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현의 로그인 e스포츠] 는 게임을 넘어 스포츠, 그리고 문화콘텐츠로 성장하고 있는 e스포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인상 깊었던 경기들은 물론, 궁금했던 뒷이야기 나아가 산업으로서 e스포츠의 미래에 대해 분석합니다.

DRX '제카' 김건우 인터뷰

"롤드컵 우승, 또 해야죠…중요한 건 자만하지 않는 마음" [이주현의 로그인 e스포츠]
2022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은 역대급 서사를 남겼다. 그리고 그 드라마의 주인공은 DRX였다. DRX는 LCK(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 롤드컵 선발전 통과마저 기적이라고 불렸다. 그만큼 국내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스프링 시즌엔 정규리그 4위, 서머 시즌도 6위에 그쳤다. 플레이오프에서도 1라운드에 모두 패배했다. 하지만 선발전을 우여곡절 끝에 뚫어냈다. 이후 롤드컵 기간 내내 기적을 써내려가며 ‘미라클 런’에 성공했고 마침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DRX의 이 같은 기적의 중심에는 롤드컵을 통해 '롤판의 초신성'으로 떠오른 미드 라이너 제카(김건우)가 있었다. 제카는 2002년생으로 2019년 KT 아카데미를 거쳐 김정균 감독에게 발탁돼 2020 시즌 중국리그 LPL 비시 게이밍에서 프로로 데뷔했다. 이후 2021년 김정수 감독에 의해 영입돼 비리비리 게이밍(BLG)에서 활약했다.

2022 시즌 DRX 미드로 영입되며 국내 리그 LCK로 복귀했다.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으나 첫 시즌인 스프링에는 다소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진 못했다. 하지만 서머 시즌부터 팀이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중심을 잡는 단단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선발전에서는 위기의 팀을 여러 번 구해내기도 했다. 결국 롤드컵에서 만개한 제카는 샤오후(리위안하오), 스카웃(이예찬), 쵸비(정지훈)에 이어 결승에서 롤모델로 꼽던 페이커(이상혁) 마저 꺾어내며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첫 출전한 롤드컵에서 우승하며 당당히 로열로더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17일 서울 홍대 근처의 DRX 사옥에서 그와 만나 롤드컵 우승 소감과 다음 행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롤드컵 우승, 또 해야죠…중요한 건 자만하지 않는 마음" [이주현의 로그인 e스포츠]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우승을 다시 한번 축하한다. 지금 기분은 어떤가?

많은 팬분들이 우리의 우승을 예상 못 했듯 우리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만큼 우승의 감동이 컸다. 우승한 후 일주일가량 지났지만 지금도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소위 ‘미라클 런’ 행보 동안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

사실 연습 기간 동안 팀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 성장한다고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대회가 진행되고 8강, 4강 등 한 단계씩 올라가면서 전체적인 폼도 올라오고 기세도 찾았던 거 같다.

-대회 시작 전엔 다른 팀들에 비해 기대를 덜 받았다. 대회가 진행되면서 현장에서 팬들의 반응이 달라진 걸 느낀 순간이 있나?

우리가 상대하는 팀들에 비해 팬들이 적다고 느낀 적이 많았다. 특히 에드워드 게이밍(EDG)과의 8강에서 더 그런 걸 느꼈다. 그래서 4강에서도 젠지 e스포츠를 응원하는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 했는데 2세트, 3세트 이겼을 때 환호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를 응원하는 팬들도 많다는 걸 몸소 느꼈다.

-계속해서 강팀들을 꺾어내며 업셋을 이뤄나가는 데 있어서 중요했던 게 있다면?

혁규형(데프트)이 말한 것처럼 꺾이지 않는 마음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웃음) 다르게 말하면 멘탈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힘든 상황에서도 팀원끼리 서로 믿으면서 역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보통 다전제에서 1세트가 경기를 좌우하는 척도로 여겨진다. 그런데 DRX는 이번 대회 동안 8강, 4강, 결승전까지 1세트를 지고 이겼던 경기가 많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일반적인 경우 당연히 다전제에서 1세트는 매우 중요하다. 이긴 팀이 흐름이나 기세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승전 당시에는 우리 팀이 레드 사이드여서 백픽 측면에서 불리한 면이 있었기 때문에 한번 지더라도 상대 전력을 파악한다는 생각으로 임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팀 내에서 주로 오더를 담당하는 선수가 있는지 궁금하다.

