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랗고 큰 눈의 아이 그림, 진짜 주인은?[김희경의 영화로운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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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크고 이상한 눈은 뭐죠? 무슨 팬케이크도 아니고 비례가 영 안 맞잖아요."
동그랗고 큰 눈의 아이를 그린 그림. 묘한 분위기에 한 남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묻습니다. 그러자 화가는 말하죠. "눈을 보면 모든 걸 알 수 있어요. 눈은 영혼의 창이니까요."
팀 버튼 감독의 영화 '빅 아이즈'(2015)의 한 장면입니다. 영화는 미국의 여성화가 마가렛 킨(1927~)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대화는 마가렛(에이미 아담스)과 그의 두 번째 남편이 되는 월터(크리스토퍼 왈츠)가 주고받는 겁니다. 마가렛은 큰 눈을 가진 아이, 일명 '빅 아이즈' 작품들을 그려 미국 미술계에 열풍을 일으킨 인물입니다. 그의 그림은 누구나 한 번쯤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작가는 잘 모르더라도 그림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당시 일부 비평가들은 키치 예술(저급한 수준의 예술)이라 혹평했지만, 대중들은 그의 그림에 열광했죠.
하지만 마가렛의 삶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감독은 실화를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었는데요. '실화가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라고 느껴질 정도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그의 본명은 페기 도리스 호킨스입니다. 하지만 '마가렛 킨'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월터의 성이 '킨'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성으로 인해 오랜 시간 '유령 화가'로 살아야 했습니다.
마가렛이 사람의 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린 시절부터였습니다. 고막 이상으로 한쪽 귀의 청각을 거의 잃어 큰 수술을 한 게 계기가 됐습니다. 소리가 잘 안 들리자 그는 상대의 눈을 유심히 쳐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영화에도 이를 설명하는 대사가 나옵니다. "어릴 때 수술 후유증으로 한동안 귀가 멀었는데, 소리가 안 들리니까 뭔가를 응시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특히 사람들의 눈에 의존했죠."
이후 부모님의 이혼으로 더욱 힘들어진 마가렛은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성인이 된 후엔 화가로 활동했지만 이름을 알리지 못했습니다. 당시 분위기상 여성 화가 대부분이 실력을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죠. 폭력적인 첫 번째 남편과 헤어진 후엔 더욱 고통스런 나날을 보냈습니다. 이혼녀는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1955년 28살이 되던 해, 마가렛은 월터를 만나게 됐습니다. 딸 제인을 잘 키울 수 없는 환경에서 많은 고민을 하던 마가렛은 월터에게 안정감을 느끼고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이뤄진 재혼 생활은 행복할 줄 알았지만, 마가렛은 이로 인해 인생에서 가장 큰 고난과 마주하게 됩니다.
사업 수완이 좋았던 월터는 여성 화가로서 인정받기 힘든 아내의 그림을 자신이 그린 것처럼 속여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을 활용해 포스터, 엽서 등도 찍어내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마가렛이 결혼 후 남편의 성 '킨(KEANE)'으로 작품에 사인을 했던 터라, 사람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모두 월터가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월터는 큰 눈을 그린 이유도 그럴싸하게 포장했습니다. "빅 아이즈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으로 피폐해진 도시와 절망에 빠진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마가렛은 묵묵히 참았습니다.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고 활동하기엔 제약이 많았고, 진실을 밝힐 방법도 마땅치 않았죠. 하지만 답답함을 느끼고 나름의 돌파구를 찾기도 했습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작품과 비슷한 느낌의 그림들을 그리는 등 화풍을 일부 바꿔 자신의 이름으로 전시했죠. 그러나 이 시도는 외면당했습니다.
월터는 이를 악용해 돈을 버는 데 더욱 매진했습니다. 마가렛은 감금된 채 하루 16시간 이상 그림을 그려야 했죠. 월터의 만행은 점점 극에 달해 마가렛과 제인의 목숨을 위협하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마가렛은 그와 이혼했습니다. 모든 재산을 내어주고, 그림 30여 점을 그려 보내주는 조건을 들어줘야 했지만 그를 과감히 떠났죠.
