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위기는 장기전…소부장 기술, 매년 20개씩 육성해야"
“공급망 위기는 장기전입니다. 핵심 전략기술을 150대 품목으로 한정하지 말고, 매년 20개씩 추가 육성해야 합니다.”(한정필 에이스글로벌 부사장)

“올 상반기 대일(對日)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의존도는 역대 최소였지만 대중(對中) 의존도는 오히려 상승했습니다. 소부장 국산화율을 높이기 위해 대·중소기업의 협력을 늘릴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합니다.”(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글로벌 공급망 위기를 넘기 위해선 정부가 소부장 정책 대상을 첨단 미래산업으로 확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7일 한국경제신문이 소부장 전문가를 대상으로 연 비대면 좌담회에서다. 좌담회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한 ‘2022년 소·부·장 뿌리기술 대전’(11월 2~4일) 후속으로 열렸다.

첨단 기술력이 레버리지

전문가들은 ‘첨단 기술력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임영목 한국재료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세계 최고 기술을 기반으로 한 독자적 제품 공급 능력 확보가 공급망 위기 때 (한국에는) 최고의 방패막이가 될 것”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공급처 내재화와 다변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요소수처럼 기술 수준이 낮지만 해외 의존도가 높은 ‘취약 품목’ 관리 필요성도 제기됐다. 김장엽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소재부품장비정책단장은 “요소수 사태처럼 공급망 교란의 충격은 경제 전반의 위기로 확대될 수 있다”며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시작된 소부장 정책이 기술 난도가 낮은 범용품 관리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점은 반성할 부분”이라고 짚었다.

조상현 원장은 “급변하는 공급망 상황을 감안해 기술 수준이 낮아도 국내 산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품목은 전방위적 위기감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글로벌공급망(GVC)분석센터처럼 민관 협력을 통해 주요 품목의 수급 동향을 분석하는 게 필수”라고 말했다. GVC분석센터는 지난 2월 산업·통상·에너지 등 주요 글로벌 공급망 이슈의 상시 모니터링 및 분석을 위해 출범했다. 향후 국내외 공급망 위기 징후를 포착해 정부 부처와 관련 기업에 신속히 전파하는 역할을 맡을 전망이다.

소부장, 정부의 장기 투자 필수

소부장 경쟁력은 하루아침에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에서 정부 지원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임영목 책임연구원은 “기술 개발의 산업화 리스크가 크고, 시간이 오래 걸려 사업화가 어려운 영역은 정부가 초기부터 전방위 관리·지원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도 “소부장 정책은 장기전”이라며 “특히 산업 인재 육성과 자금 공급 부문에서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정재학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소재부품장비단장도 “기업 간 거래(B2B)가 대부분인 소부장산업 특성상 수요기업의 참여 확대가 가장 중요하다”며 “글로벌 수요기업과 국내 공급기업을 연계하는 글로벌 협력 모델도 정부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지난 정부 때 소부장 정책 결과로 일본 의존도가 낮아지긴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정재학 단장은 “(지난 3년간) 단기간에 소부장의 완전한 자립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했다”며 “일본 수출 규제품목에 대한 정부 정책은 절반의 성공”이라고 지적했다. 안기현 전무는 “반도체 제조 공급망을 자국화하는 추세가 지속되면 한국의 공급망이 가장 위험하다”며 “반도체산업은 이제 안보산업이 됐다는 점에서 사업성이 떨어지는 분야는 정부 차원의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소현/이지훈 기자 alp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