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됐던 SPC그룹과 공정거래위원회 간 행정소송이 해를 넘기게 됐다. “SPC의 통행세 등 부당지원행위에 대한 위법 동기를 입증하라”는 재판부의 요구에 공정위가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소송은 SPC를 대상으로 현재 검찰이 벌이는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데다, 사업 수직계열화를 이룬 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위법성에 대한 기준점이 될 수 있어 경제계가 주목하고 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행정6-2부(부장판사 위광하 홍성욱 최봉희)는 전날 열린 공판에서 파리크라상 SPL 비알코리아 샤니 SPC삼립 등 SPC 계열 5개사가 공정위를 상대로 낸 과징금 부과 및 시정명령 취소 소송과 관련, 내년 2월 추가 변론을 하기로 했다.

선고 일정이 미뤄진 데는 “SPC의 계열사 부당지원행위의 동기가 후계 승계인지 입증하라”는 재판부의 ‘석명사항’에 공정위가 답변하지 못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석명이란 판사가 재판에 본질적인 사항이라고 판단하는 내용에 대해 입증을 요구하는 것이다.

공정위는 2020년 7월 SPC에 부당지원 혐의로는 역대 최고액인 64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허영인 회장, 황재복 파리크라상 대표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공정위는 SPC 계열사들이 후계 승계를 목적으로 밀가루 생산 계열사인 밀다원 주식 저가 양도와 ‘통행세’ 등을 통해 414억원을 SPC삼립에 부당지원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공정위가 수혜를 본 것으로 지목한 SPC삼립은 SPC그룹의 유일한 상장사로, 총수와 후계 지분율이 가장 낮은 계열사여서 공정위 논리에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후계 승계를 위해선 2세들이 보유한 비상장사에 일감을 몰아줘 기업가치를 키운 뒤 그룹 주력사의 지분을 매입할 실탄을 마련하는 것이 통상적 수순이다. 법조계에선 파리크라상이 SPC삼립을 지원한 주체면서 SPC삼립의 최대주주로 수혜를 본 대상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공정위의 계열사 부당지원 제재에 모순이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시가총액 6000억~7000억원 규모인 SPC삼립에 몇백억원의 매출이 더해졌다고 승계를 위한 실탄이 마련될지 의문”이라며 “SPC삼립의 가치가 커지면 삼립 최대주주이자 그룹 주력사인 파리크라상(지분율 40.7%)의 가치도 함께 높아져 되레 2세들이 지배력을 강화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공정위는 “다음 기일에 재판부의 석명에 대해 답변할 예정”이라며 “계열사 부당지원 자체가 중요한 사실이며 어떤 동기로 했는지는 법 위반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검찰은 최근 공정위가 SPC의 계열사 부당지원 혐의를 고발한 것과 관련,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달 8일 SPC그룹 본사 및 계열사 압수수색에 이어 이날은 조상호 전 SPC그룹 총괄사장을 소환 조사했다.

하수정/김진성/이지훈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