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주최자 없는 행사는 거의 유례 없는 일…그래서 매뉴얼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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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 축제, 과거에도 주최자 없었지만 매년 경찰 배치…성탄절·해수욕장도 매년 인파
경찰관 직무집행법·경찰법선 '안전 관리', 경찰의 기본직무로 규정
김성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지난달 31일 이태원 압사 참사 관련 브리핑을 하는 자리에서 "주최자가 없는 행사가 거의 사실은 상황이나 유례가 없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지침이나 매뉴얼을 갖고 있지 않았다"며 "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주최의 지역축제에 대해선 안전관리 매뉴얼이 있지만 이번 참사의 경우 주최자를 특정할 수 없어 이 매뉴얼이 적용되지 못했다는 지적과 관련해 이같이 해명한 것이다.
김 본부장의 언급처럼 주최자가 없는 행사는 매우 드문 일이고, 현행 법령상 주최자 없는 행사에 정부가 안전관리 대책을 수립할 책임은 없는 것일까. ◇ 성탄절·해수욕장 등 주최자 없는 행사에도 경찰 배치해와
우선 "주최자가 없는 행사 개최는 거의 유례가 없다"는 발언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당장 핼러윈 축제만 해도 올해만 열린 행사가 아니다.
2017년에 20만명이 참가한 것으로 집계되는 등 코로나19 대확산 기간을 제외하면 최근 몇 년 새 수만명 이상이 참석하는 행사로 자리를 잡았다.
성탄절이면 명동·홍대·대학로 등에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고 즐기려는 인파가 쏟아져 나오지만, 대부분 누군가 주최한 행사에 참석하러 가는 것은 아니다.
매년 여름 휴가철이면 해수욕장, 하천, 계곡 등 주요 피서지로 몰려가는 사람들도 대개 비슷한 이유에서 물놀이 장소를 찾아간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가 그동안 이런 행사들에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당장 이번 핼러윈 축제만 봐도 용산구청과 경찰은 수차례 대책회의를 열고 준비를 해왔다.
대책회의에서는 코로나19 방역, 범죄 예방 등은 주요 안건으로 논의됐지만 안전 대책은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또 주최자가 따로 없는데도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2017년 90명, 2018년 37명, 2019년 39명, 2020년 103명, 2021년 265명을 각각 배치했고, 올해에도 137명을 투입했다.
다만 코로나19 상황이던 2020년과 2021년에는 방역수칙 위반 단속을 위해 인력이 증원됐다.
경찰은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면 교통 통제·안전 관리 등에 나서고, 휴가철이면 주요 피서지에 임시 경찰서에 해당하는 '여름경찰관서'를 설치해 범죄 예방, 질서유지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2020년의 경우 전국 63개 피서지에 여름경찰관서가 마련됐다.
설·추석 같은 명절이면 서울역과 고속버스터미널 등 인구가 몰리는 장소에 경찰을 배치하고 사고에 대비해 현장 응급의료소를 설치하기도 했다. ◇ 재난안전법은 뚜렷한 '개최자' 있는 행사에만 안전관리 의무 요구
다만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 대한 정부 매뉴얼이 없다는 김 본부장의 언급은 사실에 부합한다.
지역축제에 대한 안전관리 의무를 부과한 재난안전법 제66조의 11과 관련 시행령을 보면 최대 관람객 1천명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축제를 개최할 경우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고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중앙정부와 지자체 또는 민간이 '개최'하는 지역축제를 대상으로 삼아 이번 핼러윈 축제처럼 명시적 주최자 없이 일반 국민이 삼삼오오 참여하는 행사의 경우 적용 대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재난안전법의 취지를 봤을 때 국가나 지자체에 안전관리 의무가 없다고 보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이 법의 제4조에선 "국가와 지자체는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지며,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를 예방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를 밝힌 원론적인 문구이지만, 이는 그만큼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을 규정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더 넓게 보면 헌법도 국가에 재해 예방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헌법 제34조 6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돼 있다.
