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구리 가격, 5개월 내 최대치…재고는 3월 이후 최저 [원자재 포커스]
구리 가격이 약 5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인플레이션 완화와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정책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구리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런던금속거래소의 구리 재고는 약 8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 11일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구리 12월물 가격은 파운드당 3.913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전일 대비 4.14% 올랐다. 지난 6월 23일(3.7445달러) 이후 최고치다. 구리 가격은 지난 3월 4.93달러를 기록한 뒤 대체로 하락세를 보였다. 지난 7월엔 가격이 2년 내 최저치인 3.23달러까지 떨어졌다가 9월 말 들어 반등세가 확연해졌다. 구리는 배터리, 배선, 충전설비 등 전기차 생산을 비롯해 산업 전반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원자재다.

최근 가격 상승세를 이끈 건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정책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다. 11일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는 10일 방역 정책 최적화를 위한 20가지 조치들을 내놨다. 중국은 세계 구리 수요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 활성화 여부가 구리 가격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유다.
치솟는 구리 가격, 5개월 내 최대치…재고는 3월 이후 최저 [원자재 포커스]
이번 조치에선 '방역 전쟁에서의 승리'를 강조하는 대신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에서 벗어나 빠른 정상화를 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졌다. 지난 5월까지 두드러졌던 '제로 코로나'에 대한 내용 상당수가 새 조치에서 사라졌다. 당 차원에서 감염 확산 억제를 최우선하는 기존의 고강도 방역 정책을 조금 완화할 뜻을 내비친 것이다. 새 방역 정책이 산업 현장에 적용되는 데는 6개월 이상의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중국이 경제 활성화를 강조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만으로도 원자재 시장은 술렁거렸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레베카 배빈 CIBC 프라이빗자산운용 수석 에너지 트레이더는 "중국이 코로나19 정책 일부를 수정하면서 원자재 가격이 하락했다"며 "이러한 변화의 영향이 즉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중국은 전통적으로 상품 수요의 '성장 엔진'인 만큼 제로 코로나에서 벗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징후만으로도 상품 전반에 랠리를 촉발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중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증가 추세라는 점은 변수다. 13일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에 따르면 12일 중국의 31개 성·시·자치구의 신규 감염자 수는 1만4761명으로 집계됐다. 이달 초 3000명 수준이였던 확진자 수가 보름도 안 돼 5배 가까이 늘었다. 확산세가 계속되면 제로 코로나를 완화하는 데에 정부 부담이 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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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완화하고 있다는 점도 구리 가격 상승에 영향을 줬다. 지난 11일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미국의 10월 소비자가격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7.7% 올랐다. 지난 2월 이후 처음으로 상승폭이 7% 대로 떨어졌다. 인플레이션 완화로 인해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기대가 시장에 퍼지면서 달러도 약세로 전환했다. 금속전문매체인 마이닝닷컴은 "달러 약세로 인해 달러 외 통화 보유자들에게 구리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됐다"고 구리 가격 상승 이유를 설명했다.

공급량이 넉넉하지 않다는 점도 가격 상승 요인이다. 11일 기준 런던금속거래소의 구리 재고는 전일 대비 2150톤 줄어든 7만7875톤을 기록했다. 지난 3월 17일 약 8개월 만에 최저치다. 이 거래소의 구리 재고량은 중국 상하이가 코로나19 봉쇄 조치를 겪고 있던 5월 중순 18만톤을 웃돌았지만 지금은 그 양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상태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