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만 읽었을 때 ‘리골레토’의 주인공인 꼽추 어릿광대 리골레토에 대해 별 연민을 느끼지 못했어요. 그런데 베르디의 음악을 들으니 리골레토가 그렇게 불쌍할 수가 없더라고요. 베르디가 음악으로 명확하게 드러낸 리골레토의 상처와 분노를 2022년을 살고 있는 제가 느낀 감정과 생각대로 표현하려고 합니다.”

10~1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무대에 오르는 서울시오페라단의 ‘리골레토’를 연출하는 장서문(39·사진)은 8일 “우리 시대의 ‘거울’로 세상에서 멸시받고 소외된 인생을 살아온 리골레토의 아픔과 심리를 들여다볼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장서문은 2007년 경희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 제노바에서 무대미술과 연출을 공부했다. 2013년 제노바 파가니니 국립음악원에서 오페라 연출 최고 과정을 졸업한 뒤 한국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다양한 작품을 연출해왔다. 2020년 서울시오페라단의 ‘세비야의 이발사’, 지난 3월 경기아트센터의 ‘피가로의 결혼’ 공연 등에서 현대적이고 창의적인 무대와 섬세한 연극적 연출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라 트라비아타’ ‘일 트로바토레’와 함께 베르디의 3대 오페라로 꼽히는 ‘리골레토’ 연출은 처음이다.

장서문은 이번 공연에서도 현대적이고 상징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이번 공연의 연출 키워드는 ‘거울’입니다. 무대에 거대한 흑색 거울 세트가 등장해 장면마다 각도를 달리해 움직입니다. 관객에게 등장인물의 외면을 비추는 동시에 내면의 심리를 드러내는 이중의 역할을 하게 되죠.”

리골레토가 외동딸 질다를 악한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외부와 단절시켜 놓는 공간은 ‘새장’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질다가 자신에게 구애한 청년의 이름을 부르며 노래하는 유명한 아리아 ‘그리운 그 이름’에는 사실 아버지의 과보호와 집착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망이 담겨 있습니다. 질다 역을 맡은 성악가에게 그런 심정이 표현되도록 노래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관객들이 그 아리아를 들을 때 질다를 새장에서 꺼내 날려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말이죠.”

리골레토는 꼽추가 아니라 얼굴이 일그러진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는 “처음에 봤을 때는 누구나 혐오감을 느낄 만한 얼굴로 나올 것”이라며 “현대사회의 외모지상주의를 감안하면 관객들이 공감해주지 않을까 싶은데 반응이 궁금하다”고 했다.

공연장인 M씨어터는 600여 석 규모의 중극장이다. “이탈리아 오페라 극장은 대부분 700~800석입니다. 육성으로 하는 오페라 공연장으로는 3000석 넘는 대극장보다는 M씨어터가 좋다고 봐요. 객석과 무대가 가까운 만큼 연극적인 재미를 살린 연출과 성악가들의 섬세한 감정 연기를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무대에는 바리톤 유동직·양준모(리골레토), 소프라노 홍혜란·이혜정(질다), 테너 진성원·이명현(만토바 공작) 등 국내 정상급 성악가들이 오른다. 연주는 정주현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디 피니가 맡는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