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군이 남부 헤르손주(州)의 주도인 헤르손시를 완전히 되찾았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이후 최대 전과란 평가가 나온다. 밀리고 있는 러시아가 휴전 협상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미국은 “협상 주체는 우크라이나”라며 휴전 압박 의혹을 부인했다.

우크라이나는 12일(현지시간) 헤르손시를 전면 수복했다고 발표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라며 “우크라이나 경찰이 도시 안정화 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은 헤르손시 인근 60개 마을의 통제권도 회복했으며 도시에 남아 있던 총 2000여 개의 지뢰, 부비트랩, 불발탄 등을 제거했다.

헤르손시는 남부와 동부를 잇는 요충지인 동시에 크림반도의 상수원·전력발전원을 관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헤르손시를 되찾은 건 3월 초 러시아군에 빼앗긴 지 8개월 만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전날 오전 5시께 헤르손시 철수 작전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3만여 명의 병력과 5000여 점의 군수품을 손실 없이 드니프로강 동편으로 옮겼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같은 날 우크라이나군은 헤르손시 주변을 수색하던 중 러시아군이 남기고 간 박격포탄 수백 발과 군복, 통조림 등 군수물자를 발견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의 추격을 막으려 헤르손시 주변 기반시설을 파괴했다. 헤르손시의 안토니우스키 다리가 폭파됐고, 도시 인근에 있는 노바카호바카 댐 일부도 파괴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군이) 달아나기 전에 통신, 수도, 전기 등 주요 기반시설을 파괴했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에 퇴각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선을 교착시키려는 전략이란 설명이다. 영국의 싱크탱크 국제전략연구소(IISS)의 프란츠 스테판 가디 선임연구원은 “역설적으로 퇴각한 러시아군은 전선이 축소돼 방어 태세를 유지하기 더 수월해졌다”며 “예비군 훈련과 순환 배치를 위한 시간을 번 셈”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가 헤르손시 정상화에 주력하는 동안 러시아군이 전력을 정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도 “크렘린궁에선 병력을 충원하려 휴전을 간절히 원하고 있을 것”이라며 “국제 사회가 우크라이나에 협상을 종용할 수 있게 러시아 정부가 움직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협상 압박은 없었다고 일축했다. 이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을 만났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양국 장관은 우크라이나군의 성과에 대해 논의했다”며 “블링컨 장관은 어떤 협상이든 시기와 내용은 우크라이나가 결정할 거라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압박하거나 지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5일 미국 당국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협상을 압박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