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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인터뷰

발행사
·주관사 입김에 따라 달라지는 공모가
고양이한테 생선 맡긴꼴…어느 때보다 밸류에이션 중요

더블유씨피 통해 알아본 투자설명서 보는법
비교기업(Peer)군 등 '인수인의 의견' 부분 잘 살펴야
[마켓PRO]"갈수록 어려워지는 공모주 투자, '이것' 만큼은 챙겨라"
"발행사(예비 상장사)와 주관사 입김에 따라 공모가가 왜곡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재 공모가 결정은 시장 자율성에 맡기고 있으나, 자칫 개인투자자들이 손실을 떠안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투자설명서를 통해 투자할 종목의 공모가가 어떻게 산정됐는지 꼭 확인해야 합니다."

최근 한국거래소 내부 관계자 A씨는 공모가 산정 시스템을 두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고 비유했다. 주관사가 기업공개(IPO) 딜을 하나라도 더 따기 위해 적정 공모가를 찾기보단 발행기업의 입맛에 맞출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고평가된 공모가는 초기 투자자와 발행사에 큰 수익이나 대규모 자금 조달을 용이하게 한다. 반면 신규 투자자들의 손실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A씨는 공모주 투자에 나서기에 앞서 투자설명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투자설명서에 적힌 내용만으로도 공모가가 적절한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

A씨는 요즘 같은 장에선 공모주 시장 난도가 상당히 높아졌다고 말한다. 유동성이 넘칠 때는 예비 상장사의 성장성 하나만으로 돈이 몰리지만, 증시가 안 좋을 때는 수익성 등 밸류에이션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요즘 같은 장에서 공모가가 고평가될 경우 손실은 신규 투자자들의 몫이 된다고 지적한다.

그는 투자자들이 현명하게 공모주 투자를 하기 위해선 투자설명서에 기술된 공모가 산정 방법과 할인율 등을 분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비교기업(Peer)은 적정한지, 할인율은 합리적인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한경 DB
사진=한경 DB
우선 투자설명서에서 '모집 또는 매출에 관한 사항'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서 증권신고서 공시를 열면 보통 가장 위에 있는 부분이다. 이번 기업공개(IPO)를 통해 얼마큼의 자금을 모집할지에 대한 계획이 나와 있다.

'공모 방법'을 보면 투자자들이 얼만큼의 물량을 받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확인이 가능하다. 회사 내 직원들이 회사의 주식을 취득해 관리하는 '우리사주조합'을 비롯해 일반 공모 규모, 구주 상황 등을 알 수 있다.

A씨는 투자자들이 가장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투자위험요소'와 '인수인의 의견' 부분이라고 말한다. 투자위험요소의 경우 상장 이후에 있을 변수들의 기재한 부분이다. 사업부터 산업 악화 등 다양한 위험 요소를 설명하고 있다.

인수인의 의견에선 공모가 산정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 사실상 예비 상장사의 기업가치를 어떻게 매겼는지 알 수 있다는 의미. 비교기업을 비롯해 자산·실적 비교, 주당 평가가액, 평가액 대비 할인율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A씨는 비교기업군이나 산정 방식(평균 PER 산출 등), 공모가 할인률 등을 통해 공모가가 적절한지 판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예시로 과거 크래프톤이 공모가 산정에서 비교기업으로 월트디즈니를 포함, 공모가 거품론이 일기도 했다. 크래프톤은 당시 논란이 커지자 디즈니를 빼고 공모가를 하향 조정한 바 있다.

A씨는 "고평가된 국내 기업이나 어울리지 않는 해외 기업이 비교기업으로 선정됐다면 주의해야 한다"면서 "공모가가 너무 높을 시 제시된 할인율이 무의미해져 안전마진을 확보하기 어렵다. 이미 상품 가격을 높여놓고 할인행사처럼 싸게 파는 눈속임을 하는 행위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공모주 시장에서 흥행 보증 수표로 꼽히던 2차전지 관련주도 지지부진하다. 지난 9월 30일에 상장한 더블유씨피(WCP)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2차전지용 분리막을 제조하고 있다.

더블유씨피는 공모가를 당초 희망 가격보다 25% 하향 조정해 6만원으로 결정했지만, 상장 직후 공모가보다도 더 낮은 주가를 형성하고 있다. 상장 첫날 시초가는 공모가보다 10% 낮은 5만4000원에, 현재는 4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A씨는 사전에 더블유씨피 투자설명서를 봤다면, 섣부른 투자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인수인의 의견에서 더블유씨피의 주당 평가가액은 13만4303원으로 나타났다. 평가액 대비 할인율은 55.3%, 희망 공모가액 밴드는 8만~10만원 사이로 산출됐다. 하지만 기관투자자의 수요 예측에서 흥행에 실패, 확정 공모가액은 6만원으로 결정됐다.

더블유씨피는 비교기업으로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에코프로비엠 등 국내 유명 2차전지 관련 업체인 6곳과 해외 기업 2곳을 선정했다. 이들 비교기업의 작년 말 연결 기준 매출액은 최소 3000억에서 1조9000억원까지 다양했다. 같은 기간 더블유씨피의 매출액은 1850억원이다. 비교기업들 모두가 더블유씨피보다 매출 규모가 큰 곳이다.

A씨는 더블유씨피와 관련해 다수의 기관투자자가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더블유씨피는 기존 공모가 희망 범위(8만~10만원)를 낮춰 6만원으로 공모가를 확정했는데, 이마저도 주관사가 일부 기관투자자들에게 수요예측 참여를 요청해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더블유씨피는 동종 업계에서 경쟁을 벌이는 SKIET와 가치를 비교하는 등 저평가된 종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공모가 산정에 당국 등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도 많다"면서 "지금 같은 상황에서 투자자 본인이 투자설명서를 통해 신중한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켓컬리 운영사 '컬리' 올해 IPO 나설까?

▶A관계자: 우리(거래소 내부)도 궁금함. 그동안 상장 걸림돌이던 대주주의 낮은 지분율, 재무적 투자자(FI) 보유지분 의무 보유 확약서 등의 이슈는 조율이 끝난 것으로 아는데, 상장 시점은 우리가 알기가 힘들어.

▷기자: 개인적으로 봤을 때는 올해 상장할 것으로 보나?

▶A관계자: 쉽진 않을 것으로 보임. 내가 알기론 컬리가 지난해 투자를 유치할 때 밸류에이션이 4조원이라고 들었기 때문. 지금 상장하면 기업가치 4조원이 가능할지 의문이 듦. 최근 시장에선 기업가치가 1조원 미만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음.

▷기자: 최근 기업가치 평가에 대한 분위기가 달라졌는가?

▶A관계자: 올 하반기 들어 적자기업에 대한 밸류에이션도 상당히 보수적으로 책정되고 있음. 컬리도 계속해서 적자를 내는 상황. 기업가치를 낮추는 것은 신규 진입하는 투자자들에겐 좋겠지만, 기존 투자자들 입장에선 달가운 이야기는 아님.

류은혁 한경닷컴 기자 ehr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