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이것은 요리책인가, 에세이인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것들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신간 <사유 식탁>을 냈다. 그런데 당황스럽다. 이것은 요리책인가, 에세이인가. 책은 먹음직스러운 요리 사진과 레시피로 가득하다. 그 사이사이에 철학적 사유가 깃든 글이 곁들여지지 않았다면, 저자가 알랭 드 보통(사진)이란 걸 눈치채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는 이런 책을 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음식을 건강 증진에 활용하지 못해 안달이 난 모양새다. 하지만, 요리와 음식이 감정 상태나 심리적 안녕에 미치는 영향에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책은 레몬, 라임, 무화과, 아보카도, 올리브유 등을 16가지 주요 식재료로 꼽는다. 설명이 평범하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꼽은 이상적인 시민의 12가지 미덕을 변형해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16가지 미덕을 식재료에 빗대 말한다.

무화과는 껍질만 봐선 수수하고 보잘것없다. 그러나 그 안엔 밝고 풍성하면서 달콤한 속살이 감춰져 있다. 성숙함이란 미덕을 엿볼 수 있다. 보통은 이렇게 말한다. “성숙해지려는 인간의 모습은 무화과와 너무나도 닮았다. 무화과를 상징으로 삼은 이상적인 종교가 존재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만 같다.”

겨자와 비슷한 매운맛이 나면서 상큼한 향을 가진 향신료인 케이퍼는 냉소를 상징하는 식재료로 꼽혔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약간의 냉소는 필요하다면서. 책은 “냉소는 인간의 본성에 자리한 어둡고 이기적인 구석을 정확하고도 침착하게 인식하는 능력”이라며 “사람들의 동기가 항상 순수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해준다”고 설명한다.

132가지 요리법을 소개하는 부분에 들어가면 ‘에세이-요리법-음식 사진’으로 이뤄진 구성이 반복된다. 요리책을 보듯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다. 아무 데나 펼쳐 읽거나 자신의 상황에 맞는 부분을 찾아 읽으면 된다.

예컨대 ‘짝사랑도 치료가 될까?’라는 글에서 보통은 “우리는 몇몇 외적인 매력만 보고, 짝사랑 상대가 기적적으로 인간의 단점을 지니지 않았다고 단정한다”고 말한다. 즉, “우리는 짝사랑하는 사람의 ‘매력을 알아서’가 아니라 ‘단점을 몰라서’ 집착한다”는 것이다. 짝사랑이 격렬하고도 지독하게 지속되는 요인이다. 그런 점에서 치료법은 간단하다. 상대를 좀 더 알면 된다.

‘감각적 사유’라는 글에선 지나친 이성주의를 경계한다. “과도하게 이성적으로 행동하면 삶을 편하게 사는 데 중요한 것들을 상당 부분 잊거나 무시하기 쉽다”는 것이다. 아름답지만 앉기 불편한 바우하우스식 의자, 이론적으로는 훌륭하지만 시민의 현실 감정을 반영하지 못한 정책 등이 그런 예다.

[책마을] 이것은 요리책인가, 에세이인가
‘어떻게 열린 마음을 지닐까’에선 “열린 마음의 소유자는 이미 자신의 지독한 괴팍함을 깨닫고 있기에 타인의 괴팍함에 놀라지 않는다”고 말한다.

보통은 스물네 살 때 쓴 첫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통해 사랑에 빠진 인물들의 심리를 정밀하게 파헤치며 주목받았다. 이후 사랑, 불안, 여행, 건축, 미술, 종교 등 다양한 주제로 책을 써왔다. 국내 출간된 책만 20여 권에 이른다. 하지만 너무 많은 다작은 독(毒)이 된다. 똑같은 내용을 되풀이하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도 번득이는 통찰이 없지는 않지만, 새롭다는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는다.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누군가에겐 보통의 유려한 글에 요리법까지 담긴 멋진 책이겠지만, 또 누군가에겐 요리책도 에세이도 아닌 어중간한 책으로 여겨질 수 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