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탕으로, 아이스크림으로…가을 밤의 화려한 변신
“시간이 주는 선물. 밤 조림이 맛있다는 건 가을이 깊어간다는 것이다.”

2018년 개봉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 가을 챕터는 주인공 혜원(김태리 분)이 밤 열매를 찾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산에서 주운 밤을 일일이 까서 닦고 설탕을 넣은 뒤 밤새 졸인다. ‘단 밤에 단맛을 더해 생각날 때마다 꺼내 먹겠다’는 일념으로 번거로움을 견딘다. 입안을 가득 채운 밤 조림의 달콤함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가을이 주는 조용한 위로

밤은 가을을 닮았다. 나뭇잎이 갈색으로 변하며 이내 떨어질 때쯤, 밤송이에 갇혀 있던 밤 열매는 빼꼼 얼굴을 내밀고 세상에 나온다. 뾰족한 가시 속 탐스럽고 꽉 찬 알맹이에서 가을의 풍요를 느낄 수 있다. 가을에 수확한 밤은 겨우내 우리의 간식이 된다. 쪄 먹거나 구워 먹거나. 껍질만 벗겨 생으로 먹어도 달콤하다. 혜원처럼 조림을 만들어도 된다.

동북아시아에서는 예로부터 밤 요리가 발달했다. 밤을 넣어 밥을 짓기도 하고 밤설기나 밤 식빵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밤을 으깨고 반죽해 꿀, 참깨를 묻혀 먹는 한국 궁중요리 ‘율란’, 밤에 설탕을 넣은 뒤 삶아서 만든 일본식 화과자 ‘구리킨톤’은 각국의 고급 전통 요리가 됐다.

유럽에서는 주로 디저트로 즐긴다. 밤을 설탕에 절여 만든 ‘마롱글라세’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국민 간식이다. 코냑, 커피, 아몬드 등 다양한 재료를 곁들이기도 한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카스타냐초’라는 밤 파이를 만들어 먹었다. 지역 가을 축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음식이다.

나도 보늬 밤 만들어볼까

혜원을 따라 밤 조림을 만들어 볼까. 가장 필요한 건 인내심이다. 밤의 얇은 껍질 ‘보늬’(밤이나 도토리 등의 겉껍질 속에 있는 얇은 껍질을 뜻하는 순우리말)를 살려서 조리해야 하기 때문에 밤을 까는 과정부터 쉽지 않다.

(1) 밤부터 골라보자. 밤은 예쁠수록 맛있다. △알이 굵고 윤기가 날 것 △손으로 들었을 때 단단하고 묵직할 것 △껍질이 깨끗하고 구멍이 없을 것 △물에 담갔을 때 뜨지 않고 가라앉을 것. 이 네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밤이라면 달달할 확률이 높다.

(2) 햇밤의 경우 따뜻한 물에 1시간 정도 불린 뒤 겉껍질을 벗긴다.

(3) 밤 속껍질의 떫은맛을 없앨 차례다. 베이킹소다를 넣고 물을 가득 부어 12~24시간 동안 담가둬야 한다. 생밤 1㎏을 준비했다면 베이킹소다 두 큰술 정도가 적당하다.

(4) 다음날이 되면 베이킹소다에 담갔던 밤에서 짙은 붉은색 물이 배어 나올 것이다. 이 상태에서 30분 끓여준다.

(5) 삶기가 끝났다면 물을 버리고 찬물에 씻어 다시 냄비에 담는다. 밤이 잠길 정도로 물을 붓고 다시 30분 삶는다.

(6) 위의 과정을 한 번 더 반복해 총 세 번 밤을 삶는다. 삶을수록 물의 색이 맑아지는 걸 볼 수 있다. 껍질도 매끈해진다.

(7) 이쑤시개를 활용해 밤에서 굵은 심지를 떼어낸다. 밤껍질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자.

(8) 설탕을 넣고 밤이 잠길 정도로 물을 부은 뒤 약한 불로 끓여준다. 물이 절반 정도로 줄어들 때까지 끓이면 된다.

(9) 10분 정도 더 졸여 완성한다. 이때 간장과 럼주를 넣어야 한다. 럼주 대신 맛술로 대체해도 무방하다.

잼, 아이스크림, 케이크까지 무궁무진

시중에는 밤을 활용한 다양한 제품이 나와 있다. 세계에서 밤 제품 생산으로 가장 유명한 프랑스 클레망포지에의 상품들이 대표적이다. 클레망포지에는 1882년 마롱글라세 생산을 시작으로 140년 동안 밤 제품만 만들어왔다. 평균 신제품 출시 주기가 14년인 고집스러운 기업이다.

1885년 출시된 밤잼 ‘크렘드마롱’은 클레망포지에의 대표 제품이다. 프랑스 남부 리옹 지역에서 수확하는 야생 밤을 원료로 사용한다. 클레망포지에는 올해 처음으로 아이스크림을 내놨다.

가을을 맞아 호텔에서도 밤을 활용한 디저트를 선보였다. 웨스틴조선 서울의 ‘라운지앤바’에서는 이달 말까지 ‘마롱 밀크티 빙수’를 판매하고 있다. 얼그레이 향이 느껴지는 밀크티 얼음 위에 부드러운 밤 크림을 얹은 가을 빙수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