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대리인 무당. 만신, 샤먼, 텡그리 등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지만 이들이 주도하는 무속신앙은 지역을 막론하고 전 세계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고대문화다.국립창극단의 ‘만신: 페이퍼샤먼’(사진)은 전 세계 무당을 한데 모은 공연으로 30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렸다. 신기를 갖고 태어난 주인공 ‘실’이 세계 각국의 샤먼(무당)들과 ‘한’을 풀어주기 위해 떠나는 여정. 노예로 끌려간 가나의 한 마을, 아메리카 원주민, 마지막 남은 아마존 부족 등 각 대륙에 살던 샤먼들이 아픈 역사에 고통스러워하면 실이 하나둘씩 한풀이를 해준다. 쉽게 말하면 인류를 위해 바치는 하나의 굿판이다.발상은 신선하지만, 이야기 구조에 흡인력이 부족하다. ‘실’의 다짐 하나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강한 원동력이 없다. 구체적인 갈등과 반전도 없어 관객을 빨아들일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결말도 ‘실’이 앞으로도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겠다고 다짐하며 끝나 밋밋하다.물론 다양한 지역의 문화를 그린 방식이 다채롭고 보는 재미가 있다. 화려한 전통 의상과 종이를 오려 붙여 만든 듯한 무대도 아름답다. 토속적인 분위기를 가미한 판소리도 매력적. 하지만 장면 사이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다. 각 대륙의 이야기가 병렬식으로 나열된다. 한 지역의 한을 풀고 막이 내리면, 바로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 또다시 한을 푸는 식이다. 장면과 그에 얽힌 이야기 간 자연스러운 전환 없이 뚝뚝 끊긴다.인류의 역사를 우리의 소리로 한풀이한다는 발상은 재밌다. 다만 주제를 대사로 과도하게 직접 설명해 몰입을 해치는 순간이 있다. &ldqu
국립창극단의 창작극 ‘리어’가 10월 3일부터 나흘간 유럽 최대 규모 공연예술센터인 영국 런던 바비칸센터 무대에 오른다. 작품의 근간은 영국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 셰익스피어 원작에 판소리를 담은 한국의 창극이 셰익스피어의 본고장으로 입성하는 것이다.창극 ‘리어’는 2022년 한국 초연에서 서양의 고전을 우리 말과 소리로 참신하게 재창조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영국 바비칸센터는 이 점에 주목해 올해 시즌 레퍼토리 작품으로 초청했다. 바비칸센터 홈페이지에도 ‘연극·무용 가을·겨울 시즌작’으로 ‘리어’를 가장 먼저 게시해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국립창극단의 ‘리어’는 시간이란 물살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인간의 욕망, 어리석음을 2막 20장(180분)에 걸쳐 그려낸 작품이다.딸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배신 당한 리어왕의 비극을 노자의 사상과 연결 지은 것이 특징이다. ‘천지불인(세상은 어질지 않다)’이라는 노자의 말에 힌트를 얻은 작가와 연출가는 노자가 깨달음을 얻은 물상인 ‘물(水)’을 작품 곳곳에 연출했다. 국립창극단의 간판스타 소리꾼 김준수, 유태평양은 각각 리어왕과 신하 글로스터 백작 역을 맡았다.이해원 기자
서울대 관악캠퍼스 정문에서 가장 가까운 건물은 네덜란드 건축 거장 렘 콜하스가 설계한 서울대미술관이다. 미술관이 ‘목 좋은 곳’에 들어선 이유는 시민과 미술계 그리고 미술학도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기 위해서다. 최근 서울대미술관이 개최한 기획전 ‘미적 감각’은 새삼 미술관의 사명을 생각하게 한다. 난해한 개념미술이나 정치적 올바름을 강요하는 미술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본질을 탐구하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어서다.이번 전시는 1945년생 김홍주부터 1990년생 이나하까지 작가 12명의 작품 100여 점을 선보인다. 반세기 넘는 세대 차이를 아우르는 건 세밀한 묘사력, 조화로운 화면 구성과 색감 등 직관적인 아름다움이다. 이들의 작업은 우리 주변의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는 데서 시작한다. 김용식 작가의 ‘영원과 한계’ 연작이 가장 먼저 관객을 반긴다. 산딸기와 라일락 등 화초를 3m 너비의 대형 캔버스에 확대해 그렸다. 주변의 이끼와 거미줄마저 작품의 일부다. 전시를 기획한 조나현 학예연구사는 “정교하게 그려진 그림 앞에서 감정이 벅차오르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언제인가. 어쩌면 우리는 작품의 아름다움에서 오는 감각의 중요성을 놓치고 있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전시는 인터넷 쇼핑을 모티프로 한 박윤주의 영상으로 마무리된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생활하기 위한 소비활동 전반을 묘사했다. 전시는 8월 25일까지.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