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사고현장에서 소방구급 대원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30일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사고현장에서 소방구급 대원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지난 3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선생님,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라는 제목의 글이 확산했다. 지난달 29일 벌어진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골목 앞 술집에서 문을 열어줘 살아남았다는 30대 생존자 A씨가 남긴 글이었다. "가지 말았어야 했다"면서 살아남아 자책감에 빠진 그에게 상담사가 "가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를 가도 안전히 돌아오는 게 맞다. 놀다가 참사를 당한 게 아니라 일상을 살다가 참사를 당한 것"이라고 위로하자 회복이 시작됐다.

A씨의 이 같은 사연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거기 있지 않았어도 힘들었는데 너무나 위로가 됐다", "힘들 때 마주 볼 용기가 조금은 생겼다"는 등 격려와 공감의 말을 꺼냈다.

이태원 참사 후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이 일반 국민들에까지 번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A씨 사례처럼 상담을 추천하고 있다. 특히 이번 참사로 또래의 죽음을 뉴스로 접한 2030세대의 경우 최근 경기 하강 우려에 따른 사회경제적 부담까지 커지면서 우울감이 더 커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2030세대 걱정되는 2022년

한국은 이미 너무나 우울한 나라다. 지난해 대한신경과학회가 공개한 202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2019년 우울증 유병률은 36.8%로 조사 대상국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오히려 한국보다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했던 미국이나 영국, 일본 등 대부분 국가보다 더 높았다. 자살률도 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에선 경제 및 사회적으로 기회를 박탈당하는 2030세대를 중심으로 극단적 선택이 증가하는 모양새다. 지난달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고의적 자해로 병원을 찾은 환자 중 20대가 605명(23%), 30대 352명(13%)으로 가장 많았다. 20대 고의적 자해 환자 430명(71%)이 여성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코로나19의 영향 등으로 좁아진 취업 문과 경제적 불안정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진단이 나온다. 특히 올해 20대 여성의 실업률 개선세는 남성보다 떨어지고 있다.

다만 이번 국가적 재앙과 같은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2014년에는 연령별 자살률이 모두 감소하고 특히 여성이 모든 연령층에서 자살률이 감소했으나, 2030세대 남성에서 자살률이 전년보다 소폭 높게 나타났다. 당시 이를 두고도 명확한 해석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프=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그래프=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전통적으로 경제 성장률과 자살률 간 역의 상관관계를 가진다. 자살률이 가장 많이 급등했던 시기는 경제 위기가 불거졌던 시기와 대체로 일치한다.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매년 전체 자살로 인한 사망자 중 학생·가사·무직 비중이 약 60% 안팎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가장 최근 통계인 2020년에는 전체 13195명 중 7771명이 학생·가사·무직으로 나타나 58.9%에 달했다.

지난 9월 블룸버그도 한국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자살은 경제가 안 좋아지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며 "경기 하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고 고물가를 억제하기 위한 고금리로 가계와 기업금융이 압박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태원 참사까지 터졌으니 2030세대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는 것.

자녀 둔 부모들도 "불안 계속된다"

자녀를 둔 부모 세대의 정신적 타격도 적지 않다. 20대 자녀를 둔 60대 여성 박 모 씨는 "참사 소식을 전하자마자 떨어져 사는 아들에게 전화했으나 오전 내내 받지 않아 불안했다"면서 "결국 아들이 늦잠을 잔 것으로 확인되어 안도했지만, 그때의 불안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초등학생 자녀를 두었다는 40대 여성 김 모 씨도 최근 들어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고 한다. 김 씨는 "뉴스 보다가 안타까움에 눈물이 그냥 난다"면서 "아이들에게 직접 보여준 적은 없지만, 친구들끼리 정보공유를 다 한 것 같더라. 찾아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전했다.

지난달 30일 신경정신의학회는 "인명피해가 큰 사고로 인해 국민은 또 하나의 커다란 심리적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됐다"면서 사고 당시 현장 영상이나 사진은 보지 말 것을 권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참사로 사망한 분들의 유가족과 지인, 부상당한 분들과 가족, 목격자, 사고대응인력 등을 비롯한 많은 국민들의 큰 충격이 예상되며 대규모의 정신건강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매년 극단적 선택 1만명 넘는데…담당 공무원은 9명뿐

정부는 사상자와 가족 등을 중심으로 총리실 산하로 지원센터를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향후 국민들의 우울증이나 극단적 선택을 예방할 수 있는 정책 수립을 본격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극단적 선택을 예방하는 정책을 전담하는 보건복지부 자살예방정책과의 담당 공무원은 9명에 그친다. 매년 1만명이 넘는 자살자가 나오는 점을 감안하면 터무니없이 적다는 지적이다. 2019년부터 국무총리가 민관 공동으로 자살예방정책위원회를 개최하고 있지만 상설기구가 아니고, 지역마다 있는 곳과 아닌 곳이 있어 효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오고는 했다.

이웃국 일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일본은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0만명당 자살 인구가 20명을 웃돌았으나 최근에는 10명대 중반 이하로 내려왔다. 지난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내놓은 자살예방 문헌집에 따르면 일본은 2005년 일부 국회의원들이 자살 예방을 위한 긴급 제안서를 제출하고, 보건복지부 장관과 노동복지 장관이 자살문제를 해결하기로 약속하면서 바로 다음 달인 6월 일본의 자살예방 기본법을 제정했다. 단순히 정신건강 문제로 본 것이 아니라 경제나 노동 시장과도 맞닿아있는 문제라고 판단한 것이다. 2007년 자살예방정책의 일반 원칙을 제정한 후, 학교, 직장, 지역 등 여러 방면에서 자살 예방과 유족 지원이 이뤄졌고 그 결과, 10년째 일본의 자살률을 떨어지고 있다.
불안, 우울 등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 분들은 24시간 운영되는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1577-0199)를 통해 상담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심리학회에서도 무료 심리상담(1670-5724)을 매일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제공하고 있습니다. 전국 244개 가족센터(1577-9337)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