헌법재판소 연구관을 지낸 노희범 변호사는 "이번 행사는 주체가 없기 때문에 더욱더 국가가 국민의 생명, 신체,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적극적인 조치를 해야 했다"며 "이는 재난안전법이 없더라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 변호사는 "많은 사람이 모여서 사고의 위험이 있거나 재난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당연히 지원인력, 교통, 의료 등의 대비책을 세우는 것이 국가와 지자체의 의무"라고 덧붙였다. ◇ '위험 예방·안전 관리'는 경찰의 기본적 직무로 성문화
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경찰의 미흡한 대응을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한 가운데 경찰이 책임을 충분히 다했는지와 관련해서 '경찰관 직무집행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해당 법 제5조에서는 "경찰관은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중략) 극도의 혼잡, 그 밖의 위험한 사태가 있을 때" 이런 위험을 방지하는 조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핼러윈 데이 이태원에 수많은 인파가 몰린 것을 이 규정에서 말하는 '극도의 혼잡' 또는 '그 밖의 위험한 사태'라고 볼 수 있다면 경찰이 주최 측의 요청이 없더라도 개입할 근거가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경찰법'을 보면 경찰의 개입 여지는 더 커진다고 할 수 있다.
이 법의 제4조 경찰의 사무를 규정한 조항은 '지역 내 다중운집 행사 관련 혼잡 교통 및 안전 관리'를 경찰의 업무로 명시하고 있다.
다중운집 행사란 보통 행사의 주체, 장소, 수익성·공익성 여부 등과 관계없이 조직화되지 않은 군중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는 축제, 공연, 체육경기, 행사 등을 말한다.
핼러윈 데이를 맞아 이태원에 사람이 몰린 것은 말 그대로 '다중운집 행사'이기 때문에 이번 행사의 안전 관리가 경찰의 사무라고 할 근거로 볼 수 있다.
또 국가배상과 관련해 이번 사고가 발생한 골목길이 국가나 지자체가 보유·관리하는 공도(公道)인지, 아니면 민간의 사도(私道)인지에 따라 배상 책임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법무법인 주한의 송득범 변호사는 "해당 도로가 공도에 해당하고 사고 발생의 위험성이 있어서 공무원에게 작위 의무를 명하는 법령의 규정이 있다면 배상 책임이 인정될 것"이라면서도 "사도에 해당한다면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 법은 공중이용시설의 설계, 제조, 관리상의 결함으로 사람이 죽거나 2∼3개월이 넘는 장기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질환자가 나온 '중대시민재해'가 발생할 경우 중앙행정기관 또는 지자체의 장을 형사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골목길은 이 법령에 따른 공중이용시설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사실상 이 법의 적용이 어렵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도 "법원이 재판을 하다 보면 달리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부연했다. ◇ 대법 "국가·지자체, 법령 위반 아니라도 규범 안 지켰다면 배상책임" 판례
손해배상 소송 쪽을 보면 국가나 지자체가 법령을 명시적으로 위반하지 않았더라도 규범·준칙에 어긋나면 국가·지자체에 책임이 있다는 판례가 이미 나와 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국가가 명시적인 법령을 위반한 경우뿐 아니라 공무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준칙이나 관습과 같은 규범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에도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
이는 국가와 지자체가 재난안전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 해도 이런 준칙·규범을 안 지켰느냐에 대한 판단에 따라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 유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국가배상법 제2조는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힐 경우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대법원은 경찰관에 체포됐던 한 시민이 공권력의 부당행사라며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 조문의 '법령 위반'이 "엄격한 법령 위반뿐 아니라 인권 존중, 권력남용 금지, 신의성실 등의 위반도 포함해 널리 그 행위가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2002년 판시했다.
이일세 강원대 법학전문대학 교수는 '국가배상에 관한 주요 판례 분석'이라는 논문에서 법령 위반이 "단순히 법률과 명령을 위반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널리 성문법뿐만 아니라 관습법, 행정법의 일반원칙, 조리 등의 불문법 위반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다수설"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후 또 다른 사건에서 "국민의 생명·신체·재산 등에 대하여 절박하고 중대한 위험 상태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상당한 우려가 있어서 국민의 생명 등을 보호하는 것을 본래 사명으로 하는 국가가 초법규적·일차적으로 그 위험의 배제에 나서지 않으면 국민의 생명 등을 보호할 수 없는 경우에는 형식적 의미의 법령에 근거가 없더라도 국가나 관련 공무원에 대해 그러한 위험을 배제할 작위(의식적으로 어떤 행위를 함) 의무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다만 "법령의 규정이 없는 때라면 공무원의 부작위(해야 할 행위를 하지 않음)로 인해 침해되는 국민의 법익, 또는 국민에게 발생하는 손해가 어느 정도 심각하고 절박한 것인지, 관련 공무원이 그와 같은 결과를 예견해 그 결과를 회피하기 위한 조처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2011년 우면산 산사태로 자식을 잃은 부모가 서울시와 서초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런 대법원의 판례가 적용돼 지자체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 바 있다. /연합뉴스
경찰관 직무집행법·경찰법선 '안전 관리', 경찰의 기본직무로 규정
김성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지난달 31일 이태원 압사 참사 관련 브리핑을 하는 자리에서 "주최자가 없는 행사가 거의 사실은 상황이나 유례가 없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지침이나 매뉴얼을 갖고 있지 않았다"며 "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주최의 지역축제에 대해선 안전관리 매뉴얼이 있지만 이번 참사의 경우 주최자를 특정할 수 없어 이 매뉴얼이 적용되지 못했다는 지적과 관련해 이같이 해명한 것이다.
