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정은지 /사진=IST엔터테인먼트 제공
가수 정은지 /사진=IST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룹 에이핑크 멤버 정은지가 솔로로 돌아왔다. 그는 기라성 같은 가요계 선배들의 음악으로 자신의 지난날을 노래했다. 타이틀로 내세운 곡은 버즈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올해로 서른 살인 정은지는 여전히 자신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정은지의 서른은 똑 부러지는 그의 성격을 닮아 꾸준하고 성실한 행보로 꽉 채워졌다. 에이핑크 활동을 시작으로 예능 프로그램 '두 번째 세계' 심사위원으로도 활약했고, 드라마 '블라인드'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오는 12월엔 큰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 시즌2도 공개된다. 여기에 솔로 앨범까지 나왔으니 다양하게 쏟아낸 한 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특히 솔로 앨범은 무려 2년 3개월 만이라 팬들의 기대가 더욱 컸다. 지난 11일 공개된 앨범 '로그(log)'는 리메이크 앨범으로 '기록하다'라는 뜻을 지녔다. 마치 여행과도 같은 인생을 선배들의 음악으로 재해석하고 다시금 기록한 앨범이다.

타이틀곡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을 비롯해 YB의 '흰수염고래', 조용필의 '꿈',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 故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까지 한곡 한곡 정은지에게 의미 있는 노래들이다.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가수 정은지 /사진=IST엔터테인먼트 제공
가수 정은지 /사진=IST엔터테인먼트 제공
Q. 2년 3개월 만에 내는 솔로 앨범인데 기분이 어떤가.

A. 이렇게 딱 서른에 맞춰서 앨범이 나오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코로나 시기에 앨범 준비와 (드라마) 작품을 병행하다 보니 발매가 미뤄졌던 것 같아요. 사실 제가 뭘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그 시기를 지나서 나오는 앨범이라 선곡 고민도 많았죠. 감회가 남다른 앨범입니다.

Q. 왜 리메이크 앨범이었나.

A. 제겐 당연한 선택 중 하나였어요. 20대 중반부터 계속 팬들이 리메이크 앨범을 내주면 안 되냐고 했어요. 그래서 '나중에 서른 즈음에 리메이크 앨범을 내겠다'고 했죠. 가볍게 던진 말이었는데 제 마음속에 기정사실화 되어 있었어요. 약속을 지키려는 마음이 커서 드라마 촬영과 행하면서 꾸역꾸역 앨범을 준비했어요. 올해는 넘기기가 싫었습니다. 올 한 해 동안 팬분들한테 보여드릴 수 있는 건 거의 다 보여드렸는데요. 이 약속을 지킴으로써 진짜 제가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좋아요.

Q. 선곡 과정은 어땠는지.

A. 곡을 고르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가수 정은지로서 부를 수 있는 곡인지, 여태까지 제가 하고자 했던 노래와 방향이 맞는지 등을 고려해야 했어요. 또 불렀을 때 제 이야기 같아야 하잖아요. 평소에 팬들과 라이브 방송을 하면서 편하게 부르던 노래를 막상 앨범으로 낸다고 생각하니 딱 떨어지는 게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고요. 명곡인데도 불구하고 계속 고민해야 하는 게 어려웠어요. 만족도는 70% 정도입니다.

Q.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을 타이틀곡으로 꼽은 이유는?

A. 워낙 대중적인 곡이잖아요. 요즘 리메이크에 대한 대중의 애정도가 높아서 대중성을 뺄 수가 없었어요. 그중에서도 제게 의미 있는 곡이 뭘지 고민하다가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 떠올랐어요. 어릴 때 학교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동생이 어린이집에서 올 때까지 저만의 시간이 있었거든요. 몇 시간 안 되는 그 시간에 방구석 여행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노래였어요. 코인노래방을 많이 갔는데 이 노래로 당시 제 전 재산을 탕진했죠. 정말 애정하는 곡이에요. 시기적인 고민이 있긴 했는데 밍지션 작곡가님이 워낙 편곡을 잘해줘서 타이틀곡으로 선정했어요.

Q. 수록된 곡들이 다 사연이 있는 것들이라고요?

A. 맞아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제가 노래로 위로받았던 서사가 잘 느껴지는 앨범이라 마음에 들어요.

YB의 '흰수염고래'는 위로를 정말 많이 받았던 노래에요. 팬분들이 제게 어떤 노래를 하고 싶냐고 물을 때마다 '위로가 되는 노래를 하고 싶다'는 말을 했거든요. '흰수염고래'는 제게 앞으로 어떤 의미를 담아 어떻게 노래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지침 같은 노래죠.

