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광산 생환 50대 광부 "봉사하고 사람들 챙기며 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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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전화 인터뷰…"사고 당시 너무큰 충격, 발걸음 안떨어졌다"
경북 봉화군 광산 매몰 사고로 지하 190m 지하 갱도에 고립됐다 221시간 만에 구조된 보조작업자 광부 박씨(56)가 함께 구조됐던 박정하(62)씨와 함께 치료를 받던 안동병원에서 11일 퇴원했다.
보조작업자 박씨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생사기로에서 건강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퇴원할 수 있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며 구조에 나선 소방관 등 구조대원, 국민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는 "저는 평소에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며 "막상 그런 환경에 처하니 굉장히 나약해지더라. 두려움에 떨고…"라고 했다.
이어 "이런 상황이 되니까 눈물을 흘렸다.
참된 용기란 것이 정말 대단한 거란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속(수직갱도 지하 190m)에 있으니까 정말 세상 모든 것들이 아름다웠던 거 같고, 정말 일하는 모습, 세상의 모든 게 아름답게 보였다"며 "평소 살아가며 그런 걸 못 느꼈는데, 그런 상황에 놓이다 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전남 여수 출신인 그는 서울에 본업이 있고, 약 10년 전에 강원 태백시에 사업 때문에 왔다.
박씨는 "원래 광산은 관련도, 관심도 없었다"며 "태백에 식품 제조업 공장을 지었는데, 고정 비용이 많이 들어갔고 시행착오를 겪었다.
공장을 정리하며 4∼5개월 전까지 서울에 있다가 왔다"고 말했다.
이어 "식구들이 강원도에 가지 말라고 했는데, 동해가 있는 강원도에 정이 들었는지, 바다낚시도 할 겸 태백으로 돌아왔다"며 "지인이 이 회사에 있었고, 일손도 부족하다고 몇 달만 다녀보라고 권유를 해서 광업에 종사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막상 현장에 들어가 보니 굉장히 위험하고 불안하다는 생각에 들어갈까 말까 고민을 했다"며 "지하 말고 지상에서도 일할 수 있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지하에 들어가게 됐다.
케이지(엘리베이터)가 굉장히 불안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사고 당시를 떠올리면서는 목소리가 떨렸다.
박씨는 "생각지도 못했다.
토사가 쏟아지고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너무 크나큰 충격에 발걸음이 안 떨어졌다"며 "밟고 있는 땅, 지축마저 흔들린다는 느낌이 들고 그 짙은 어둠이 가슴 속에 증폭돼서 이성마저 잃어버리게 됐었다"고 했다.
그는 "기억을 꺼내고 싶지 않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 동안 제 인생 방향성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본다"며 "이 일을 계기로 삶의 가치를, 방향성을 바꿔 봉사할 줄 알고 사람들을 챙기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박씨는 광산 안전 문제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땅속에 들어가 있는 것부터가 위험하다"며 "사람들의 인식에 변화가 생겨 일하는 조건과 환경이 많이 좋아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회사 소유주부터 시작해서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돼야 한다"며 "이런 안타까운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관들에서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
법률적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법률적 허점이 안 보이는 게 선진국 아니냐"고 반문했다.
박씨는 이날 퇴원 기자회견장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저는 시골 사람"이라며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땅속에서 나왔단 말이죠. 살면서 전혀 예상 밖의 일입니다.
그런 게 너무 부담스럽습니다"라고 했다.
/연합뉴스
보조작업자 박씨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생사기로에서 건강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퇴원할 수 있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며 구조에 나선 소방관 등 구조대원, 국민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는 "저는 평소에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며 "막상 그런 환경에 처하니 굉장히 나약해지더라. 두려움에 떨고…"라고 했다.
이어 "이런 상황이 되니까 눈물을 흘렸다.
참된 용기란 것이 정말 대단한 거란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속(수직갱도 지하 190m)에 있으니까 정말 세상 모든 것들이 아름다웠던 거 같고, 정말 일하는 모습, 세상의 모든 게 아름답게 보였다"며 "평소 살아가며 그런 걸 못 느꼈는데, 그런 상황에 놓이다 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전남 여수 출신인 그는 서울에 본업이 있고, 약 10년 전에 강원 태백시에 사업 때문에 왔다.
박씨는 "원래 광산은 관련도, 관심도 없었다"며 "태백에 식품 제조업 공장을 지었는데, 고정 비용이 많이 들어갔고 시행착오를 겪었다.
공장을 정리하며 4∼5개월 전까지 서울에 있다가 왔다"고 말했다.
이어 "식구들이 강원도에 가지 말라고 했는데, 동해가 있는 강원도에 정이 들었는지, 바다낚시도 할 겸 태백으로 돌아왔다"며 "지인이 이 회사에 있었고, 일손도 부족하다고 몇 달만 다녀보라고 권유를 해서 광업에 종사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막상 현장에 들어가 보니 굉장히 위험하고 불안하다는 생각에 들어갈까 말까 고민을 했다"며 "지하 말고 지상에서도 일할 수 있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지하에 들어가게 됐다.
케이지(엘리베이터)가 굉장히 불안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사고 당시를 떠올리면서는 목소리가 떨렸다.
박씨는 "생각지도 못했다.
토사가 쏟아지고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너무 크나큰 충격에 발걸음이 안 떨어졌다"며 "밟고 있는 땅, 지축마저 흔들린다는 느낌이 들고 그 짙은 어둠이 가슴 속에 증폭돼서 이성마저 잃어버리게 됐었다"고 했다.
그는 "기억을 꺼내고 싶지 않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 동안 제 인생 방향성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본다"며 "이 일을 계기로 삶의 가치를, 방향성을 바꿔 봉사할 줄 알고 사람들을 챙기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박씨는 광산 안전 문제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땅속에 들어가 있는 것부터가 위험하다"며 "사람들의 인식에 변화가 생겨 일하는 조건과 환경이 많이 좋아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회사 소유주부터 시작해서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돼야 한다"며 "이런 안타까운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관들에서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
법률적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법률적 허점이 안 보이는 게 선진국 아니냐"고 반문했다.
박씨는 이날 퇴원 기자회견장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저는 시골 사람"이라며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땅속에서 나왔단 말이죠. 살면서 전혀 예상 밖의 일입니다.
그런 게 너무 부담스럽습니다"라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