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준의 인문학과 경제] 닥쳐온 겨울…에너지 공기업의 활동을 許하라
19세기 중반, 섬나라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다. 그 비결은 수출과 제조업의 결합이었다. 영국 공장들은 가격경쟁력이 뛰어난 면방직 제품을 대량 생산해 전 세계에 팔았다. 18세기에 세계무역 해상권을 장악해놓았고, 생산 효율성을 극대화한 증기기관 기술력을 갖춘 덕분이기도 하지만 값싼 에너지가 없다면 전혀 가능치 않은 일이었다. 증기기관의 초기 형태는 이미 프랑스와 영국에서 17세기 말에 등장했다. 영국 중북부 지역에 광범위하게 석탄이 매장돼 있지 않았다면 아무리 근사한 증기기관을 발명했다고 해도 산업 생산에 기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영국은 이후 석탄에서 석유로 에너지원이 바뀌는 과정에서 세계 제국을 경영하고 있던 이점을 이용해 석유 공급망을 장악했다. 1907년 인도네시아 식민지에서 석유를 채굴하던 네덜란드 회사와 합작한 셸(Shell), 1909년 이란 유전 개발을 위해 설립한 ‘앵글로 페르시아 석유 회사’의 후신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은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의 주요 석유 ‘메이저’에 속한다.

조상을 잘 둔 덕에 영국인들은 올해 에너지 걱정 없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듯하다. 현재 우크라이나를 내세워 러시아와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영국 등 서방국가에서 천연가스값은 무섭게 치솟고 있다. 영국의 서민들은 습하고 일조량이 적은 영국 겨울을 어떻게 견딜지, 식료품값을 아껴 난방비로 써야 할지 고민에 빠져 있다. 반면 셸과 BP의 영업실적은 날로 개선되고 주가도 오르고 있다. 이들은 영국계 에너지 기업이지만, 주주들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 추위에 떠는 ‘동포’들을 위해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천연가스와 휘발유를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는 조직은 아니다.

21세기 초, 제조업과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의 땅과 바다에서 에너지 자원은 나오지 않는다. 이런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 나라의 산업화를 설계하고 이끈 이들은 에너지 공기업을 세워 경제 도약의 발판을 확보했다. 1961년 기존 전기회사 세 곳을 통합해 한국전력공사가 출범했다. 1962년에는 미국 걸프사와 합작해 대한석유공사가 태어났다. 1972년 소양강 댐, 1974년 팔당 댐이 완공돼 수력발전소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1978년에 고리 원자력 발전소가 최초로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1979년에는 한국석유공사가 출범했다. 각 가정의 난방원료를 책임지는 가스공사는 1983년에 태어났다.

한국의 에너지 공기업은 국가와 민족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들의 존립과 원활한 활동은 자원 빈국 대한민국의 목숨과 직결된다. 에너지 공기업을 민영화해 주주의 이익에 희생시키는 것은 안 될 일이다. 또한 그 어떤 정치 세력도 이들의 활동을 방해하고 그 역할을 왜곡할 권리가 없다. 원전을 멈춰 세워 전기 생산을 못 하게 하고, 에너지 제공이 본업인 공기업에 대학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교육 사업을 시키는 그러한 황당한 일은 다시는 벌어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세계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에너지 공기업들의 경영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한국가스공사나 한국전력공사는 셸이나 BP가 아니기에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국내 소비자에게 가능한 한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가스와 전기를 공급하려 애쓸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겨울철, 수출로 먹고사는 이 나라에 거주하며 난방의 혜택을 조금이라도 누리는 모든 이는 에너지 공기업을 설립한 선각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이들 공기업을 공익에 맞게 운영하느라 애쓰고 있는 이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