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 장애로 발과 입술로 호른 연주…9일 내한 독주회
"장애는 눈에 보이는 약점일 뿐…음악으로 세상에 기쁨 전하는 게 유일한 바람"
'양팔 없는 호르니스트' 클리저 "꿈꾸는 자에겐 책임도 따르죠"
"내 음악으로 세상에 기쁨을 전하는 것, 제 바람은 오직 그것뿐입니다.

사람들이 저를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신경 쓰지 않아요.

그건 제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들의 문제니까요.

"
두 팔 대신 발과 입술로 연주하는 호르니스트 펠릭스 클리저가 오는 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내한 독주회를 연다.

태어날 때부터 양팔이 없는 클리저는 오른발로 악기 받침대를 고정하고 왼발과 입술을 이용해 악기를 연주한다.

그는 최근 연합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자신의 장애에 대해 "내 장애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약점이 하나 추가된 것일 뿐"이라며 "내 음악을 듣는 사람이 행복하다면 나도 그걸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양팔 없는 호르니스트' 클리저 "꿈꾸는 자에겐 책임도 따르죠"
클리저는 어린 시절 우연히 듣게 된 호른의 음색에 매료돼 부모님을 졸라 다섯 살 때부터 호른을 배우기 시작했다.

"정확히 언제 처음 호른을 들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그는 "다른 악기보다도 다양한 감정과 음색을 연주할 수 있다는 점이 호른의 가장 흥미로운 점이고 어린 나이에 호른에 빠지게 된 이유"라고 말했다.

당시 클리저의 부모님은 호른이라는 악기가 무엇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누구의 강요도, 권유도 없이 스스로 택한 꿈을 지키는 것은 자신의 몫이었다.

호른을 배울 선생님도 많지 않은 독일의 소도시 괴팅겐에 살던 그는 두 팔 대신 악기를 받쳐줄 지지대를 두고 호흡과 왼발을 사용해 소리 내는 법을 익혔다.

이후 독일 하노버 예술대학에서 공부하고 독일 국립 유스 오케스트라 단원을 거쳐 현재 영국 본머스 오케스트라의 상주 연주자로 활약하며 다섯 살 때 품은 호른에 대한 열정을 지금까지 지켜왔다.

그는 타고난 조건 때문에 꿈을 이루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어설픈 위로 대신 "꿈을 가진다는 건 자신에게 책임을 진다는 걸 의미한다"는 단단한 충고를 전했다.

"누구에게나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은 있습니다.

그러나 무언가에 강한 끌림을 느낀다면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고 그 꿈을 향해 힘써 싸워야 합니다.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지 마십시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를 기억하면 삶에서 훨씬 흥미로운 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
'양팔 없는 호르니스트' 클리저 "꿈꾸는 자에겐 책임도 따르죠"
그에게 장애는 자신의 꿈을 책임지는 걸 게을리하는 핑계가 되지 못했다.

클리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모두 각자의 강점과 약점을 가진 하나의 인격체"라며 "약점이 전혀 없는 것 같은 사람도 약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제 경우엔 장애가 한눈에 바로 보이는 것일 뿐, 누구에게나 강점과 약점이 있다는 사실은 내게 살아갈 힘을 줘요.

동시에 모든 약점은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한계란 있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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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팔 없는 호르니스트' 클리저 "꿈꾸는 자에겐 책임도 따르죠"
클리저는 지난해부터 상주 음악가로 함께하고 있는 본머스 오케스트라와의 협연뿐 아니라 이탈리아, 멕시코, 빈, 프라하 등 전 세계 투어 공연과 앨범 발매까지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치지 않고 연주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은 그가 여전히 흠뻑 빠져있는 호른이라는 악기의 매력이다.

"나도 모르게 흠뻑 빠지고 흥분하게 만드는 일에는 별다른 동기 부여도 필요하지 않다"는 그는 "위대한 작곡가들이 남긴 호른 작품을 더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독주회에서는 슈만 '아다지오와 알레그로'와 베토벤의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등을 연주한다.

그는 "슈만의 '아다지오와 알레그로'는 첼로를 위한 곡으로 알려졌지만 원래 호른을 위해 만들어진 곡"이라며 "슈만, 베토벤 등 위대한 작곡가들이 남긴 호른 작품이 놀라울 정도로 많다"고 소개했다.

지난 2018년 제주국제관악제 무대에서 한국 관객과 만난 그는 "당시 만난 한국 관객들은 다들 친절하고 열정이 넘쳤다"며 "연주회에서 관객들에게 행복을 선사할 날이 기다려진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음악을 들으며 어떤 걸 느끼든 괜찮습니다.

관객들이 떠오르는 다양한 감정을 제한하지 말고 자유롭게 펼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
'양팔 없는 호르니스트' 클리저 "꿈꾸는 자에겐 책임도 따르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