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안팎서 '중대시민재해 적용 범위 늘려야' 목소리 지금까지 156명이 숨진 '이태원 압사 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놓고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올해 초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 이번 사고의 책임자들을 처벌할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현재 시행령상으로는 적용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지만, 정부가 이미 애매모호한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조항을 개정하는 작업에 착수한 상황에서 이번 이태원 사고까지 더해지면서 법 적용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를 예방해 시민과 근로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할 목적으로 만들어져 올해 1월 27일부터 시행됐다.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과 비교해 사고의 책임이 있는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무겁게 한 것이 특징이다.
중대재해는 고용노동부가 수사하는 중대산업재해, 경찰이 수사하는 중대시민재해로 구분된다.
최근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평택 SPC 계열사 제빵공장 끼임 사고나 안성 물류창고 추락 사고 등 '산업현장에서 근로자에게 발생한 사고'는 중대산업재해다.
과거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세월호 침몰 사고 등과 같이 '공중이용시설, 제조물 등과 관련해 일반 시민이 당하는 중대한 사고'는 중대시민재해로 분류된다.
이번 이태원 참사의 경우 다중이 모이는 시설에서 일반인이 대규모로 사망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하는지 따져볼 수 있는데, 중대재해처벌법에는 중대시민재해와 관련 용어의 정의, 처벌 수위 등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다.
중대시민재해는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제조·설치·관리상의 결함 때문에 발생한 재해다.
사망자가 1명 이상이거나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10명 이상,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가 10명 이상이어야 한다.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소홀히 해 중대시민재해를 막지 못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돼 있다.
이 규정대로라면 이번 참사는 희생자 규모 측면에서는 의문의 여지 없이 기준을 웃돈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한 골목길이 법에 규정된 공중이용시설이 아닌데다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서 일어난 사고라 이 법상 책임을 묻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우선 해밀톤호텔 옆 도로가 공중이용시설인지가 관건인데, 결론적으로 도로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명시한 공중이용시설은 지하역사, 철도역사·여객자동차터미널·항만시설 대합실, 실내주차장, 교량, 터널, 항만, 댐 등이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2일 연합뉴스 통화에서 "법 제정 과정에서 사고 발생 우려가 높은 장소를 공중이용시설로 추가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며 "'기타 조항'이나 시행령에라도 못 박아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포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의도 불꽃축제나 이태원지구촌축제 등과 달리 이번 '핼러윈 축제'는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 등 주최자 없이 열린 행사라는 점에서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해야 할 책임자가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참사와 관련해서는 경찰의 112 신고 묵살, 해밀톤호텔 불법 증축 등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법률에 따라 민형사상 책임을 물게 될 가능성은 있지만, 역시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시민재해의 적용 범위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의당 이은주 원내대표는 전날 의원총회에서 이번 참사와 관련, "중대시민재해 적용 여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며 "차제에 중대시민재해에 대한 법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구체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이미 이번 사고 이전부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작업을 진행해왔다.
시행령이 아닌 법 개정은 국회 논의가 필요한데, 정치권에서는 이미 여러 건의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지금까지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한 논란은 중대산업재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이번 참사를 계기로 중대시민재해와 관련한 규정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