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광부 "길이 있을 것이란 희망갖고 지하갱도 전부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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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하씨 연합뉴스 인터뷰…"머리 '안전등' 꺼지기 직전 구조돼"
"응원해준 분들께 감사"…이태원참사엔 "대형참사 자꾸 일어나면 안돼" "나오니까 좋네요. 갱도 안에서 서로 달래고 위로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어요."
지난달 26일 경북 봉화 광산 사고로 지하 갱도에 고립됐다 221시간만에 '기적의 생환'을 한 박정하(62) 씨는 구조 뒤 입원해 있던 안동병원에서 5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당시 상황을 담담하게 전했다.
선산부(작업반장) 박씨는 후산부(보조 작업자) 박모(56) 씨와 함께 지하 190m의 갱도에 고립돼 있었다.
작업반장 박씨는 "처음 사고가 났을 때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많은 분께서 힘 써주시고 응원해주셔서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구조 당국과 국민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어 그는 "뭘 해보든지 해보면 길은 있을 것이란 희망을 계속 가지고 (매몰된) 갱도 안을 돌아다녔다"며 "둘이 똑같이 한마음 한뜻으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들께 조금이나마 희망을 줄 수 있었다는 데서 저 역시 감사하다"며 "정부 기관에서 협조해주시고,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데 다시 한번 감사하고, 저희를 응원해주고 성원해주신 많은 분께도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거듭 감사 말을 전했다.
기적처럼 구조된 순간을 떠올리며 그는 "그렇게 멀리서 들려오기만 했던 '발파 소리'가 이번에는 진짜 발파였고, 반대편 갱도와 관통이 되며 구조대와 마주했다"고 말을 이어갔다.
안대를 쓴 그는 같은 병실에 입원한 보조 작업자 박씨를 향해 고개를 돌린 뒤 "오늘 지금도 못 나왔다면, 우리는 진짜 그 막장 안에서 둘이 부둥켜안고 울고 있을 거야"라며 마냥 웃었다.
마찬가지로 안대를 쓴 보조 작업자 박씨는 이불을 입술 위로 끌어당기며 웃음으로 답했다. 작업반장 박씨가 인터뷰하는 내내 보조 작업자 박씨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221시간 동안 두 박씨는 갇힌 갱도서 탈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한다.
사고 이틀째부터 사흘째까지는 괭이로 '램프웨이'(평면도 상 하단 갱도) 구간 10여m를 천장 꼭짓점 부분이 보일 때까지 파냈다.
작업반장 박씨는 "힘에 부쳐 포기할 거면 빨리 포기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며 "우회할 수 있는 관통 갱도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들어갈 수 있는 갱도마다 전부 들어가서 확인을 했는데, 폐석들로 꽉 차 있었다"고 했다.
직접 갱도 뚫기에는 실패했어도 둘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탈출을 계속 시도했다.
갱도 내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탈출구를 모색했다.
박씨는 "갱도 안에 사다리가 있었다. 지상까지 300m 거리면 가겠구나(탈출하겠구나) 싶었다"며 "그 사다리를 가지고 수직으로 타고 올라가려고 했는데, 올라가다 보니 토사가 쏟아져 내린 탓에 나무, 파이프, 에이치빔 이런 것들로 꽉 차서 발파하지 않고는 올라갈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때 보조작업자 박씨가 "형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올라가 봅니다. 어떻게 상황이 변했는지 확인을 해봅시다"라고 해서 다시 수직갱도를 조금 올라갔으나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작업반장 박씨는 "지상과 소통을 해보려고 갱도 내 파이프를 번갈아 가며 7번씩, 40분 정도 때리기도 하고, '거기 누구 없냐'고 소리를 내지르기도 했지만, 인기척이 없었다"고 했다.
이어 "이마에 달린 안전등의 배터리가 소진될까 봐, 그게 제일 두려웠다"며 "구조되던 날, 두 사람의 안전등이 모두 '깜빡깜빡'하며 동시에 소진 신호를 알렸다"며 끔찍했던 순간도 기억했다. 작업반장 박씨는 면회를 온 이철우 경북도지사에게 "대한민국 좋은 나라죠. 그런데 자꾸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된다"며 "(구출되고) 나와서 보니까 우리나라에 아주 큰 대형 참사(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다고 들었다. 그런 일이 자꾸 일어나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두 광부는 지난달 26일 발생한 경북 봉화군 아연 채굴 광산 매립 사고로 지하 190m 수직갱도에서 만 9일하고도 5시간 만에 고립됐다가 기적처럼 생환했다.
