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잘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블라인드 채용' 또 논란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8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제1차 전원회의에서 국책 연구기관의 블라인드 채용을 전면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전면 확대 정책을 뒤집겠다는 의도로 분석되면서, 블라인드 채용을 둘러싼 논란이 4년 만에 재점화하는 형국이다.

◆공공기관 100% 도입…민간에도 압박

블라인드 채용 제도는 지원자의 학력, 학점, 연구 성과, 출신 지역 등을 채용 과정에서 노출하지 않도록 한 제도다.

문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던 2017년 2월 ‘주간 문재인’을 통해 ‘블라인드 채용’ 의무화 공약을 내놨고, 당선 직후 "공무원과 공공부문에서 블라인드 채용 추진하라"고 곧바로 지시했다.

이에 정부도 곧바로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을 위한 블라인드 채용 추진 방안'을 발표하면서 블라인드 채용은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에 전면 적용되기 시작했다.

산업인력공단 관계자는 "350개 중앙공공기관은 100% 도입이 완료된 것으로 확인되며, 행정안전부 소속의 지방공기업 410여 개에도 거의 100% 도입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민간부문에 대해서도 2019년 '공공부문 공정 채용 확립 및 민간 확산 방안'을 내놓고 도입을 독려했다. 이후 은행, 보험, 카드사 등 금융권과 일부 대기업들도 정부 정책에 따르기 시작했다.

올해 초에는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해당 정책을 이어받아 공공기관 블라인드 도입을 아예 법제화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기도 했다.

블라인드 채용의 '맹점'이 드러난 사건은 2019년 말에 터졌다.

당시 최고 등급의 국가보안시설인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한 결과 중국 국적자를 연구원으로 선발했다가 채용을 보류하고 뒤늦게 불합격 처리한 사건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국책 연구원 채용에서라도 블라인드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학점·학력 좋은 게 죄냐" vs "채용 공정 확보 안 돼'

"공부 잘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블라인드 채용' 또 논란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블라인드 채용 자체가 과연 공정한 것인지에 대해 산업현장서 여전히 찬반 의견이 대립한다.

HR 테크그룹 인크루트가 지난 8월 기업 인사담당자 409명에 대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지 않은 기업이 70%에 달했다.

'민간기업의 블라인드 채용 도입 확대'에 대해선 인사담당자들은 매우 찬성(8.8%), 약간 찬성(42.8%), 약간 반대(32.0%), 매우 반대(16.4%)로 찬반이 팽팽했다. 찬성 이유는 △균등한 고용기회를 주는 방법(55.0%)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반대 이유로는 △직무 전문성과 경쟁력을 판단하기에 역부족(38.4%) △일관되지 않은 채용 기준(21.2%) 순이었다.

서울 소재 한 중견기업 인사담당자는 "학력 등이 채용 과정에서 밝혀지면 ‘할로 이펙트(후광효과)’ 같은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반대로 블라인드 채용에서도 면접, 외모 등 첫 인상만으로 후광 효과나 스테레오타입 효과처럼 오류와 편견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블라인드 채용을 한때 검토했던 유통 분야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과거 경력, 학점으로 증명되는 성실함 등 과거 경험을 제외하고 단편적 능력만으로 채용하면 기업 입장에선 위험성이 크다"며 "결국 보완할 수 있는 평가 절차를 만드는 추가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지연·학연 등이 여전히 중요한 국내 사정상 블라인드 채용이 꼭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채용 지원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던 1988년부터 2014년까지 강원랜드에 채용된 직원 중 친인척 관계에 있는 근로자는 942명에 달했지만, 2015년 '블라인드 채용' 이후 채용된 친인척 관계 근로자는 겨우 9명이라는 분석도 있다.

교육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학력이나 학업 성취 기록을 무시하게 될 경우 교육체계와 기업의 고용이 단절돼 교육 부실화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도 “국부의 원천은 과학기술 역량이고 그 힘은 대학 캠퍼스에서 나온다”며 “과학기술 발전을 가로막는 그 어떤 규제도 정치적 이유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블라인드 채용은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에 따르는 보상을 약화해 장기적으로 대학입시 경쟁과 대학의 서열화를 완화할 수 있다"는 반박도 제기된다('출신대학 블라인드 채용', 2021, 박재옥).

◆"대입은 스펙 잔뜩 보면서기업만 눈 가리라니"

공정채용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블라인드 채용은 여러 답안지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경영컨설팅학회가 지난해 한 공공기관 부서장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블라인드 채용 제도의 공정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인식하면서도 블라인드 기반인 NCS 채용에 대한 만족도는 높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 점이 눈길을 끈다(공공기관 NCS 기반 채용 선발 결과의 타당성에 관한 연구: 2021).

따라서 법제화하거나 기업에 도입을 압박하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블라인드 채용은 공정한가(2021)'라는 논문서 "기업의 채용에 대한 제도 개입은 차별 금지를 목적으로 한 최소한의 규율에 제한돼야 한다"며 "채용 분쟁이 사법화되면 기업의 채용은 위험회피를 목적으로 위축되거나 소멸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현행 제도로도 충분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채용절차공정화에 관한 법률은 직무와 관련 없는 용모·키·체중 등의 신체적 정보, 출신 지역·혼인 여부·재산, 부모나 형제의 학력·직업·재산 정보를 요구하거나 수집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 중견기업 인사담당자는 "대입에선 공정하게 뽑겠다며 수능 없이 스펙만 잔뜩 제출해 대학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지 않았느냐"며 "기업에만 눈 가리고 뽑으라고 강요하는 모양새도 우습다"고 꼬집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