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경영의 아버지 테일러는 인건비 절감으로 싼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다. 1920년대 산업혁명으로 효율성이 극도로 높아지면서 필요한 노동자가 크게 줄었고, 이는 더 적은 노동인구와 더 많은 실업자를 양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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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중반 미국 산업은 잉여 인력을 해고하고, 남은 직원에게는 엄격하게 보상을 책정했다. 이렇게 절약한 인건비 덕분에 제품 가격을 날로 낮출 수 있었다. 그러나 소득이 줄자 노동자들은 소비할 여력이 없어졌고, 가게마다 재고가 쌓이기 시작했다. 문제를 빠르게 파악한 주인공은 헨리 포드였다. 그는 미국 기업들이 급여를 관대하게 책정하고, 심지어 노동시간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만 차를 구입할 수 있는 소비자 층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하루 8시간을 일하는 방식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시도였다. 다른 기업들은 포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후 정치권의 개입으로 8시간 노동제는 받아들였지만, 임금 인상만큼은 끝까지 고수했다. 소비를 되살린 요인은 임금이 아니었다. 광고였다. 인기 잡지들이 아메리칸드림을 실현하며 살아가는 새로운 남녀상을 지면에 도배하기 시작했다. 불만스러운 소비자를 양산한 것이다. 더 좋고, 더 새로운 것을 스스로 추구하도록 만들었다.

사라지는 일자리

산업혁명으로 인한 자동화의 물결은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다. 물론 전에 없던 고임금 일자리가 새로 생겨나기도 했다. 이런 속도는 1943년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수학자 노버트 위너가 사이버네틱스 이론을 발표하면서 더욱 빨라진다. 그는 기계가 생각하고 학습하고 피드백을 통해 행동방식을 조정하는 기술을 설명했고. 이는 인공지능(AI) 시대의 과학적 기반이 됐다. 그의 이론이 산업현장에서 구현된 것은 1950년대부터다. 수치제어 기술이 공장에 도입됐고, 이후 수십 년 동안 컴퓨터화와 자동화가 빠르게 이뤄졌다. 그 영향은 비숙련 노동자를 시작으로, 숙련 노동, 사무직, 전문직을 차례로 공격했다. 경제의 많은 부분에서 일자리가 사라졌다. 로봇공학과 AI의 발달은 이 같은 추세를 더욱 빠르고 크게 만들었다. 그사이 소비 감소는 더욱 심해졌다. 각국은 소비자 부채를 계속 늘려주는 임시처방을 내렸지만, 소비와 소득의 선순환은 깨진 지 오래였다. 가계부채는 거꾸로 국가 경제의 뇌관이 되고 있다. 1990년대 초 약 8%였던 가구당 저축은 2000년대 1%로 주저앉았다. 미래를 담보로 한 소비는 2000년대 초 극대화됐다. 1997년 주택시장에 도입된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역대급 버블로 변한 것이다. 계약금이나 보증금을 요구하지 않는 대신 시간이 갈수록 이자율이 높아지는 구조 덕분에 수입이나 신용이 미달인 많은 미주택자가 미끼를 물었다. 2008년 거품이 터질 당시 미국의 누적 가계부채는 12조7000억달러, GDP는 14조7000억달러였다.

디지털 전환과 효율성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이런 반복은 끝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미래를 담보로 현재의 소비를 높였다. 2020년 1분기 미국의 누적 가계부채는 14조3000억달러로 2008년 고점보다 1조6000억달러가 늘었다. 로봇공학이나 자동화, AI가 가져다준 효율성 증가에 따른 생산성 향상이 임금 인상이나 주당 노동시간 감소로 이어지지 않는 현상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그 이유를 제러미 리프킨은 그의 책 <회복력 시대>를 통해 ‘단기주의’에서 찾는다. 주주들에게 분기마다 수익 증가를 보여주지 못하면 최고경영자(CEO) 교체라는 칼을 빼들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인건비 절감만큼 단기간에 장부를 좋게 만들 수 있는 요인도 없다.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일각에서는 2030년까지 세계 노동력의 8.5%가 로봇으로 대체될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리프킨은 이들이 가장 지능적인 기술조차 제어할 수 없는 복잡한 관리 분야에 투입될 수 있다면 오히려 일자리는 늘어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생산과 소비로만 짜인 노동에 대한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효율성만을 추구해 모두가 잘살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단 의미다. 외부효과도 세심하게 살필 때 효율성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전의 산업혁명과 달리 디지털 전환이 효율성 향상이라는 목표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