/연합뉴스
"응원해준 분들께 감사"…이태원참사엔 "대형참사 자꾸 일어나면 안돼" "나오니까 좋네요. 갱도 안에서 서로 달래고 위로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어요."
지난달 26일 경북 봉화 광산 사고로 지하 갱도에 고립됐다 221시간만에 '기적의 생환'을 한 박정하(62) 씨는 구조 뒤 입원해 있던 안동병원에서 5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당시 상황을 담담하게 전했다.
선산부(작업반장) 박씨는 후산부(보조 작업자) 박모(56) 씨와 함께 지하 190m의 갱도에 고립돼 있었다.
작업반장 박씨는 "처음 사고가 났을 때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많은 분께서 힘 써주시고 응원해주셔서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구조 당국과 국민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어 그는 "뭘 해보든지 해보면 길은 있을 것이란 희망을 계속 가지고 (매몰된) 갱도 안을 돌아다녔다"며 "둘이 똑같이 한마음 한뜻으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들께 조금이나마 희망을 줄 수 있었다는 데서 저 역시 감사하다"며 "정부 기관에서 협조해주시고,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데 다시 한번 감사하고, 저희를 응원해주고 성원해주신 많은 분께도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거듭 감사 말을 전했다.
기적처럼 구조된 순간을 떠올리며 그는 "그렇게 멀리서 들려오기만 했던 '발파 소리'가 이번에는 진짜 발파였고, 반대편 갱도와 관통이 되며 구조대와 마주했다"고 말을 이어갔다.
안대를 쓴 그는 같은 병실에 입원한 보조 작업자 박씨를 향해 고개를 돌린 뒤 "오늘 지금도 못 나왔다면, 우리는 진짜 그 막장 안에서 둘이 부둥켜안고 울고 있을 거야"라며 마냥 웃었다.
마찬가지로 안대를 쓴 보조 작업자 박씨는 이불을 입술 위로 끌어당기며 웃음으로 답했다. 작업반장 박씨가 인터뷰하는 내내 보조 작업자 박씨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221시간 동안 두 박씨는 갇힌 갱도서 탈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한다.
사고 이틀째부터 사흘째까지는 괭이로 '램프웨이'(평면도 상 하단 갱도) 구간 10여m를 천장 꼭짓점 부분이 보일 때까지 파냈다.
작업반장 박씨는 "힘에 부쳐 포기할 거면 빨리 포기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며 "우회할 수 있는 관통 갱도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들어갈 수 있는 갱도마다 전부 들어가서 확인을 했는데, 폐석들로 꽉 차 있었다"고 했다.
직접 갱도 뚫기에는 실패했어도 둘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탈출을 계속 시도했다.
갱도 내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탈출구를 모색했다.
박씨는 "갱도 안에 사다리가 있었다. 지상까지 300m 거리면 가겠구나(탈출하겠구나) 싶었다"며 "그 사다리를 가지고 수직으로 타고 올라가려고 했는데, 올라가다 보니 토사가 쏟아져 내린 탓에 나무, 파이프, 에이치빔 이런 것들로 꽉 차서 발파하지 않고는 올라갈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때 보조작업자 박씨가 "형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올라가 봅니다. 어떻게 상황이 변했는지 확인을 해봅시다"라고 해서 다시 수직갱도를 조금 올라갔으나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작업반장 박씨는 "지상과 소통을 해보려고 갱도 내 파이프를 번갈아 가며 7번씩, 40분 정도 때리기도 하고, '거기 누구 없냐'고 소리를 내지르기도 했지만, 인기척이 없었다"고 했다.
이어 "이마에 달린 안전등의 배터리가 소진될까 봐, 그게 제일 두려웠다"며 "구조되던 날, 두 사람의 안전등이 모두 '깜빡깜빡'하며 동시에 소진 신호를 알렸다"며 끔찍했던 순간도 기억했다. 작업반장 박씨는 면회를 온 이철우 경북도지사에게 "대한민국 좋은 나라죠. 그런데 자꾸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된다"며 "(구출되고) 나와서 보니까 우리나라에 아주 큰 대형 참사(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다고 들었다. 그런 일이 자꾸 일어나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두 광부는 지난달 26일 발생한 경북 봉화군 아연 채굴 광산 매립 사고로 지하 190m 수직갱도에서 만 9일하고도 5시간 만에 고립됐다가 기적처럼 생환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