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산업의 미래
체르노빌, 후쿠시마 원전사고 등의 영향으로 사회적 수용성이 저하되었고 기후 정책 변화로 초기 투자에 관한 리스크가 부각되는 등 외면받았던 원자력 발전이 러시아-우크라니아 전쟁 발발과 에너지가격 상승을 계기로 재조명 받고 있다.

지난 2월 유럽위원회는 특정 가스 및 원자력 활동을 EU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나라도 지난 9월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시키는 수정 초안을 공개했다. 녹색분류체계는 특정 경제활동의 친환경 여부를 판단하는 표준이다. ‘보다 엄격한’이란 요구 조건이 달리긴 했지만 유럽위원회가 원자력 발전을 기후변화 완화에 기여하는 ‘과도기적 활동’으로 인정하고 택소노미에 포함시킴에 따라 원자력 발전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뜨거워지는 양상이다.

기존 원전의 수명 연장뿐 만이 아니라 신규 건설에도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프랑스다. 프랑스는 전체 전력사용량의 70%를 원전으로 조달하고 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원자력발전 미래전략’을 발표하며 프랑스 전력공사(EDF, Électricité de France)가 개발한 차세대 유럽형 가압경수로(EPR, European Pressurized Reactor)를 중심으로 하는 원자력 산업의 르네상스를 선언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2028년에 EDF의 신규 EPR 원자로 6기의 건설 공사를 시작하고 2035년 그 중 첫 번째 원자로를 가동할 계획이다. 신규 원자로 6기를 건설하는 데 들어가는 추정 비용 500억유로 중 일부는 프랑스 정부가 직접 투자할 것이라 밝혔다.

프랑스 이외에도 러시아와 인접한 동유럽 국가들 중 다수가 원자력 발전소 건설 계획을 갖고있다. 폴란드 6기(6000MW), 체코 4기(4800MW), 불가리아 3기(3000MW), 헝가리 2기(2400MW), 루마니아 2기(2160MW) 등이다. 이 중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원자력 발전소 운영 경험이 전무한 국가로 이번 에너지 위기가 도입 계기로 작용한 상황이다.

한편, 미국 정부도 인프라법(Bipartisan Infrastructure Law)을 통해 원자력 발전을 지원한다. 60억 달러 규모의 민간 원자력 크레딧 프로그램(Civil Nuclear Credit Program, CNC)은 미국 내 원자력 인프라를 보전하기 위한 즉, 원전의 조기 폐쇄를 방지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미국 내 상업용 원전 소유주나 운영사가 절차에 따라 인증을 받을 경우 원전의 계속 운전을 허용 및 지원하는 내용이다.

우리나라도 ‘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초안을 통해 원전 육성 의지를 재차 피력했다. 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실린 에너지원별 발전비중을 살펴보면 ‘원자력발전 중심의 저탄소 전환’의지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정부가 제시한 2030년 에너지원별 발전량 비중은 원자력 32.8%, 석탄 21.2%, LNG 20.9%, 신재생에너지 21.5%다. 원전은 2036년까지 10.5GW규모 12기가 계속 운전을 추진할 예정이다. 신한울 1, 2호기와 신고리 5, 6호기, 신한울 3, 4호기 총 6기의 원전이 신규 가동되면서 8.4GW의 발전용량이 더해질 전망이다.

다만 원전 산업이 부활하기 위해선 넘어야할 산이 있다. 인체 및 자연 환경에 미치는 유해성 논란이다. 실제로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시킨 EU에서도 국가간 이견이 존재한다. 룩셈부르크, 독일, 포르투갈, 덴마크 등은 원자력 발전소를 녹색분류체계에 포함시키지 말 것을 요구한바 있다. 지난 10월엔 오스트리아 기후환경에너지부 장관은 유럽사법재판소(ECJ)에 EU 택소노미를 무효로 해달라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다. 수년에 걸쳐 와해된 원전의 안전성 논란 극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