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달항아리
20세기 한국 대표화가 김환기(1913~1974)는 달항아리 마니아였다. 1950년대 그의 서정적 추상 작품에서 달과 구름, 새, 매화 등과 함께 빠지지 않은 것이 백자 항아리였다. 달항아리 수집도 했던 그는 달항아리에서 사람의 체온을 느낀다고 했다. “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순백이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미묘하고 불가사의한 미를 발산할 수가 없다. 싸늘한 사기지만 살결에는 따사로운 온도가 있다.”

17세기 후기~18세기 전기의 약 100년 동안 경기도 광주의 관요에서 만든 달항아리의 원래 이름은 백자대호(大壺)였다. 다른 도자기와 달리 높이가 40㎝를 넘을 정도로 컸기 때문이다. 여기에 ‘달항아리’라는 이름을 붙인 이도 김환기라고 한다. 순백의 바탕색과 둥근 형태가 보름달을 닮았다는 것이다. 미술사학자 고유섭,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등도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일찌감치 알아봤다.

달항아리가 많은 이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00년대 들어서였다. 2005년 국립고궁박물관이 ‘백자 달항아리’라는 개관 특별전에 달항아리 9점을 선보였다. 2011년 문화재청은 국보·보물로 지정된 백자대호 7점의 명칭을 ‘백자 달항아리’로 바꿨다. 2000년 런던의 영국박물관은 한국실을 열면서 18세기 달항아리를 ‘Moon Jar’라는 이름으로 선보였다. 이제 달항아리는 한국미술의 가장 핫한 아이템 중 하나다. 강익중 최영욱 강민수 권대섭 등 수많은 작가가 지금도 달항아리를 만들고 그린다. 그룹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이 권대섭의 달항아리를,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최영욱의 달항아리 그림을 소장하는 등 국내외에서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내년 3월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크리스티 경매에 18세기 백자 달항아리가 출품된다고 한다. 일본인 개인 소장자가 내놓은 것인데, 높이가 45.1㎝로 일반적인 달항아리보다 큰 편이다. 크리스티는 “수려한 모양과 아름다운 유백색이 특징으로, 보존 상태도 훌륭하다”며 “최근 10년간 경매에 나온 달항아리 중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했다. 추정가 100만달러(약 14억원)에 나온 이 달항아리가 얼마에 어떤 주인을 만날지 벌써 궁금해진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