늘 피해자로만 있던 마가렛은 어느 날 큰 결심을 하고 용기를 냈습니다. 1970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빅 아이즈를 그린 사람이 자신이라고 밝힌 겁니다. 월터는 마가렛의 거짓말이라 대응했습니다.
그럼에도 진실은 한참 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묻혀 있었습니다. 마가렛이 원만한 해결을 위해 법적 대응을 자제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다 1984년 월터가 다시 마가렛이 거짓말을 한다는 인터뷰를 했고, 마가렛은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법정에서 박진감 넘치고 통쾌한 명장면이 탄생했습니다. 1986년 판사는 서로 치열한 공방을 벌이던 두 사람에게 이런 명령을 내립니다. "법정에서 한 시간 안에 빅 아이즈를 그려보시오."
마가렛은 환히 웃으며 자신 있게 그림을 그립니다. 반면 월터는 온갖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끌다, 어깨가 아파 그림을 못 그리겠다고 하죠. 영화에도 이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마침내 빅 아이즈의 진짜 주인이 마가렛이란 사실이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마가렛은 법정에서 그린 그림에 '증거물 #224'이란 제목을 붙였습니다. 작품 속 소녀는 울타리에 갇힌 채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얼굴 아래쪽엔 환한 빛이 비치고 있습니다. 소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많이 우울하거나 두려움에 가득 차 보이진 않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처럼 보이기도 하고, 세상에 나가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마가렛은 재판 이후 배상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월터가 이혼하며 받은 재산 모두를 탕진해 파산 신청을 해버렸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마가렛은 "나는 이제 그림에 내 서명을 할 수 있다. 그건 정말 축복이다"라고 말했습니다. 30여 년 동안 유령 화가로 지냈던 마가렛은 승소 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림의 분위기도 이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더욱 화사하고 밝아졌죠. 90대가 된 이후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합니다.
마가렛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오랜 시간 거짓말을 했고, 이는 내가 두고두고 후회하는 결정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진실의 가치를 배웠다. 명성, 사랑, 돈 그 무엇도 양심을 버릴 정도로 가치 있는 것은 없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동그랗고 큰 눈의 아이를 그린 그림. 묘한 분위기에 한 남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묻습니다. 그러자 화가는 말하죠. "눈을 보면 모든 걸 알 수 있어요. 눈은 영혼의 창이니까요."
팀 버튼 감독의 영화 '빅 아이즈'(2015)의 한 장면입니다. 영화는 미국의 여성화가 마가렛 킨(1927~)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대화는 마가렛(에이미 아담스)과 그의 두 번째 남편이 되는 월터(크리스토퍼 왈츠)가 주고받는 겁니다. 마가렛은 큰 눈을 가진 아이, 일명 '빅 아이즈' 작품들을 그려 미국 미술계에 열풍을 일으킨 인물입니다. 그의 그림은 누구나 한 번쯤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작가는 잘 모르더라도 그림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당시 일부 비평가들은 키치 예술(저급한 수준의 예술)이라 혹평했지만, 대중들은 그의 그림에 열광했죠.
하지만 마가렛의 삶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감독은 실화를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었는데요. '실화가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라고 느껴질 정도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그의 본명은 페기 도리스 호킨스입니다. 하지만 '마가렛 킨'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월터의 성이 '킨'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성으로 인해 오랜 시간 '유령 화가'로 살아야 했습니다.
마가렛이 사람의 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린 시절부터였습니다. 고막 이상으로 한쪽 귀의 청각을 거의 잃어 큰 수술을 한 게 계기가 됐습니다. 소리가 잘 안 들리자 그는 상대의 눈을 유심히 쳐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영화에도 이를 설명하는 대사가 나옵니다. "어릴 때 수술 후유증으로 한동안 귀가 멀었는데, 소리가 안 들리니까 뭔가를 응시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특히 사람들의 눈에 의존했죠."
