯 개 사안을 논의했다. 농어촌 빈집 숙박만 규제 샌드박스 정책으로 지난해 시범 사업을 시작하는 데 그쳤다. 이 사업도 50채만 한시적으로 허용해 규제 완화 효과가 거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재부는 지난 3월 강남언니와 로톡도 한걸음 모델의 신규 과제로 선정했다. 하지만 이 역시 해당 업체를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기는커녕 분란을 키웠다. 정부가 규제 개혁, 신구 사업자 갈등 중재 등에서 시늉만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정부 규제개혁 만족도는 2018년 15.1%에서 2021년 7.8%로 떨어졌다. 국내 창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규제 개선 방향을 연구한 ‘2022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박경수 삼정KPMG 상무는 “정부가 국내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넘어 국내 기업들이 향후 규제가 해소된 뒤에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을지 우려가 크다”고 했다.
혁신을 앞세운 스타트업과 기존 사업자 간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최근 화상투약기 제조 스타트업인 쓰리알코리아의 ‘약 자판기’가 정부의 규제 샌드박스 심의를 통과하자 대한약사회가 크게 반발했다. 세무회계 플랫폼 ‘삼쩜삼’을 운영하는 텍스테크(세무기술) 스타트업 자비스앤빌런즈와 한국세무사회 간 다툼도 확산 일로에 있다. 유망 스타트업이 신규 디지털 전환 서비스를 내놓을 때마다 기존 사업자는 반발하고, 관련 이용자가 증가하면 갈등의 골은 깊어진다.
도심항공교통(UAM), 로봇 등 정부가 집중 육성하겠다는 신산업 분야 역시 장기적으로는 이 같은 갈등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3년 뒤인 2025년 UAM을 통한 에어택시의 상용화를 예상한다. 지금은 상상 같은 얘기지만 현실이 되면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정부와 정치권에 안정성 우려 등을 제기하며 막아설 가능성이 높다.
참 한 가지 더
세계 100대 유니콘 중 몇 곳이나 한국에서 제대로 영업 활동할 수 있을까? 기존 사업자의 반대뿐만 아니라 각종 규제로 한국에서 스타트업 운영이 만만치 않다. 누적 투자액 기준 글로벌 100대 기업 중 절반 이상이 규제로 인해 지난 5년간 국내에서 제대로 된 사업을 할 수 없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아산나눔재단,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5개 기관과 업체는 이 같은 내용의 ‘2022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를 지난 9월 내놨다. 관련 보고서는 2017년에도 글로벌 유니콘 100개 중 56개 업체가 국내서 규제 때문에 제대로 영업 활동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당시 56개 유니콘 기업 중 23개 업체는 이미 상장사로 성장했다.
보고서는 규제혁신 제도의 실효성 부족이 문제 원인으로 지목했다. 규제 해소와 지원 방안 강화가 동시에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사업 검토 단계에선 스타트업이 관련 규제를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후엔 규제 샌드박스 등에 참여해 상용화 가능성을 검증받고 투자 유치 등이 연계될 수 있도록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규제 샌드박스의 경우에는 소요 기간과 평가 기준을 명확하게 정비해서 기업의 운영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장석환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은 “창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관련 연구를 시작한 지 5년이 지났지만 글로벌 유니콘 기업의 핵심 사업은 여전히 국내 시장에 도입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김주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