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폐기 시점 아닌데 멀쩡한 음식 버려져”
현행법상 식품에는 판매와 섭취가 가능한 기한을 표시해야 하는데 제품 특성에 따라 제조일자, 유통기한, 품질유지기한 등을 사용한다. 유통기한(Sell-by date)은 소비자에게 판매가 허용되는 기간을 뜻한다. 소비기한(Use-by date)은 제품에 표시된 조건대로 보관했다면 먹어도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간을 의미한다. 미국, 유럽, 일본, 호주 등은 소비기한을 활용한다. 반면 국내 가공식품의 90% 이상은 유통기한을 적고 있다.통상 유통기한은 식품이 변질되는 시점보다 60~70%, 소비기한은 80~90% 앞선 수준에서 결정된다.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바꾸면 매장에서 판매할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진다는 얘기다.
지난해 개정된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은 2023년 1월 1일부터 식품에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쓰도록 했다. 다만 포장을 당장 교체하기 어려운 기업들을 고려해 1년은 계도기간으로 운영하고, 변질이 쉽게 되는 우유류에는 2031년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정부가 제도 개편에 나선 것은 불필요하게 버려지는 음식물을 줄이기 위해서다. 유통기한이 조금 지나도 품질에 문제가 없지만 소비자들은 ‘상한 음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폐기 수순을 밟는다는 것이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도 소비자가 유통기한을 식품 폐기 시점으로 오인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소비기한 사용을 권장했다.
유엔은 “세계적으로 매일 8억1000만 명이 굶주리고 있지만 식량의 3분의 1은 버려진다”고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우리나라 식품 폐기량은 연간 548만t, 처리 비용은 1조960억원에 달한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소비기한 도입으로 소비자 편익이 연간 3301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쓰레기 정말 줄어들까 … 실효성 논란도
하지만 보관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식품 안전 사고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형마트나 백화점과 달리 식품 보관 온도가 들쑥날쑥한 영세 상점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정부 의도대로 쓰레기를 줄이는 효과를 낼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대형 식품업체들은 당분간 날짜는 그대로 놔두고 유통기한이라는 단어만 소비기한으로 바꾼다는 계획이다. 이들로선 섣불리 소비기한으로 전환했다가 발생할 수 있는 ‘불상사’를 막는 것이 비용 절감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실제 소비기한을 표기하려면 유통기한보다 늘어난 기간 동안 제품이 안전하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며 “소비자 인식을 바꾸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