이후 부모님의 이혼으로 더욱 힘들어진 마가렛은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성인이 된 후엔 화가로 활동했지만 이름을 알리지 못했습니다. 당시 분위기상 여성 화가 대부분이 실력을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죠. 폭력적인 첫 번째 남편과 헤어진 후엔 더욱 고통스런 나날을 보냈습니다. 이혼녀는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1955년 28살이 되던 해, 마가렛은 월터를 만나게 됐습니다. 딸 제인을 잘 키울 수 없는 환경에서 많은 고민을 하던 마가렛은 월터에게 안정감을 느끼고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이뤄진 재혼 생활은 행복할 줄 알았지만, 마가렛은 이로 인해 인생에서 가장 큰 고난과 마주하게 됩니다.
사업 수완이 좋았던 월터는 여성 화가로서 인정받기 힘든 아내의 그림을 자신이 그린 것처럼 속여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을 활용해 포스터, 엽서 등도 찍어내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마가렛이 결혼 후 남편의 성 '킨(KEANE)'으로 작품에 사인을 했던 터라, 사람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모두 월터가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월터는 큰 눈을 그린 이유도 그럴싸하게 포장했습니다. "빅 아이즈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으로 피폐해진 도시와 절망에 빠진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마가렛은 묵묵히 참았습니다.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고 활동하기엔 제약이 많았고, 진실을 밝힐 방법도 마땅치 않았죠. 하지만 답답함을 느끼고 나름의 돌파구를 찾기도 했습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작품과 비슷한 느낌의 그림들을 그리는 등 화풍을 일부 바꿔 자신의 이름으로 전시했죠. 그러나 이 시도는 외면당했습니다.
월터는 이를 악용해 돈을 버는 데 더욱 매진했습니다. 마가렛은 감금된 채 하루 16시간 이상 그림을 그려야 했죠. 월터의 만행은 점점 극에 달해 마가렛과 제인의 목숨을 위협하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마가렛은 그와 이혼했습니다. 모든 재산을 내어주고, 그림 30여 점을 그려 보내주는 조건을 들어줘야 했지만 그를 과감히 떠났죠.
늘 피해자로만 있던 마가렛은 어느 날 큰 결심을 하고 용기를 냈습니다. 1970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빅 아이즈를 그린 사람이 자신이라고 밝힌 겁니다. 월터는 마가렛의 거짓말이라 대응했습니다.
그럼에도 진실은 한참 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묻혀 있었습니다. 마가렛이 원만한 해결을 위해 법적 대응을 자제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다 1984년 월터가 다시 마가렛이 거짓말을 한다는 인터뷰를 했고, 마가렛은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법정에서 박진감 넘치고 통쾌한 명장면이 탄생했습니다. 1986년 판사는 서로 치열한 공방을 벌이던 두 사람에게 이런 명령을 내립니다. "법정에서 한 시간 안에 빅 아이즈를 그려보시오."
마가렛은 환히 웃으며 자신 있게 그림을 그립니다. 반면 월터는 온갖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끌다, 어깨가 아파 그림을 못 그리겠다고 하죠. 영화에도 이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마침내 빅 아이즈의 진짜 주인이 마가렛이란 사실이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마가렛은 법정에서 그린 그림에 '증거물 #224'이란 제목을 붙였습니다. 작품 속 소녀는 울타리에 갇힌 채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얼굴 아래쪽엔 환한 빛이 비치고 있습니다. 소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많이 우울하거나 두려움에 가득 차 보이진 않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처럼 보이기도 하고, 세상에 나가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마가렛은 재판 이후 배상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월터가 이혼하며 받은 재산 모두를 탕진해 파산 신청을 해버렸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마가렛은 "나는 이제 그림에 내 서명을 할 수 있다. 그건 정말 축복이다"라고 말했습니다. 30여 년 동안 유령 화가로 지냈던 마가렛은 승소 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림의 분위기도 이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더욱 화사하고 밝아졌죠. 90대가 된 이후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합니다.
마가렛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오랜 시간 거짓말을 했고, 이는 내가 두고두고 후회하는 결정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진실의 가치를 배웠다. 명성, 사랑, 돈 그 무엇도 양심을 버릴 정도로 가치 있는 것은 없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