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는 지난 28일부터 지주회사 격인 파리크라상 본사를 비롯한 20개 계열사 총 64개 사업장 전부에 대해 산업안전·근로기준 합동 기획 감독을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부 계열사에서 기획 감독을 방해한 행위가 적발된 것입니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 3일 오전 10시 대전고용노동청에서 SPC삼립 세종생산센터 현장감독 과정에서 감독관들이 현장감독으로 회의실에 없는 틈을 타, 해당 회사 직원이 감독관의 서류 등을 뒤져 대전고용노동청 감독계획서를 무단 촬영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해당 직원은 사내 메신저 등을 통해 SPC삼립 본사 및 SPC 계열사 등에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사실은 SPC 내부 고발자에 의해 밝혀졌습니다.
대전고용노동청의 감독계획서에는 감독 일정, 감독반 편성, 전체 감독대상 사업장(64개) 목록이 기재돼 있었다고 합니다. 대전고용노동청은 해당 문서를 무단촬영하고 내부 공유시킨 SPC삼립세종생산센터 직원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경찰에 신고해 현재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일이 여기서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민주당 내부에서 "허영인 회장을 불러 단독 청문회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민주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정도로 공권력을 무시한 기업에 대해서는 국회 차원에서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합니다.
앞서 정의당 이은주 의원도 지난25일 국회에서 20대 근로자 사망 사고와 관련해 "허영인 SPC 회장에 대한 청문회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지만, 정의당의 독자적인 주장이었고 SPL 사건이 정쟁으로 확산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 민주당 내부에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는 평가입니다.
특히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안이 곧 발표를 앞두고 있는 민감한 상황인 만큼,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문제로 비화했다는 게 민주당 일각의 평가입니다.
다만 국민의힘 측의 의견을 조금 다릅니다. 국힘 관계자는 "곧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주년을 앞두고 있는 만큼, SPC는 물론 산재 다발 사업장의 경영책임자들을 불러 산재 청문회를 열 수 있다"며 단독 청문회 가능성을 일축했습니다.
청문회는 환노위 여야 합의가 필요한 만큼, 국힘이 반대 입장이라면 청문회 개최는 어려워 보입니다.
고용부 내부에서도 SPC를 가만 둬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익명을 요구한 고용부 고위급 관계자는 "SPC는 그간 그룹 규모에 비해 노사관계 대응 능력이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았다"며 "하나(이번 촬영 사건)를 보면 열(내부 회사 분위기)을 알 수 있는게 아니겠나"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고용부 직원이 서류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이런 일이 벌어졌느냐"는 성토의 목소리도 나오기에, 고용부로서는 더욱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입니다.
SPC그룹이 피해자 유족과 합의한 정황이 밝혀지면서 조금씩 잠잠해져가고 있던 가운데, SPC 관계자의 이번 행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과잉 충성으로 인한 엇나간 행동인지, 아니면 그룹사 차원에서 지시한 것인지 밝히는 것도 중요한 쟁점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