특정 선수가 오더를 맡는다기보다는 선수 각자가 자신의 챔피언이나 아이템 상황을 보면서 한타 각을 서로서로 공유하는 식으로 했던 것 같다.

-8강에서 스카웃, 4강 쵸비, 결승에선 페이커 등 기라성 같은 선수들을 많이 상대했는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했나?

평소에 제일 잘한다고 생각했던 선수들인 만큼 오히려 겁먹지 않고 더 세게 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의 플레이에만 집중했다.

-제카 선수가 생각하는 본인만의 강점이 있다면

다른 선수들에게 밀리지 않는 강한 라인전과 게임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페이커가 롤모델이라고 알고 있다. 결승에서 그를 만나 넘어서게 됐는데 어떤 생각이 들었나?

우선 롤모델인 선수를 꺾어서 기뻤다. 하지만 사실 우승했던 그 순간에는 그런 것보다 같이 고생한 팀원들과 응원해 주신 팬분들 생각이 더 많이 났던 것 같다.

-이번 대회 동안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면

아무래도 8강 EDG와의 경기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우리가 2세트를 되게 아깝게 지지 않았나? 그래서 더 멘탈적인 부분에서도 힘들었던 것 같다.

-우승 스킨으로 8강에서 4연속 솔킬 등 활약도 있어서 사일러스를 예상한 사람이 많았다. 아칼리를 고른 이유가 궁금하다.

어떤 챔피언을 고를지 하루에 10번씩 고민했다. 선수단 내에서 투표도 했을 정도다. (웃음) 이유는 아칼리가 일단 사일러스보다 스킬 이펙트가 더 화려하다. 사일러스는 궁도 없는 스킬이지 않나? 어렵게 우승한 만큼 DRX의 색깔 같은 걸 더 잘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아칼리를 골랐다.

-함께 우승한 DRX 선수단을 제외하고 함께 해보고 싶은 선수가 있나?

옛날에는 잘하는 선수들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지금은 우리가 우승했으니 잘하는 선수들이 우리 팀에 있다고 생각해서 따로 생각 해보지 않았다.

-클로저(이주현), 빅라(이대광) 선수 등 함께 차세대 미드로 꼽히는 선수들과 교류가 있나?

따로 교류는 없다. 다만 아무래도 같이 자주 언급되다 보니 LCK에서 경기할 때 많이 견제가 됐다. (웃음)

-김정균(꼬마), 김정수, 김상수(쏭) 감독 등 롤드컵 우승 감독들을 한 번씩 겪어봤다. 각 감독들 간의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감독님들마다 성향이 다 다르다. 차이점은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같이 해보니 이분들이 왜 우승했는지는 확실히 알 거 같다. 게임 내부적으로 잘 보는 건 당연하고 외적으로도 선수들을 잘 챙기면서 믿음을 주기 때문인 것 같다.

-구체적으로 감독들에게 신뢰를 느낀 사례가 있나?

이번 롤드컵에서도 김상수(쏭) 감독님이 밴픽 같은 부분에서도 잘 안되면 본인 책임이라며 선수들의 부담을 덜어줬다. 덕분에 더 자신감 있게 플레이할 수 있었다.

-당분간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안다. 비시즌 기간 동안 계획이 있다면

대회가 끝나고 할 게 없어서 한동안 다른 게임을 해봤다. 발로란트 등 FPS 게임도 해봤는데 나랑 잘 안 맞는거 같다.(웃음) 그냥 롤을 계속할 거 같다.

-조심스러운 질문이지만 계약기간이 올해 까지다. 다음 행보 정해진 게 있나?

아직 내부적으로 서로 이야기 중인 단계다. 아쉽게도 지금은 밝힐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다.

-커리어 초창기에 모든 선수들의 꿈인 롤드컵 우승을 달성했는데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하다.

아마 모든 롤 프로게이머들의 목표는 롤드컵 우승일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우승하고 보니 프로게이머 선수라는 직업 자체가 매년이 증명의 연속이다. 우승 한번 했다고 자만하면 안 된다고 다짐했다. 앞으로 두 번째, 세 번째 롤드컵 우승을 더 해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이주현 기자 2Ju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