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온전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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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성 한국딜로이트그룹 총괄대표
필자는 올 9월에 딜로이트 글로벌(Deloitte Global)이 주최하는 월드 미팅에 다녀왔다. 세계 각국의 딜로이트 리더가 모이는 자리인데, 로마에서 진행하다 보니 바티칸 구경과 근교 여행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어느 하루, 우리는 행사 참석을 위해 버스에 탑승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장소는 서프라이즈라고 했다.
영문도 모른 채 버스에서 내리니, 바티칸시티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모인 알현실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친히 걸어와 말씀을 전했다. 자칫 어색할 법한 사기업 리더와 교황의 만남이었지만, 그분이 전달한 구체적인 메시지는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다.
교황님은 우리에게 ‘인테그럴 컨설턴트(integral consultant)’가 돼 달라고 했다. ‘온전한’ 전문가라니, 무슨 말씀이신가.
우리는 세상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주변을 둘러보며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즉, 전문가 집단으로서 보유하고 있는 지적 역량과 네트워크는 많은 영역에서 중요한 결정을 유도할 수 있고, 심지어 기후변화에도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감명받음과 동시에 충격도 있었다. 지금껏 나와 내 주변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귀국해 이런 감동적인 경험을 주변에 얘기하니, 많은 분이 ‘두 교황’이라는 영화를 볼 것을 추천했다. 전임 베네딕토 교황과 프란치스코 추기경이 서로의 ‘다름’은 ‘틀림’이 아님을 이해하고 화합한다는 내용이다. 둘은 변해버린 시대를 함께 살아가지만 반대되는 신념의 소유자다. 그래서 끊임없이 ‘타협’과 ‘변화’에 대해 왈가왈부한다. “당신은 변화를 수용하기 위해 바뀐 것이 아니라 단지 타협했을 뿐이다”라며 서로에게 맞선다.
이를 요즘 화두인 환경·사회·지배구조(ESG)와 연결해 생각해봤다. 환경 및 사회적 요소를 고려하면서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발상은 아주 매력적이다. 그런데 자주 간과되는 점이 있다. 이 공식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적합한 인프라 혹은 정책이 구축돼 있어야만 한다. 이렇다 보니 대부분 기업체는 ESG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만, ‘온전한’ ESG를 실현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소한 한국에서는 아직은 타협의 단계에 있는 듯하다.
‘두 교황’의 결말을 우리는 알고 있다. ‘타협’하지 않고 ‘변화’를 수용한 프란치스코 추기경이 바로 현재의 교황이다. 이렇게 변화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실 변화를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익숙함을 포기하고 잘 모르는 상황에 대응해야 한다는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름이 틀림이 아니듯이, 변화도 불확실성이 아니다. 변화는 새로운 익숙함을 만들어가는 과정일 뿐…. 작은 일상부터 조금씩 바꿔가면 되지 않을까? 작은 변화가 쌓이면서 ‘온전한’ 변화가 찾아올 것 같다.
영문도 모른 채 버스에서 내리니, 바티칸시티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모인 알현실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친히 걸어와 말씀을 전했다. 자칫 어색할 법한 사기업 리더와 교황의 만남이었지만, 그분이 전달한 구체적인 메시지는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다.
교황님은 우리에게 ‘인테그럴 컨설턴트(integral consultant)’가 돼 달라고 했다. ‘온전한’ 전문가라니, 무슨 말씀이신가.
우리는 세상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주변을 둘러보며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즉, 전문가 집단으로서 보유하고 있는 지적 역량과 네트워크는 많은 영역에서 중요한 결정을 유도할 수 있고, 심지어 기후변화에도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감명받음과 동시에 충격도 있었다. 지금껏 나와 내 주변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귀국해 이런 감동적인 경험을 주변에 얘기하니, 많은 분이 ‘두 교황’이라는 영화를 볼 것을 추천했다. 전임 베네딕토 교황과 프란치스코 추기경이 서로의 ‘다름’은 ‘틀림’이 아님을 이해하고 화합한다는 내용이다. 둘은 변해버린 시대를 함께 살아가지만 반대되는 신념의 소유자다. 그래서 끊임없이 ‘타협’과 ‘변화’에 대해 왈가왈부한다. “당신은 변화를 수용하기 위해 바뀐 것이 아니라 단지 타협했을 뿐이다”라며 서로에게 맞선다.
이를 요즘 화두인 환경·사회·지배구조(ESG)와 연결해 생각해봤다. 환경 및 사회적 요소를 고려하면서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발상은 아주 매력적이다. 그런데 자주 간과되는 점이 있다. 이 공식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적합한 인프라 혹은 정책이 구축돼 있어야만 한다. 이렇다 보니 대부분 기업체는 ESG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만, ‘온전한’ ESG를 실현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소한 한국에서는 아직은 타협의 단계에 있는 듯하다.
‘두 교황’의 결말을 우리는 알고 있다. ‘타협’하지 않고 ‘변화’를 수용한 프란치스코 추기경이 바로 현재의 교황이다. 이렇게 변화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실 변화를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익숙함을 포기하고 잘 모르는 상황에 대응해야 한다는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름이 틀림이 아니듯이, 변화도 불확실성이 아니다. 변화는 새로운 익숙함을 만들어가는 과정일 뿐…. 작은 일상부터 조금씩 바꿔가면 되지 않을까? 작은 변화가 쌓이면서 ‘온전한’ 변화가 찾아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