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필이 빚어낸 관(管)과 현(絃)의 '환상 하모니' 2 [송태형의 현장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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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빈 필하모닉 내한공연' 둘째 날
오스트리아 거장 벨저-뫼스트 지휘로
브람스 '비극적 서곡'과 교향곡 3번
빈필 고유의 음색과 앙상블로 들려줘
R.슈트라우스 교향시 '자라투스라는…'
하나된 앙상블로 다채로운 음향 선사
오스트리아 거장 벨저-뫼스트 지휘로
브람스 '비극적 서곡'과 교향곡 3번
빈필 고유의 음색과 앙상블로 들려줘
R.슈트라우스 교향시 '자라투스라는…'
하나된 앙상블로 다채로운 음향 선사
브람스의 교향곡 3번 3악장을 두 달 전쯤 ‘음악이 흐르는 아침’이란 코너에 가을에 어울리는 음악으로 소개했습니다. 이 악장에는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을 달콤쌉싸름한 12마디 주제 선율이 3박자의 왈츠풍 리듬을 타고 전반부와 후반부에 세 번씩 반복되는 데 각각 연주하는 악기가 다릅니다. ‘첼로-바이올린-플루트·오보에·호른-호른-오보에-바이올린’ 순서인데 어떤 악기의 음색이 가을의 감성과 가장 잘 맞는지 비교하며 들어봐도 좋을 듯싶다고 썼습니다.
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쳐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빈필) 연주에서는 ‘30년차 호른 수석’ 롤란트 야네직이 부른 ‘빈 호른’의 음색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깊어가는 가을밤과 묵직하고 호젓하게 흐르는 빈 호른의 3악장 주제 선율이 무척 잘 어울렸습니다. 1부 커튼콜에서 지휘자 프란츠 벨저-뫼스트가 다른 연주자들과는 달리 두 손으로 야네직을 일으켜 세운 것은 베테랑에 대한 대우이자 훌륭한 연주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2022 빈 필하모닉 내한공연’ 둘째 날 공연 현장입니다. 전날과 같이 현악 파트의 바흐 ‘G선상의 아리아’ 연주로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묵념을 올린 후 본 공연이 시작됐습니다.
이번 빈필의 양일 프로그램을 연속선상으로 펼쳐보면 이렇습니다. <바그너의 ‘파르지팔’ 전주곡·리하르트(R.) 슈트라우스의 ‘죽음과 변용’-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브람스의 ‘비극적 서곡’·교향곡 3번-R.슈트라우스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되는데 유기적인 구성이란 생각이 듭니다. 처음과 끝에 R. 슈트라우스의 교향시를 배치하고 사이에 여러모로 공통점이 있는 교향곡 두 편을 넣었습니다. 음악 형식에 비한다면 ‘A-B-B'-A'’정도가 될 듯합니다.
각 공연의 첫 곡은 이후 연주될 1부 메인곡과 어울리는 곡으로 정했습니다. 전날에 ‘파르지팔’ 전주곡이 ‘죽음과 변용’과 한 곡처럼 연주됐고, 이날엔 브람스의 잘 알려진 두 서곡 중 전체적인 분위기나 템포, 악기 편성 면에서 교향곡 3번과 비슷한 ‘비극적 서곡’이 앞서 연주됐습니다. 전날과 같이 첫 곡에 이은 1부 메인곡에서 빈필의 본색이 강하게 드러났습니다. 빈필이 연주하는 브람스의 교향곡 3번은 음색이나 템포, 앙상블 등에서 확실히 달랐습니다. 이 작품은 1883년 12월 한스 리히터가 지휘하는 빈필이 빈 무지크페라인에서 초연했습니다. 빈필은 요즘도 오보에, 호른 등 주요 관악기에서 현대 개량 악기 대신 19세기 후반 사용한 악기를 그대로 씁니다. 이른바 빈 오보에,빈 바순,빈 호른이라고 부르는 악기들입니다. 악기뿐 아니라 주법 템포 등 여러 면에서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을 중요시하는 보수적인 빈필이 오늘날 연주하는 브람스 3번이 초연 당시 연주와 가장 비슷하겠다는 생각이 이날 연주에서도 들었습니다.
