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이주호는 관료와의 전쟁서 이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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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프닝 아닌 'KAIST 예산 소동'
본질은 통제 관료주의의 反動
'디테일의 악마'가 규제 양산
대전환 성패 가를 교육 패러다임
수많은 변이·적응 과정에서 나와
관료들 손 떼고 대학에 자유 줘야
안현실 AI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본질은 통제 관료주의의 反動
'디테일의 악마'가 규제 양산
대전환 성패 가를 교육 패러다임
수많은 변이·적응 과정에서 나와
관료들 손 떼고 대학에 자유 줘야
안현실 AI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르네상스 시기의 창조성 폭발은 페스트균 감염증 만연과 무관하지 않다. 전 세계에서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독감 발생 다음 해인 1919년 전설적인 창조성 학교 바우하우스가 탄생한 것도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 여기에 필연성이 있다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역시 새로운 창조성 출현으로 이어져야 하는 게 아닐까.”
일본의 디자인 전략가 다치카와 에이스케는 <진화사고>에서 이렇게 말했다. 생물의 진화처럼 ‘변이’와 ‘적응’을 반복하면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진화사고 관점에서 또다시 위기를 뛰어넘을 교육의 진화를 강조하고 있는 점이 와닿는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AI)과 인간의 분업·협업·공존을 말하는 지금, 인간의 창조성 재구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더욱 그렇다.
기획재정부가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인 KAIST 등 4대 과학기술원 예산을 교육부가 관리하는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로 옮기겠다고 했다가 과학기술계의 거센 반발로 철회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KAIST는 그나마 한국에 존재하는, 일반 대학과 다른 변이 모델에 해당한다. 대학이 살아남으려면 변이 모델을 더욱 늘려도 시원찮을 판국에 예산을 무기로 전부 획일 모델 바구니에 담으려고 한 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었다. “다 같이 죽어라”는 것에 다름없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 교육부가 폐지될지 모른다던 분위기에 비하면 반동(反動)도 이런 반동이 없다. 반동의 주범은 대학을 통제하는 관료주의다. 기재부는 초·중·고교 운영에 쓰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여분을 고등교육으로 돌리는 특별회계로 KAIST가 들어오면 더 많은 예산 확보가 가능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지원과 규제를 맞바꾸겠다는 것인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실감 나게 한다. 기재부가 단독으로 획책한 일인지, 교육부가 공모자로 가담했는지는 그들만이 알 것이다. 분명한 것은 지독한 교육 관료주의는 언제든 반동을 불러올 것이란 점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입각하기 전 “정부 산하기관처럼 강한 통제와 지시를 받고 있는 대학을 교육부에서 떼어내야 교육뿐 아니라 산업 등 사회 혁신도 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K정책플랫폼 이사장으로서 윤석열 정부에 전달한 보고서에서 △교육부 고등교육정책실 폐지 △대학입시 정책은 국가교육위원회로 △대학정책, 학사제도, 대학재정·장학은 국무총리실 산하 대학위원회(가칭)로 △대학의 연구·혁신·평생교육 및 산학협력 지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전문대 지원은 고용노동부로 넘긴다는 구체적 방안까지 제안했다. 대학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위해 관료의 국립대 사무국장 파견을 금지할 것도 제안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관료와의 전쟁을 돌파하지 못하면 수포로 돌아간다. 이명박 정부 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이 부총리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사라지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게 대전환 시대의 특징이다. 투자자들이 ‘죄짓는 산업’이라고 비판하는 담배산업에서조차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PMI)이 ‘담배 연기 없는 세상’을 내세우고 디지털 전환, 친환경을 외치는 판국이다. 전자담배라는 판갈이 시도는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몸부림이다. 판갈이에서 자유로운 분야는 어디에도 없다. 지금의 글로벌 복합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공급 측 혁신에 있다지만, 반만 맞는 말이다. 나쁜 인플레에서 좋은 인플레로 가려면 새로운 성장이 같이 일어나야 한다. 수요와 공급 모두의 판갈이라야 온전한 대전환이다.
지식의 판갈이, 인재의 판갈이를 몰고 오는 대전환의 중심에 서야 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대학이다. 판갈이에 도움이 안 되는 대학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대학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변이 모델로 승부를 걸어야 그나마 생존 확률이 높아진다. 그중 하나라도 살아남아 적응하면 그게 곧 새 패러다임이고 지배적 표준이 된다. 관료들이 손을 떼고 대학에 자유를 줘야 하는 절박한 이유다.
