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남부 요충지인 헤르손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전략적 요충지인 헤르손에서의 철군은 러시아에 큰 타격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우크라이나는 “아직 러시아가 철수했다고 보기에는 이르다”며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번 철군을 두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의중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러軍, 남부 헤르손서 철수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9일(현지시간) TV 브리핑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있는 러시아군에 헤르손 철수 명령을 내렸다. 쇼이구 장관은 “군대를 철수해 이동하라. 병력과 무기가 안전하게 드니프로강을 건널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하라”고 명령했다. 우크라이나 주재 러시아군 최고사령관인 세르게이 수로비킨도 “최대한 이른 시점에 철수를 시도할 것”이라며 “헤르손 인근에 있는 드니프로강 서쪽을 빠져나와 건너편인 동쪽에 방어선을 구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푸틴 '크림반도 길목' 헤르손 내줬다…"기념비적 패배"
러시아군이 철수하면 우크라이나는 개전 후 8개월여 만에 헤르손을 탈환하게 된다. 헤르손은 지난 2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8일 만에 점령한 곳이다. 우크라이나 남부를 관통하는 드니프로강 옆에 자리잡은 도시로 크림반도의 관문이자 남부 지역의 수력발전·상수원을 관할하는 요충지다. 러시아는 지난달 5일 헤르손주(州)를 비롯해 자포리자, 동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등 4개 주를 합병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치밀한 작전으로 헤르손 탈환에 성공했다. 러시아군은 지난달 19일부터 사흘간 주민 대피령을 선포했다. 도시를 요새화하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의 타격으로 피해가 누적됐다. 크림대교 등 주요 보급로가 차단되자 포위를 우려해 군대를 물리기로 한 것으로 풀이된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의 철군 명령에 대해 ‘기념비적 패배’라고 평가했다.

러시아의 철군 명령에 우크라이나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러시아군이 도시를 비워놓은 척 위장해 시가전을 유도하려는 계책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헤르손 철수에 대해 “적은 우리에게 선물을 주지 않고 선의의 제스처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주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른 꿍꿍이 있나”

러시아가 쉽사리 헤르손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헤르손을 넘겨주게 되면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 전체에 대한 통제권을 잃을 수 있다. 푸틴 대통령에게도 타격이 크다.

NYT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지난 9월 헤르손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장교들의 의견을 모두 묵살했다. 그는 후퇴를 거부하며 현장 지휘관들에게 “전략은 내가 세운다”고 수차례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철군 명령을 공개적으로 내린 것도 이례적이다. 일반적으로 군대가 퇴각할 때는 비밀리에 작전을 수행한다. 폴란드 군사분석업체 로찬컨설팅의 콘라드 무지카 이사는 “군사 전술상 퇴각 명령을 공개한 건 말이 안 된다.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이 화해의 손길을 뻗었다는 해석도 있다. 러시아가 공세를 멈추고 휴전협정에 들어가는 첫걸음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푸틴 대통령은 서방 국가와의 마찰을 우려해 오는 15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불참한다. 블룸버그는 “푸틴 대통령은 자신을 ‘전범’으로 규정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 서방 지도자들로부터 외면받는 상황을 피하려 한다”고 보도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