'꿈'은 제 본가가 부산인데, 처음 서울에 왔을 때 낯설고 어려웠던 환경 속 20대 초반의 저를 떠올리게 하는 곡이에요. 이 노래 역시 큰 위로를 줬죠. 가사가 공감돼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 곡은 조용필 선생님께 허락받기까지 회사 직원분들이 정말 많이 노력했어요.

'사랑을 위하여'라는 곡은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하늘바라기'라는 곡이 '아빠야'라는 가사로 시작하는데, 엄마가 왜 아빠만 찾냐면서 정말 많이 아쉬워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엔 엄마를 위한 곡을 꼭 넣고 싶었어요. 제가 서른까지 오는 데에 엄마의 여정도 늘 포함돼 있었거든요. 어렸을 때 피아노 학원에 다녔는데 처음으로 배운 반주곡이었어요. 집에 와서 멜로디언으로 엄마한테 들려줬던 추억이 있는 노래에요. 그날의 분위기가 떠오르는 곡이라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서른 즈음에'는 (팬들과의) 약속이었죠. 근데 막상 노래를 계속 불러보니 딱 서른에 낼 노래는 아니더라고요. 더 경험한 후에 서른 즈음에 관해 얘기할 수 있는 곡인 것 같았어요. 그래서 녹음할 때 겁을 좀 많이 먹었는데 계속 부르다 보니 '그래도 내가 사회생활을 녹록지 않게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와닿더라고요.

Q. 워낙 유명한 가수들의 히트곡이라 부담스럽진 않았나.

A. 모니터할 때마다 (선배님들이) '이걸 검색해서 들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창피하기 싫더라고요. 최대한 원곡자 선배님께서 들었을 때 내가 창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작업했어요. 원곡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잘 벗어났다고 생각하실까에 대한 고민의 연속이었어요. 솔직히 중간에 내지 말까라는 생각까지도 살짝 했는데, 그래도 할 건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이어갔어요.

Q. 정은지 리메이크는 원곡과 어떤 차이가 있나.

A.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은 베이스 소리가 나오는 인트로가 워낙 강하게 각인돼 있잖아요. 그래서 차라리 그 부분을 제 목소리로 채우자고 생각했어요. 굉장히 생각이 많았던 곡인데 기타 솔로가 나올 때의 쾌감은 무조건 가지고 가되, 인트로에 제 목소리를 더 깔았죠.

'꿈'은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노래가 될 것 같은데요. 장르가 완전 다르게 신스팝으로 바꿨어요. 조금 더 짠하면서도 신나는 기분이 동시에 느껴져요. 원곡은 강렬하고 힘을 주는 것 같은데, 전 마냥 밝게만 부르진 않았어요. 듣는 분들이 노래를 듣고 쉬었으면 하는 마음에 전체적으로 따뜻하게 부르려고 했어요.

Q. 오랜만의 컴백인데 작사·작곡도 직접 하다 보니 자신의 곡을 타이틀로 하고 싶었을 텐데

A. 엄청나게 고민했어요. 제가 쓴 곡을 타이틀로 하고, 리메이크곡들을 저의 여행길을 함께해 준 노래로 수록할까 고민했어요. 현재의 저를 타이틀로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도 저와 잘 맞았고, 편곡도 너무 좋아서 결국 이걸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정은지의 서른은?

A.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제일 바빴던 한해였던 것 같아요. 정말 제 한계치를 계속 테스트하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내가 여태껏 잘 지내와서 서른에도 이렇게 활동을 열심히 할 수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던 가능성의 한해였던 것 같아요.

Q. 앞으로 '가수 정은지'가 나아갈 길은.

A. 계속 위로되는 노래를 하고 싶어요. 이게 제가 음악을 시작했던 이유 중 하나거든요. 지금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크게 기복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하거든요. 또 창피하고 싶지 않아요. 공석에서든 사석에서든 늘 스스로 떳떳한 걸 하고 싶어요.
"좋은 추억을 계속 만나게 되는 서른이었던 것 같아요. 일 때문에 치여서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저를 응원해주는 분들이 정말 많다고 느꼈죠. 가족들도 많이 응원해줬어요. 여러모로 단단해져 가는 서른인 것 같아요. 리메이크 앨범 발매라는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오늘이 왔다는 것에 감격스럽습니다. 나중에 '마흔 즈음에'도 나왔으면 해요"(웃음)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