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곧 대학생"…뒤늦은 여고생활 끝 수능 치른 만학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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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여고 3학년 반장 김근봉·권영순 씨
"어렸을 때 아파서 학교에 다니지 못한 게 한이 됐어. 공부에 굶주렸지. 그런데 이렇게 뒤늦게 여고 시절도 보내고 수능까지 치르니까 마치 꿈꾸는 것 같지."
일성여자고등학교 3학년 1반 김근봉(68)씨는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면서도 생애 첫 수능의 떨림과 흥분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했다.
성인 여성을 위한 교육기관인 일성여고에서 반장을 맡은 그는 뒤늦은 공부 끝에 지난 17일 꿈에 그리던 수능까지 치러냈다.
김씨는 "20대부터 80대까지 모인 반 친구들이 과목별 '꿀팁'을 공유하며 서로 살뜰하게 챙겼다"며 "그 덕에 전교에서 가장 많은 20명이 수능에 응시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가족 역시 아내와 엄마의 뒤늦은 배움을 열렬히 지지했다고 한다.
그는 "딸이 그동안 찾아주지 못한 엄마 인생을 스스로 찾는 걸 보니 자랑스럽다고 하더라. 정말 뭉클했다"면서 "남편도 수능 날 '차 조심하고, 잘 치르고 와'라고 격려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김씨는 이미 명지전문대 사회복지학과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그는 "주변 노인이나 소년·소녀 가장에게 김치와 쌀 같은 걸 전하며 작은 도움을 줬다면 이제는 전문적으로 이웃을 돕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면서 "나중에는 가족과 함께 사회복지기업을 운영하고 싶다"며 웃었다.
같은 학교 4반 반장 권영순(58)씨 역시 마흔 살 어린 학생들과 같은 고사장에서 수능 시험을 치렀다.
그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조금 아쉬움은 있지만 열심히 한 만큼 후회 없이 시험을 보고 왔다"며 시원섭섭한 마음을 털어놨다.
권씨는 대학 두 곳 사회복지학과에 원서를 냈다.
노인복지를 공부해 올해 100세인 시어머니를 조금이라도 더 잘 보살피기 위해서다.
어릴 적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던 권씨는 남들이 공부할 나이에 미용을 배우면서 학교에 다니는 오빠들 뒷바라지를 했다.
그는 늦은 나이에 학창생활을 하며 가장 좋은 점 가운데 하나가 "잊힌 이름을 되찾게 된 것"이라고 했다.
부럽기만 했던 '여고 동창'이 생긴 점도 큰 변화다.
권씨는 "결혼하고 누구 엄마, 며느리로만 불렸지, 내 이름은 사라졌다"며 "학교에 다니면서는 모두 나를 '영순 씨'라고 부르는데, 쑥스럽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다"며 수줍어했다.
권씨는 무엇보다 공부를 통해 '희망'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몰랐던 사실들을 하나씩 알게 되면서 마치 동굴 속에서 빠져나온 느낌이라고 했다.
권씨는 "예전에는 어디를 가도 실수할까 봐 말을 잘 안 했지만, 학교에 다닌 후로는 내 주장도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뿌듯해했다.
/연합뉴스
일성여자고등학교 3학년 1반 김근봉(68)씨는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면서도 생애 첫 수능의 떨림과 흥분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했다.
성인 여성을 위한 교육기관인 일성여고에서 반장을 맡은 그는 뒤늦은 공부 끝에 지난 17일 꿈에 그리던 수능까지 치러냈다.
김씨는 "20대부터 80대까지 모인 반 친구들이 과목별 '꿀팁'을 공유하며 서로 살뜰하게 챙겼다"며 "그 덕에 전교에서 가장 많은 20명이 수능에 응시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가족 역시 아내와 엄마의 뒤늦은 배움을 열렬히 지지했다고 한다.
그는 "딸이 그동안 찾아주지 못한 엄마 인생을 스스로 찾는 걸 보니 자랑스럽다고 하더라. 정말 뭉클했다"면서 "남편도 수능 날 '차 조심하고, 잘 치르고 와'라고 격려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김씨는 이미 명지전문대 사회복지학과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그는 "주변 노인이나 소년·소녀 가장에게 김치와 쌀 같은 걸 전하며 작은 도움을 줬다면 이제는 전문적으로 이웃을 돕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면서 "나중에는 가족과 함께 사회복지기업을 운영하고 싶다"며 웃었다.
같은 학교 4반 반장 권영순(58)씨 역시 마흔 살 어린 학생들과 같은 고사장에서 수능 시험을 치렀다.
그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조금 아쉬움은 있지만 열심히 한 만큼 후회 없이 시험을 보고 왔다"며 시원섭섭한 마음을 털어놨다.
권씨는 대학 두 곳 사회복지학과에 원서를 냈다.
노인복지를 공부해 올해 100세인 시어머니를 조금이라도 더 잘 보살피기 위해서다.
어릴 적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던 권씨는 남들이 공부할 나이에 미용을 배우면서 학교에 다니는 오빠들 뒷바라지를 했다.
그는 늦은 나이에 학창생활을 하며 가장 좋은 점 가운데 하나가 "잊힌 이름을 되찾게 된 것"이라고 했다.
부럽기만 했던 '여고 동창'이 생긴 점도 큰 변화다.
권씨는 "결혼하고 누구 엄마, 며느리로만 불렸지, 내 이름은 사라졌다"며 "학교에 다니면서는 모두 나를 '영순 씨'라고 부르는데, 쑥스럽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다"며 수줍어했다.
권씨는 무엇보다 공부를 통해 '희망'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몰랐던 사실들을 하나씩 알게 되면서 마치 동굴 속에서 빠져나온 느낌이라고 했다.
권씨는 "예전에는 어디를 가도 실수할까 봐 말을 잘 안 했지만, 학교에 다닌 후로는 내 주장도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뿌듯해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