김 본부장의 언급처럼 주최자가 없는 행사는 매우 드문 일이고, 현행 법령상 주최자 없는 행사에 정부가 안전관리 대책을 수립할 책임은 없는 것일까. ◇ 성탄절·해수욕장 등 주최자 없는 행사에도 경찰 배치해와
우선 "주최자가 없는 행사 개최는 거의 유례가 없다"는 발언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당장 핼러윈 축제만 해도 올해만 열린 행사가 아니다.
2017년에 20만명이 참가한 것으로 집계되는 등 코로나19 대확산 기간을 제외하면 최근 몇 년 새 수만명 이상이 참석하는 행사로 자리를 잡았다.
성탄절이면 명동·홍대·대학로 등에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고 즐기려는 인파가 쏟아져 나오지만, 대부분 누군가 주최한 행사에 참석하러 가는 것은 아니다.
매년 여름 휴가철이면 해수욕장, 하천, 계곡 등 주요 피서지로 몰려가는 사람들도 대개 비슷한 이유에서 물놀이 장소를 찾아간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가 그동안 이런 행사들에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당장 이번 핼러윈 축제만 봐도 용산구청과 경찰은 수차례 대책회의를 열고 준비를 해왔다.
대책회의에서는 코로나19 방역, 범죄 예방 등은 주요 안건으로 논의됐지만 안전 대책은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또 주최자가 따로 없는데도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2017년 90명, 2018년 37명, 2019년 39명, 2020년 103명, 2021년 265명을 각각 배치했고, 올해에도 137명을 투입했다.
다만 코로나19 상황이던 2020년과 2021년에는 방역수칙 위반 단속을 위해 인력이 증원됐다.
경찰은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면 교통 통제·안전 관리 등에 나서고, 휴가철이면 주요 피서지에 임시 경찰서에 해당하는 '여름경찰관서'를 설치해 범죄 예방, 질서유지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2020년의 경우 전국 63개 피서지에 여름경찰관서가 마련됐다.
설·추석 같은 명절이면 서울역과 고속버스터미널 등 인구가 몰리는 장소에 경찰을 배치하고 사고에 대비해 현장 응급의료소를 설치하기도 했다. ◇ 재난안전법은 뚜렷한 '개최자' 있는 행사에만 안전관리 의무 요구
다만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 대한 정부 매뉴얼이 없다는 김 본부장의 언급은 사실에 부합한다.
지역축제에 대한 안전관리 의무를 부과한 재난안전법 제66조의 11과 관련 시행령을 보면 최대 관람객 1천명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축제를 개최할 경우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고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중앙정부와 지자체 또는 민간이 '개최'하는 지역축제를 대상으로 삼아 이번 핼러윈 축제처럼 명시적 주최자 없이 일반 국민이 삼삼오오 참여하는 행사의 경우 적용 대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재난안전법의 취지를 봤을 때 국가나 지자체에 안전관리 의무가 없다고 보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이 법의 제4조에선 "국가와 지자체는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지며,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를 예방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를 밝힌 원론적인 문구이지만, 이는 그만큼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을 규정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더 넓게 보면 헌법도 국가에 재해 예방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헌법 제34조 6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돼 있다.
