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이코노미] 효율성 높은 반도체산업, 회복성 낮은 이유는?
효율성과 회복성은 상충관계다. 효율성을 추구할수록 회복성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카카오의 데이터센터 화재로 일상이 멈췄던 사건도 같은 맥락이다. 백업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반복 및 중복으로 비효율적인 일이다. 추가 비용을 발생시키고, 운영 효율성을 떨어뜨리며, 순익을 갉아먹는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더딘 회복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비단 카카오 사태만이 아니다. 다양한 측면에서 효율성과 회복성의 상충을 찾아볼 수 있다.

반도체 산업도 그중 하나다. 코로나19 충격으로 세계 반도체의 공급이 부족해졌다. 디지털 세상인 오늘날 반도체 없이 가능한 서비스는 거의 없다. 문제는 복합 반도체를 생산하는 일은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반도체 생산을 위한 거대 제조시설 건설은 물론이고 비상시 가동할 수 있는 완충장치와 잉여재고의 확보, 즉시 가동할 수 있는 백업 제조시설의 보유, 문제 발생 시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는 인력 운영과 같은 ‘비효율’적인 부분도 갖춰야 하는 탓이다. 하지만 기업들이 비효율을 반길 리 없다. 결국 반도체산업 내에서는 효율을 극대화한 일부 기업만이 경쟁에서 살아남았지만, 그 대가로 회복력은 떨어졌다.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로 칩을 공급할 수 없다면, 아무리 효율성 높은 공장이라 한들 소용없다.

코로나19 펜데믹으로 마스크나 휴지 같은 생필품을 구하지 못하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오랜 기간 효율성을 추구한 결과 제조 기반을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고 금융과 서비스 기반으로 경제를 재편했다. 이를 통해 역사상 가장 효율적인 경제 엔진을 장착했지만, 예기치 못한 위기상황에서는 기본적인 니즈조차 해결할 수 없었다. 슈퍼마켓과 약국의 텅 빈 진열대가 이를 방증한다.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인 마코 루비오는 뉴욕타임스 논평을 통해 미국 경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보수든 진보든 미국 정계와 재계의 지도자들이 회복력보다 경제적 효율성, 중산층 육성보다 재정적 이익, 공공의 이익보다 개인의 풍요를 중요시하는 사회 구조를 선택했다고 지적했다.

효율성의 부정적 외부효과

캐나다 토론토대 로트먼경영대학원 학장인 로저 마틴은 2019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기고한 ‘효율성의 큰 대가’라는 논평을 통해 효율성 추구의 부정적 영향이 그 보상의 정도를 넘어설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기술혁신의 초기 단계를 예로 이를 설명한다. 초기 기술 선두주자들은 모든 잠재적 가치사슬에 걸쳐 효율성을 높이고 수직 통합으로 규모의 경제를 창출함으로써 떠오르는 시장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부정적인 외부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아몬드 시장이 대표적이다. 세계 80%의 아몬드가 캘리포니아 센트럴밸리에서 생산된다. 아몬드 한 알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물의 양은 약 4L인 탓에 캘리포니아 농업용수의 거의 10%가 투입된다.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의 전체 인구가 매년 소비하는 물의 양과 맞먹는 규모다. 문제는 기후변화로 센트럴밸리가 가뭄에 시달리면서 발생했다. 세계 80%를 한 지역에서 생산하며 확보한 고도의 효율성이 예기치 못한 환경적 위협 앞에서는 낮은 회복력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효율성에 대한 고찰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효율성의 핵심은 마찰을 줄이는 데 있다. 즉, 경제활동의 속도와 최적화를 방해하는 중복과 반복을 제거하는 것이다. 반면 회복력의 핵심은 본질적으로 중복성과 다양성이다. 광활한 지역에서의 아몬드 단일 재배가 성장 속도 면에서는 더없이 효율적이지만, 병충해 앞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은 그의 책 <회복력 시대>를 통해 효율성과 회복력의 상충관계는 적응성을 높임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세계 충격으로 이어진 공급망과 물류, 완충재고의 붕괴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인류가 효율성 중독에서 벗어나 새로운 회복력 시대에 어울리는, 적응하고 공감하는 삶의 관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오랜 번영의 끝자락에서 효율성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한 오늘날, 지구상에서 인간이 진로를 바꾸고 번영하는 법을 배울 최고의 기회일지 모른다는 그의 주장을 곱씹어 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