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참사'를 '사고'로 용어 통일하자는 정부
정부가 156명이 사망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용어를 ‘이태원 사고 사망자’로 통일해 표기하도록 내부 방침을 정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30일 녹화된 시·도 부단체장 영상회의 자료에 따르면 행정안전부는 합동분향소를 설치하면서 ‘피해자·희생자’라는 표현을 금지하고 ‘사망자’로 표기할 것을 기초자치단체에 전달했다. ‘참사’ 대신 ‘사고’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언뜻 보기엔 비슷해 보이는 단어지만 내포된 뜻, 받아들이는 이들의 느낌 차이는 크다. 정부가 금지한 희생자는 사고나 자연재해로 목숨을 잃은 사람을 뜻한다.

반면 정부가 사용하도록 한 사망자는 죽은 사람이란 뜻으로 단순한 사전적 의미를 나타내는 사무적 단어에 불과하다. 참사(慘事)는 비극적이고 끔찍한 일이란 뜻이고, 사고(事故)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을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사건의 책임이 명확한 경우 또는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때 ‘참사, 희생자’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정부가 참사의 성격을 ‘단순 사고’로 규정하고, 책임에 거리를 두기 위해 애쓰는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대다수 시민의 반응도 비슷했다. 이태원 참사 소식을 접하고 서울광장 합동분향소를 찾은 김모씨(30)는 “참사라는 표현을 많이 접했는데 사고라고 적혀 있어 갸우뚱했다”며 “정부가 특정 단어를 사용하라고 지시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와 경찰 등 책임자가 분명히 있는 상황인데 참사라는 표현이 왜 부적절한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논란은 정치권에서도 이어졌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정부가 명백한 참사를 사고로 표현해 사건을 축소하거나, 희생자를 사망자로 표현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사건 발생 이후 지금까지 책임 미루기에 급급했다. 재난안전 총괄부처인 행안부의 이상민 장관은 “경찰을 미리 배치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발언해 비판을 자초했다.

아직까지 경찰 수사 등 책임 소재를 확인하는 절차가 남아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해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했다는 정부의 해명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권은 물론 정부 스스로 ‘추모가 먼저’라고 선언한 상황이라면,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용어 정리부터 서둘러 나설 만큼 여유 있는 상황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유가족을 향한 세심한 배려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