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서 관제 반미시위…대학가 반정부 시위도 격화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이슬람공화국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이란 해방' 발언에 대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모양"이라며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이란 인터내셔널' 방송에 따르면 라이시 대통령은 이날 열린 주(駐)이란 미국대사관 점거 43주년 기념 관제행사에 참석해 미국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그는 서방 지원을 받던 왕정이 1979년 혁명으로 쫓겨나고 이슬람 공화국이 들어선 43년 전에 이란이 이미 해방됐다며 "(바이든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 같다"며 "이란 젊은 남녀들은 단호하다.

우리는 당신(바이든)의 악마적 욕심을 실행하도록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979년 11월 4일 무장한 과격파 대학생들은 팔레비 국왕이 쫓겨난 직후 미국 대사관을 점거해 미국인 52명을 인질로 붙잡고 444일간 억류했으며, 이란 당국은 이 사건을 매년 기념하고 있다.

이날 이란 국영TV에는 수만명이 전국 곳곳에서 열린 관제 시위에 참여해 '미국에 죽음을' 등의 노래를 부르고 반미 구호를 외치는 장면이 방영됐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앞서 지난 3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린 중간선거 유세에서 민주당 후보 지지 연설을 하면서 "걱정 말라. 우리는 이란을 해방시킬 것이다.

그들(이란인들)은 곧 스스로를 해방시킬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란을 상대로 한 강경 조치 단행을 예고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등 파문이 일자,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4일 "바이든 대통령은 이란 시위대와의 연대를 표현했던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이란에서는 9월 중순부터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 불량 착용을 이유로 체포돼 조사를 받던 중 9월 16일 의문사한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이번 시위는 전국 곳곳으로 들불처럼 번지며 이란 정권의 위기감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아미니 의문사 후 망자를 위한 이란의 전통적 애도 기간인 40일이 마무리된 시점인 10월 26일을 전후해 추모 열기가 더해지면서 시위 규모가 더욱 커졌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단체 '이란인권'(IHR)에 따르면 보안부대가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숨진 사람의 수는 지난 3일 기준으로 176명으로 집계됐다.

시위가 격화되면서 당국의 진압도 더욱 강경해지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란학생연합(ISU)을 인용해 이란 보안부대가 전국의 대학가를 덮쳐 학생 수십명을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최근 이란 당국은 체포한 시위 참가자들에게 사형까지 가능한 국가안보 관련 죄목들을 적용하고 있으며, 체포된 이들 중 상당수는 생사나 행방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기자들도 다수 체포됐다.

뉴욕에 본부를 둔 비영리단체 '언론인보호위원회'(CPJ)에 따르면 이란 당국은 시위 진압 과정에서 기자 51명을 체포했다.

이 중 14명은 보석으로 석방된 상태다.

AFP통신은 이와 별도로 이란 남동부 시스탄-발루헤스탄 주에서 일어난 소요사태에 따른 사망자 수가 101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4일 자헤단 남부에 위치한 카시에서 보안부대가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발포했으며, 아동을 포함해 10명이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란 반(半)관영 타스님 통신은 카시에서 시위대가 정부 건물을 공격하고 차량에 불을 지른 후 보안부대가 발포해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없는 인원이 부상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