이날 1부의 목관 수석진은 전날 2부에서 드보르자크 8번을 연주한 ‘젊은 피’들입니다. ‘다니엘 오텐잠머(클라리넷·36)-세바스찬 브라이트(오보에·24)-뤽 망홀츠(플루트·27)-루카스 슈미트(바순·27)’ 입니다. 이들이 연주하는 목관의 음색과 이들의 앙상블은 실연으로 들었던 다른 교향곡 3번과는 확실히 차이가 났습니다. 오보에와 바순이 풍성하게 울리지 않고 보다 강건한 소리를 냈다면, 클라리넷은 보다 깊으면서도 뭉근했습니다. 이들은 독주 파트가 많은 2악장을 비롯해 전체적인 오케스트라 앙상블에 부드럽게 녹아드는 연주를 들려줬습니다. ‘비극적 서곡’에서 다소 맞지 않았던 현악 파트가 한결같은 앙상블로 관악과 조화를 이뤘습니다. 템포는 전반적으로 조금 빠른 듯했는데 제게는 이전의 어떤 실연보다 더 생동감 넘치고 살아있는 연주였습니다. 유명한 3악장이 특히 그랬는데 여기선 호불호가 갈릴 듯합니다. 본디 빠르기는 알레그레토보다 약간(poco) 빠른 ‘포코 알레그레토’입니다. 이 악상기호의 정확한 빠르기는 알 수 없지만 벨저-뫼스트와 빈필이 이날 작곡가가 의도한 본디 빠르기에 가장 근접한 템포로 연주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곡에 담긴 애수 어린 낭만의 정서를 늘어지거나 과하지 않게 표현했습니다. 다만 빈 호른에 바로 이어지는 빈 오보에의 주제 선율 연주의 음정이 불안했던 점은 ‘옥에 티’였습니다.
벨저-뫼스트와 빈필은 2부에서 전날처럼 기어를 바꿔 달았습니다. 이번엔 전날 1부에서 ‘죽음과 변용’을 연주했던 원래 기어로 말이죠. 목관 수석진에 붙박이인 오텐잠머만 빼고 카를아인즈 쉬츠(플루트·47), 하랄트 뮐러(바순·57) 등 고참들이 자리했습니다. 숫자를 세어보진 않았지만 4관 편성인 R. 슈트라우스의 대작 교향시 연주를 위해 이번에 내한한 빈필 연주자 95명 전원이 무대에 오른 듯했습니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동명 철학서 중 10개의 장면을 작곡가가 임의로 골라 ‘태초부터 진화하는 인간의 발전 단계를 나름대로 구성한 후 음악으로 묘사한 곡입니다. 빈필은 세계 최고 수준의 ‘교향(交響)’능력으로 그야말로 다채롭고 현란하고 웅장한 R. 슈트라우스의 관현악 세계로 빠져들게 했습니다. 전날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악 파트의 잔 실수가 많이 나왔지만 대세에 큰 지장은 없었습니다. 여러 장면에서 탁월한 앙상블을 들려줬습니다. 악장 알레나 다나일로바는 관객을 몰입시키는 표현력으로 독주 파트를 소화했고, 전날 ‘죽음과 변용’ 연주 때처럼 바이올린과 바순, 바이올린과 잉글리시 호른의 이중주가 참 아름다웠습니다. 벨저-뫼스트는 전날과 같이 빈 왈츠의 의미를 설명하는 멘트와 함께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수채화’ 왈츠를 연주했습니다. ‘국가 애도 기간’임을 고려해 흥겹고 신나는 왈츠나 폴카가 아니라 전날 들려준 ‘방울새 왈츠’처럼 서정적인 풍경을 담은 곡이었습니다. 벨저-뫼스트와 빈필이 내년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에서 함께 연주할 곡들을 미리 감상하는 자리였습니다. 올해 한국-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빈필 내한공연 최초로 오스트리아 지휘자가 방한해 열었던 이틀간의 공연은 이렇게 빈의 정신과 문화가 담긴 연주로 마무리됐습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
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쳐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빈필) 연주에서는 ‘30년차 호른 수석’ 롤란트 야네직이 부른 ‘빈 호른’의 음색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깊어가는 가을밤과 묵직하고 호젓하게 흐르는 빈 호른의 3악장 주제 선율이 무척 잘 어울렸습니다. 1부 커튼콜에서 지휘자 프란츠 벨저-뫼스트가 다른 연주자들과는 달리 두 손으로 야네직을 일으켜 세운 것은 베테랑에 대한 대우이자 훌륭한 연주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2022 빈 필하모닉 내한공연’ 둘째 날 공연 현장입니다. 전날과 같이 현악 파트의 바흐 ‘G선상의 아리아’ 연주로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묵념을 올린 후 본 공연이 시작됐습니다.
이번 빈필의 양일 프로그램을 연속선상으로 펼쳐보면 이렇습니다. <바그너의 ‘파르지팔’ 전주곡·리하르트(R.) 슈트라우스의 ‘죽음과 변용’-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브람스의 ‘비극적 서곡’·교향곡 3번-R.슈트라우스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되는데 유기적인 구성이란 생각이 듭니다. 처음과 끝에 R. 슈트라우스의 교향시를 배치하고 사이에 여러모로 공통점이 있는 교향곡 두 편을 넣었습니다. 음악 형식에 비한다면 ‘A-B-B'-A'’정도가 될 듯합니다.
