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인상 및 부의 재분배 강조
세율 낮은 싱가포르로 자본유출
15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 부호들이 싱가포르로 부를 이전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시 주석이 공공의 발전을 빌미로 개인을 옥죄일 거란 우려가 커져서다. 개인이 부를 추구하는 행위가 자칫 사회악으로 비칠 염려도 증폭되고 있다.
싱가포르국립대학 리콴유공공정책대학원의 드류 톰슨 선임연구원은 “중국의 민간 영역은 축소될 게 분명하다. 얼마나 빠르게 붕괴할 지가 관건이다”라며 “결국 중국의 부는 해외로 빠르게 빠져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공산당은 지난달 당대회에서 당정을 공동부유의 실현과 쌍순환 발전 구도로 바꿨다. 소득격차를 줄여 모두 잘 살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공동부유), 내수 중심으로 경제를 성장시키겠다(쌍순환)는 게 핵심이다. 시 주석은 “재산 축적의 메커니즘을 바로잡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규제를 강화하고 각종 세금을 신설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위기를 느낀 중국 부호들은 싱가포르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세율이 아시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싱가포르의 법인세율은 최고 17%에 불과하다. 금융 시장의 안정성도 뛰어나 아시아 부호들의 허브로 불린다. 2019년까지 홍콩이 중국 부호들의 도피처 역할을 했으나 중국이 실권을 장악하게 되자 싱가포르로 옮겨갔다.
부가 싱가포르로 이전되면서 ‘패밀리 오피스’가 확대됐다. 패밀리 오피스는 고액 자산가들을 위한 자산관리 서비스를 전담하는 업체다. 2021년 말 싱가포르의 패밀리 오피스는 약 700여개로 불어났다.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패밀리 오피스 개설 문의 건수도 중국 당대회를 기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중국 부호들이 유입되자 자산관리 사업도 번창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싱가포르 통화청에 따르면 2021년 자산관리 사업의 규모는 전년 대비 16% 증가한 5조4000억 싱가포르 달러(약 5227조원)를 기록했다. 자산은 대부분 아시아·태평양 지역(싱가포르 제외)에서 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라비 메논 싱가포르통화청 전무는 “최근 몇 년 간 중국에서 막대한 자금이 유입됐다”고 했다.
자산뿐 아니라 직접 이주하는 중국 부호들도 늘어났다. 싱가포르의 럭셔리 제품이 호황을 맞았다. 세계적인 부동산 불황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 부동산 평균 거래가격은 올해 1~9월 전년 동기 대비 8% 올랐다. 고급 콘도미니엄 구매 건수도 급증했다. 올해 1~8월 동안 중국인의 콘도미니엄 구매 건수는 932건을 기록했다. 구매자 국적 기준으로 1위를 차지했다. 말레이시아(566건)를 크게 앞섰다. 싱가포르에서 벤틀리, 롤스로이스 등 고급 차 판매량도 올해 각 87대, 78대를 기록했다. 2019년 대비 각 26%, 90%씩 증가했다. 블룸버그는 중국 부호들의 수요가 싱가포르로 몰렸다고 보도했다.
중국에서 자본이 유출되는 현상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투자이민 컨설팅업체 핸리 앤 파트너스에 따르면 올해 중국에서 자금 반출을 희망하는 고액 자산가는 1만여명으로 추산했다. 자산 규모는 480억달러에 이른다.
톰슨 연구원은 “중국 당국은 역사적으로 공산당 체제를 비판하지 않는 해외 이주자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며 “싱가포르는 서방 국가에 비해 반체제 인사를 수용할 가능성이 작다. 이 때문에 더 많은 중국 부호들이 싱가포르로 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