이 부총리에게는 두 번째 주어진 기회다. 윤석열 정부가 기회를 살리면 교육 대전환으로 미·중 충돌 속 지정학적 한계를 돌파한 정부로 기록될 것이고, 기회를 놓치면 미래 세대에 지식의 격차 → 성장의 격차 → 부의 격차를 안겼다는 역사적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부총리가 관료와의 전쟁에서 이기는 것 말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일본의 디자인 전략가 다치카와 에이스케는 <진화사고>에서 이렇게 말했다. 생물의 진화처럼 ‘변이’와 ‘적응’을 반복하면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진화사고 관점에서 또다시 위기를 뛰어넘을 교육의 진화를 강조하고 있는 점이 와닿는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AI)과 인간의 분업·협업·공존을 말하는 지금, 인간의 창조성 재구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더욱 그렇다.
기획재정부가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인 KAIST 등 4대 과학기술원 예산을 교육부가 관리하는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로 옮기겠다고 했다가 과학기술계의 거센 반발로 철회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KAIST는 그나마 한국에 존재하는, 일반 대학과 다른 변이 모델에 해당한다. 대학이 살아남으려면 변이 모델을 더욱 늘려도 시원찮을 판국에 예산을 무기로 전부 획일 모델 바구니에 담으려고 한 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었다. “다 같이 죽어라”는 것에 다름없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 교육부가 폐지될지 모른다던 분위기에 비하면 반동(反動)도 이런 반동이 없다. 반동의 주범은 대학을 통제하는 관료주의다. 기재부는 초·중·고교 운영에 쓰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여분을 고등교육으로 돌리는 특별회계로 KAIST가 들어오면 더 많은 예산 확보가 가능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지원과 규제를 맞바꾸겠다는 것인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실감 나게 한다. 기재부가 단독으로 획책한 일인지, 교육부가 공모자로 가담했는지는 그들만이 알 것이다. 분명한 것은 지독한 교육 관료주의는 언제든 반동을 불러올 것이란 점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입각하기 전 “정부 산하기관처럼 강한 통제와 지시를 받고 있는 대학을 교육부에서 떼어내야 교육뿐 아니라 산업 등 사회 혁신도 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K정책플랫폼 이사장으로서 윤석열 정부에 전달한 보고서에서 △교육부 고등교육정책실 폐지 △대학입시 정책은 국가교육위원회로 △대학정책, 학사제도, 대학재정·장학은 국무총리실 산하 대학위원회(가칭)로 △대학의 연구·혁신·평생교육 및 산학협력 지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전문대 지원은 고용노동부로 넘긴다는 구체적 방안까지 제안했다. 대학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위해 관료의 국립대 사무국장 파견을 금지할 것도 제안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관료와의 전쟁을 돌파하지 못하면 수포로 돌아간다. 이명박 정부 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이 부총리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사라지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게 대전환 시대의 특징이다. 투자자들이 ‘죄짓는 산업’이라고 비판하는 담배산업에서조차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PMI)이 ‘담배 연기 없는 세상’을 내세우고 디지털 전환, 친환경을 외치는 판국이다. 전자담배라는 판갈이 시도는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몸부림이다. 판갈이에서 자유로운 분야는 어디에도 없다. 지금의 글로벌 복합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공급 측 혁신에 있다지만, 반만 맞는 말이다. 나쁜 인플레에서 좋은 인플레로 가려면 새로운 성장이 같이 일어나야 한다. 수요와 공급 모두의 판갈이라야 온전한 대전환이다.
지식의 판갈이, 인재의 판갈이를 몰고 오는 대전환의 중심에 서야 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대학이다. 판갈이에 도움이 안 되는 대학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대학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변이 모델로 승부를 걸어야 그나마 생존 확률이 높아진다. 그중 하나라도 살아남아 적응하면 그게 곧 새 패러다임이고 지배적 표준이 된다. 관료들이 손을 떼고 대학에 자유를 줘야 하는 절박한 이유다.
이 부총리에게는 두 번째 주어진 기회다. 윤석열 정부가 기회를 살리면 교육 대전환으로 미·중 충돌 속 지정학적 한계를 돌파한 정부로 기록될 것이고, 기회를 놓치면 미래 세대에 지식의 격차 → 성장의 격차 → 부의 격차를 안겼다는 역사적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부총리가 관료와의 전쟁에서 이기는 것 말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