각 공연의 첫 곡은 이후 연주될 1부 메인곡과 어울리는 곡으로 정했습니다. 전날에 ‘파르지팔’ 전주곡이 ‘죽음과 변용’과 한 곡처럼 연주됐고, 이날엔 브람스의 잘 알려진 두 서곡 중 전체적인 분위기나 템포, 악기 편성 면에서 교향곡 3번과 비슷한 ‘비극적 서곡’이 앞서 연주됐습니다. 전날과 같이 첫 곡에 이은 1부 메인곡에서 빈필의 본색이 강하게 드러났습니다. 빈필이 연주하는 브람스의 교향곡 3번은 음색이나 템포, 앙상블 등에서 확실히 달랐습니다. 이 작품은 1883년 12월 한스 리히터가 지휘하는 빈필이 빈 무지크페라인에서 초연했습니다. 빈필은 요즘도 오보에, 호른 등 주요 관악기에서 현대 개량 악기 대신 19세기 후반 사용한 악기를 그대로 씁니다. 이른바 빈 오보에,빈 바순,빈 호른이라고 부르는 악기들입니다. 악기뿐 아니라 주법 템포 등 여러 면에서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을 중요시하는 보수적인 빈필이 오늘날 연주하는 브람스 3번이 초연 당시 연주와 가장 비슷하겠다는 생각이 이날 연주에서도 들었습니다.
이날 1부의 목관 수석진은 전날 2부에서 드보르자크 8번을 연주한 ‘젊은 피’들입니다. ‘다니엘 오텐잠머(클라리넷·36)-세바스찬 브라이트(오보에·24)-뤽 망홀츠(플루트·27)-루카스 슈미트(바순·27)’ 입니다. 이들이 연주하는 목관의 음색과 이들의 앙상블은 실연으로 들었던 다른 교향곡 3번과는 확실히 차이가 났습니다. 오보에와 바순이 풍성하게 울리지 않고 보다 강건한 소리를 냈다면, 클라리넷은 보다 깊으면서도 뭉근했습니다. 이들은 독주 파트가 많은 2악장을 비롯해 전체적인 오케스트라 앙상블에 부드럽게 녹아드는 연주를 들려줬습니다. ‘비극적 서곡’에서 다소 맞지 않았던 현악 파트가 한결같은 앙상블로 관악과 조화를 이뤘습니다. 템포는 전반적으로 조금 빠른 듯했는데 제게는 이전의 어떤 실연보다 더 생동감 넘치고 살아있는 연주였습니다. 유명한 3악장이 특히 그랬는데 여기선 호불호가 갈릴 듯합니다. 본디 빠르기는 알레그레토보다 약간(poco) 빠른 ‘포코 알레그레토’입니다. 이 악상기호의 정확한 빠르기는 알 수 없지만 벨저-뫼스트와 빈필이 이날 작곡가가 의도한 본디 빠르기에 가장 근접한 템포로 연주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곡에 담긴 애수 어린 낭만의 정서를 늘어지거나 과하지 않게 표현했습니다. 다만 빈 호른에 바로 이어지는 빈 오보에의 주제 선율 연주의 음정이 불안했던 점은 ‘옥에 티’였습니다.
벨저-뫼스트와 빈필은 2부에서 전날처럼 기어를 바꿔 달았습니다. 이번엔 전날 1부에서 ‘죽음과 변용’을 연주했던 원래 기어로 말이죠. 목관 수석진에 붙박이인 오텐잠머만 빼고 카를아인즈 쉬츠(플루트·47), 하랄트 뮐러(바순·57) 등 고참들이 자리했습니다. 숫자를 세어보진 않았지만 4관 편성인 R. 슈트라우스의 대작 교향시 연주를 위해 이번에 내한한 빈필 연주자 95명 전원이 무대에 오른 듯했습니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동명 철학서 중 10개의 장면을 작곡가가 임의로 골라 ‘태초부터 진화하는 인간의 발전 단계를 나름대로 구성한 후 음악으로 묘사한 곡입니다. 빈필은 세계 최고 수준의 ‘교향(交響)’능력으로 그야말로 다채롭고 현란하고 웅장한 R. 슈트라우스의 관현악 세계로 빠져들게 했습니다. 전날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악 파트의 잔 실수가 많이 나왔지만 대세에 큰 지장은 없었습니다. 여러 장면에서 탁월한 앙상블을 들려줬습니다. 악장 알레나 다나일로바는 관객을 몰입시키는 표현력으로 독주 파트를 소화했고, 전날 ‘죽음과 변용’ 연주 때처럼 바이올린과 바순, 바이올린과 잉글리시 호른의 이중주가 참 아름다웠습니다. 벨저-뫼스트는 전날과 같이 빈 왈츠의 의미를 설명하는 멘트와 함께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수채화’ 왈츠를 연주했습니다. ‘국가 애도 기간’임을 고려해 흥겹고 신나는 왈츠나 폴카가 아니라 전날 들려준 ‘방울새 왈츠’처럼 서정적인 풍경을 담은 곡이었습니다. 벨저-뫼스트와 빈필이 내년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에서 함께 연주할 곡들을 미리 감상하는 자리였습니다. 올해 한국-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빈필 내한공연 최초로 오스트리아 지휘자가 방한해 열었던 이틀간의 공연은 이렇게 빈의 정신과 문화가 담긴 연주로 마무리됐습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