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치동 S2A에 마련된 특별전시 공간에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132억5000만원)을 보유한 김환기의 대표작 ‘우주’(Universe 5-Ⅳ-71 #200)가 걸려 있다.  성수영  기자
서울 대치동 S2A에 마련된 특별전시 공간에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132억5000만원)을 보유한 김환기의 대표작 ‘우주’(Universe 5-Ⅳ-71 #200)가 걸려 있다. 성수영 기자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그림을 딱 한 점만 꼽으라면 뭘 골라야 할까. 상당수 전문가는 추상미술 거장 김환기(1913~1974)가 무명천에 수없이 많은 점을 찍는 식으로 그린 전면점화(全面點畵)에 한 표를 던진다. 거래가격이 이를 증명한다. 전면점화 평균 가격은 점당 수십억원이다.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132억5000만원)도 전면점화가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기사에는 어김없이 “이 정도면 나도 그리겠다” “왜 이렇게 비싸냐”는 댓글이 달린다. 모니터로는 장엄함, 구성미, 색채 등 전면점화의 절묘함을 온전히 느낄 수 없어서다.

서울 대치동 S2A의 ‘화중서가(畵中抒歌): 환기의 노래, 그림이 되다’는 왜 전면점화가 높은 평가를 받는지를 온몸으로 이해하게 해주는 전시다. 김환기의 활동 시기별 대표작 17점을 그가 생전 남긴 글귀들과 함께 배치했다. 2019년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쓴 ‘우주’(Universe 5-Ⅳ-71 #200)도 걸려 있다. 12점은 다른 컬렉터들이 무상으로 빌려줬다.

은하수처럼 빛나는 ‘김환기 최고작’

지난 4일 찾은 전시장은 평일인데도 북적였다. 전시장 끝자락에 마련된 책상 세 곳에는 김환기 관련 기록물들이 비치돼 있는데, 그 옆에서는 20여 명의 관람객이 책장을 넘겨 가며 열심히 메모하고 있었다. 다른 전시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다. 임재린 S2A 큐레이터는 “저작권 보호를 위해 전시장에 걸린 그림과 글의 사진 촬영을 막다 보니 종이에 글귀를 베껴 쓰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하이라이트 작품은 ‘우주’다. 김환기가 뉴욕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시기(1971년)에 그린 작품이다. 그의 작품 중 유일하게 두 폭으로 구성했다. 전체 크기는 가로 254㎝, 세로 254㎝로, ‘대작’으로 분류된다. S2A는 전시장 한 쪽에 가벽을 세워 이 작품을 위한 방을 따로 마련했다. 관람객은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검은색 방 안에서 특수 조명을 비추는 ‘우주’를 마주하게 된다. 한 관람객은 “은하수를 화폭에 옮긴 것 같다”고 했다.

이 작품은 김환기의 친구이자 주치의인 김마태 씨(94)가 구입해 47년간 소장하고 있었다. 2004년 8월 환기미술관에 장기 대여했고, 2019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 나왔다. 이때 글로벌세아그룹을 이끄는 김웅기 회장(71)에게 넘어갔다. 이듬해인 2020년 갤러리현대 50주년 기념전에 잠깐 모습을 비친 뒤 김 회장 자택에 걸려 있다 2년 만에 일반 전시에 나왔다.

“일반인도 비싼 작품 볼 수 있어야”

S2A는 섬유업체 글로벌세아그룹이 서울 대치동 본사 1층에 세운 갤러리다. 김 회장은 지난달 갤러리 개관식에서 “‘우주’가 경매에 나왔다는 소식에 ‘국보급 작품을 해외로 내보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낙찰받고 나서야 ‘이제 작품이 국내에 남게 됐다’는 안도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시 소개문을 통해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고가 작품을 구입하는 컬렉터를 좋지 않게 보는 시선이 있다”며 “컬렉터들이 먼저 나서서 일반인에게 좋은 작품을 공개해야 이런 분위기가 바뀌고 한국 미술도 발전할 것”이라고 했다. 강남 한복판 ‘금싸라기 땅’에 갤러리를 만들고, 전시를 무료로 일반에 개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고가 미술품이 소수의 부자를 위한 ‘장롱 속 금송아지’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인터파크로 예약하면 누구나 무료로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 처음에는 하루 관람객이 450명으로 제한돼 있었는데, 전시 시작 직후 11월 말 표까지 매진되자 이달 초부터 하루 600명으로 관람객 수를 늘렸다. 12월 관람은 오는 24일부터 예약을 받는다. 전시는 12월 23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