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마이클 바렌보임(왼쪽)과 케이스 스칼리오네가 지휘하는 뷔르템베르크체임버오케스트라가 지난 12일 아트센터인천 콘서트홀에서 연주하고 있다.  이건 제공
바이올리니스트 마이클 바렌보임(왼쪽)과 케이스 스칼리오네가 지휘하는 뷔르템베르크체임버오케스트라가 지난 12일 아트센터인천 콘서트홀에서 연주하고 있다. 이건 제공
예술가에게 ‘아버지의 후광’만큼 부담스러운 것도 없다. 한 분야의 ‘대가’가 된 아버지의 일터에 뛰어든 자식은 그를 바라보는 대중의 ‘높은 기대치’를 피할 길이 없다. 잘하는 게 당연하고 못하면 엄청난 비난이 뒤따르는, 그야말로 ‘잘해야 본전’인 게 명망 있는 예술인 2세의 운명이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 지휘자로 꼽히는 다니엘 바렌보임(80)의 아들 마이클 바렌보임(37)도 그랬다. ‘다니엘 바렌보임의 피가 흐른다’는 선입견 때문일까. 지난 1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이건음악회 무대에 오른 그의 연주 실력에 좋은 평가를 내리기는 쉽지 않았다.

시작은 괜찮았다. 빨간 넥타이를 맨 바렌보임은 만면에 웃음을 띠며 무대에 올랐다. 첫 연주곡은 슈베르트의 ‘바이올린과 현을 위한 론도 A장조’. 큰 숨을 들이쉬고 활을 움직인 바렌보임의 바이올린 음색은 화려했다. 선율을 자유자재로 갖고 노는 걸 보면 다니엘 바렌보임의 아들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까지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리는 굳어갔다. 고음에선 흔들렸다. 손끝에 여유가 사라지자 쭉 흘러가야 할 리듬이 끊기기도 했다. 통통 튀어야 할 스타카토 소리는 푸석한 벽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로 들렸다. 바이올린의 ‘과속’으로 오케스트라와의 호흡이 어긋나기도 했다. 솔리스트라면, 게다가 다니엘 바렌보임의 아들이라면 콘서트홀을 뒤흔드는 카리스마가 있을 거란 기대는 이렇게 무너졌다.

실망감은 다음 곡에서 어느 정도 회복됐다. 힌데미트의 ‘비올라와 현악 합주를 위한 장송곡’에서는 기대치를 넘어섰다. 이 작품은 영국 국왕 조지 5세의 서거를 애도하는 곡. 무거운 그의 비올라 음색은 우울하면서도 신비로운 이 작품에 꼭 들어맞았다. 바렌보임은 바이올리니스트이나 3년 전부터 비올라 연주도 병행하고 있다.

다음 순서였던 드보르자크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E장조’를 듣고 난 뒤에는 귀가 다시 어지러워졌다. 케이스 스칼리오네가 지휘하는 뷔르템베르크체임버오케스트라는 ‘19세기 세레나데 걸작’을 연주하기엔 2% 부족한 느낌이었다. 각 파트가 선율을 주고받는 순간에 서로 생각하는 박자와 음색에 차이가 있다 보니 소리를 쌓아 올리는 데 탄탄한 긴장감을 찾기 어려웠다. 이곡을 연주할 땐 바렌보임은 없었다.

이날 가장 인상적인 연주는 앙코르곡으로 나온 정재민(26·한양대 4학년) 작곡의 ‘아리랑’이었다. 바렌보임이 켜는 바이올린의 맑고 투명한 음색이 서글프고도 애절한 아리랑 가락과 꿰맞춘 듯 잘 어울렸다. 익숙한 아리랑 선율이 현을 타고 흐르자 박자에 맞춰 고개를 흔드는 관객이 여럿 보였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날 공연은 무료였다. 종합건자재업체 이건이 1990년부터 매년 열고 있는 무료 클래식 공연이다. 클래식 대중화를 위해 이건이 펼치는 대표적인 사회공헌 활동이다. 30년을 훌쩍 넘긴 메세나 활동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무료라는 이유로 잦은 실수와 부족한 연습량이 용인될 무대는 없다. 이들의 연주를 보기 위해 수천 명이 주말 황금시간을 반납했으니까.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