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랑드르 들판에서

플랑드르 들판에 양귀비꽃 흔들리네.
우리가 누운 곳을 알려주는
십자가들 줄줄이 서 있는 사이로
하늘에는 종달새 힘차게 노래하며 날지만
땅에선 포성 때문에 그 노래 들리지 않네.

우리는 죽은 자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살아서 새벽을 느끼고 불타는 석양을 보았지.
사랑도 하고 사랑받기도 했건만
지금 우리는 플랑드르 들판에 누워 있네.

우리들 적과의 싸움을 이어가게.
쓰러져가는 손길로 횃불을 던지노니
그대여 붙잡고 드높이 들게나.
행여 그대가 우리의 믿음을 저버린다면
우린 영영 잠들지 못하리.
비록 플랑드르 들판에 양귀비꽃 자란다 해도.


* 존 맥크래(1872~1918) : 캐나다 시인,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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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의 아침 시편] 오늘, 영연방은 왜 빨간 배지를 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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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 ‘플랑드르 들판에서’는 영연방의 현충일과 관련한 것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5월. 벨기에와 프랑스 국경에 걸친 플랑드르 지역은 온통 피로 물들었습니다. 동화 ‘플랜더스의 개’로 유명한 이곳 들판은 늪과 수렁, 진흙투성이였죠. 비가 많이 오는 데다 토양이 질어 물도 잘 빠지지 않았습니다.

무릎까지 차오르는 뻘과 오물, 쥐가 들끓는 참호 속에서 수십만 병사들이 죽어갔지요. 캐나다에서 군의관으로 파견된 존 맥크래 중령은 전투에서 친한 친구 알렉시스 헬머 중위와 동료들을 한꺼번에 잃었습니다.

장례를 치를 군목이 없어 맥크래 중령이 대신 장례를 집전했지요. 다음날 그는 군용 트럭 뒤에 웅크리고 앉아 전사자들이 묻힌 들판에 양귀비꽃이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며 시를 썼습니다. 그 시가 바로 ‘플랑드르 들판에서’입니다.

그도 전쟁이 끝날 무렵인 1918년 전장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지요. 이 사연이 널리 알려지면서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 캐나다에서는 1차대전 종전일인 11월 11일을 현충일로 정하고 그날이나 가까운 일요일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사를 열게 됐습니다.

미국 시인 모이라 미첼이 이 시에 화답하는 시를 발표하면서 전몰장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양귀비꽃을 겉옷에 달겠노라고 약속한 뒤 양귀비꽃을 다는 전통도 시작됐지요. 영연방 국가들이 이날을 ‘포피(Poppy·양귀비) 데이’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2010년 11월 11~12일 서울에서 세계 20개국 정상이 모인 G20 정상회의에서도 영국, 캐나다, 호주 총리들이 빨간 양귀비꽃 배지를 달고 나왔습니다. 영국 총리는 G20 회의 전에 중국 방문 때도 그 배지를 달았지요. 중국은 그 빨간 배지가 굴욕적인 아편전쟁을 상기시킨다며 떼어 달라고 요청했지만 영국 총리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시에 나오는 양귀비꽃은 아편을 만드는 양귀비와는 다른 종입니다. 초여름 유럽 들판에 잡초처럼 널려 있는데 관상용인 개양귀비로 모네의 그림에도 나오지요.

이 꽃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잘 자라지 않습니다. 자주 밟거나 땅을 갈아엎어 줘야 발아한다는군요. 유럽의 밭에서 양귀비가 잘 자라는 것은 트랙터로 밭을 갈아엎기 때문이랍니다. 전투지대의 참호와 포탄 구덩이에 잘 자라는 것 또한 포탄이 땅을 뒤집어서 씨를 햇빛에 노출한 탓이지요.

변영로의 시 ‘논개’에서도 ‘아, 강낭콩꽃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란 구절이 있으니,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붉은 양귀비꽃은 구국충정의 상징이 아닌가 싶습니다.


■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