헌법재판소 연구관을 지낸 노희범 변호사는 "이번 행사는 주체가 없기 때문에 더욱더 국가가 국민의 생명, 신체,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적극적인 조치를 해야 했다"며 "이는 재난안전법이 없더라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 변호사는 "많은 사람이 모여서 사고의 위험이 있거나 재난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당연히 지원인력, 교통, 의료 등의 대비책을 세우는 것이 국가와 지자체의 의무"라고 덧붙였다. ◇ '위험 예방·안전 관리'는 경찰의 기본적 직무로 성문화
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경찰의 미흡한 대응을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한 가운데 경찰이 책임을 충분히 다했는지와 관련해서 '경찰관 직무집행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해당 법 제5조에서는 "경찰관은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중략) 극도의 혼잡, 그 밖의 위험한 사태가 있을 때" 이런 위험을 방지하는 조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핼러윈 데이 이태원에 수많은 인파가 몰린 것을 이 규정에서 말하는 '극도의 혼잡' 또는 '그 밖의 위험한 사태'라고 볼 수 있다면 경찰이 주최 측의 요청이 없더라도 개입할 근거가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경찰법'을 보면 경찰의 개입 여지는 더 커진다고 할 수 있다.
이 법의 제4조 경찰의 사무를 규정한 조항은 '지역 내 다중운집 행사 관련 혼잡 교통 및 안전 관리'를 경찰의 업무로 명시하고 있다.
다중운집 행사란 보통 행사의 주체, 장소, 수익성·공익성 여부 등과 관계없이 조직화되지 않은 군중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는 축제, 공연, 체육경기, 행사 등을 말한다.
핼러윈 데이를 맞아 이태원에 사람이 몰린 것은 말 그대로 '다중운집 행사'이기 때문에 이번 행사의 안전 관리가 경찰의 사무라고 할 근거로 볼 수 있다.
또 국가배상과 관련해 이번 사고가 발생한 골목길이 국가나 지자체가 보유·관리하는 공도(公道)인지, 아니면 민간의 사도(私道)인지에 따라 배상 책임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법무법인 주한의 송득범 변호사는 "해당 도로가 공도에 해당하고 사고 발생의 위험성이 있어서 공무원에게 작위 의무를 명하는 법령의 규정이 있다면 배상 책임이 인정될 것"이라면서도 "사도에 해당한다면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 법은 공중이용시설의 설계, 제조, 관리상의 결함으로 사람이 죽거나 2∼3개월이 넘는 장기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질환자가 나온 '중대시민재해'가 발생할 경우 중앙행정기관 또는 지자체의 장을 형사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골목길은 이 법령에 따른 공중이용시설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사실상 이 법의 적용이 어렵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도 "법원이 재판을 하다 보면 달리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부연했다. ◇ 대법 "국가·지자체, 법령 위반 아니라도 규범 안 지켰다면 배상책임" 판례
손해배상 소송 쪽을 보면 국가나 지자체가 법령을 명시적으로 위반하지 않았더라도 규범·준칙에 어긋나면 국가·지자체에 책임이 있다는 판례가 이미 나와 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국가가 명시적인 법령을 위반한 경우뿐 아니라 공무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준칙이나 관습과 같은 규범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에도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
이는 국가와 지자체가 재난안전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 해도 이런 준칙·규범을 안 지켰느냐에 대한 판단에 따라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 유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국가배상법 제2조는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힐 경우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대법원은 경찰관에 체포됐던 한 시민이 공권력의 부당행사라며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 조문의 '법령 위반'이 "엄격한 법령 위반뿐 아니라 인권 존중, 권력남용 금지, 신의성실 등의 위반도 포함해 널리 그 행위가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2002년 판시했다.
이일세 강원대 법학전문대학 교수는 '국가배상에 관한 주요 판례 분석'이라는 논문에서 법령 위반이 "단순히 법률과 명령을 위반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널리 성문법뿐만 아니라 관습법, 행정법의 일반원칙, 조리 등의 불문법 위반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다수설"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후 또 다른 사건에서 "국민의 생명·신체·재산 등에 대하여 절박하고 중대한 위험 상태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상당한 우려가 있어서 국민의 생명 등을 보호하는 것을 본래 사명으로 하는 국가가 초법규적·일차적으로 그 위험의 배제에 나서지 않으면 국민의 생명 등을 보호할 수 없는 경우에는 형식적 의미의 법령에 근거가 없더라도 국가나 관련 공무원에 대해 그러한 위험을 배제할 작위(의식적으로 어떤 행위를 함) 의무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다만 "법령의 규정이 없는 때라면 공무원의 부작위(해야 할 행위를 하지 않음)로 인해 침해되는 국민의 법익, 또는 국민에게 발생하는 손해가 어느 정도 심각하고 절박한 것인지, 관련 공무원이 그와 같은 결과를 예견해 그 결과를 회피하기 위한 조처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2011년 우면산 산사태로 자식을 잃은 부모가 서울시와 서초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런 대법원의 판례가 적용돼 지자체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 바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