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실과 피해 기금 합의했지만…COP27이 남긴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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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열린 COP27에서 기후 변화로 인해 손실을 입은 취약 개발도상국들을 지원하는 ‘손실과 피해’ 기금 조성이 타결됐다. 이번 총회에서는 2015년 파리협정의 '1.5도'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감축, 적응, 손실과 피해, 재원, 기술, 역량 배양 등 주요 요소별로 논의가 이뤄졌다
[한경ESG] 이슈 브리핑
지난 11월 6일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개막한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기후변화로 손실을 입은 취약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 기금 조성이 타결됐다. 개발도상국과 비정부기구(NGO) 단체들은 “수십 년 이어진 싸움을 끝낸 역사적 합의”라며 환영의 의사를 표시하고 나섰다. 다만 구체적 재정 마련 방안이나 기금 운용에 대한 논의는 미뤄진 데다 정작 탄소감축 등 이슈에 대해서는 진전이 없었다는 날 선 평가도 제기된다.
COP(Conference Of the Parties)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가입국이 모여 기후 위기에 관해 논의하는 자리로 1995년 처음 시작됐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아래로 낮추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은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도 COP 합의를 통해 탄생했다.
올해 COP27은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불참을 선언하는 등 다소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난해 COP26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채 개막했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에너지 대란과 인플레이션 탓에 COP27에서 의미 있는 결과 도출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했다. 실제로 일부 아프리카 국가는 에너지 빈곤을 막기 위한 화석연료 개발을 주장하고 나서기도 했다.
극적으로 합의한 ‘손실과 피해’ 기금
이번 총회에서는 2015년 파리협약의 ‘1.5℃’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감축’, ‘적응’, ‘손실과 피해’, ‘재원’, ‘기술’, ‘역량 배양’ 등 주요 요소별로 논의가 이뤄졌다.
처음 정식 의제로 채택된 손실과 피해 보상 문제는 총회 내내 최대 화두였다. 이는 기후변화에 책임을 지닌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의 피해를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지난 7월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기는 대홍수로 17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파키스탄과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가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한 카리브해, 남태평양 섬나라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COP15에서는 선진국이 민간과 공공기금을 합쳐 매년 1000억 달러(약 118조원) 기금을 조성하기로 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목표 금액을 충족한 적이 없다는 것이 개도국의 주장이었다.
결국 COP27에서는 약속 이행을 요구하는 개도국과 이를 부담스러워하는 선진국 간 의견 충돌이 반복됐다. 자칫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게 될 우려에 선진국들은 소극적 자세를 취했지만 막바지에 열띤 논의가 이어졌고, 결국 폐막일을 이틀 넘긴 20일 새벽에 극적으로 합의안이 도출됐다.
협상 과정을 지켜본 비정부기구(NGO) 단체와 개발도상국들은 “우리의 기본적 요구가 수용된 중요한 성과”라고 강조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충분하지는 않지만, 무너진 신뢰를 재건하기 위해 절실히 필요한 신호”라며 반색을 표했다.
다만 기금 성격, 재원 마련 방안, 구체적 운영 방식은 여전히 과제로 남았다. 개도국들은 줄곧 손실과 피해 기금이 보상 성격을 띠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선진국들이 강력하게 반대했고, 결국 이번 합의문에는 ‘보상’이라는 개념 대신 손실과 피해 ‘복구’에 초점을 둔 대응 기금 설치에 그쳤다. 세계 탄소배출량 2위인 미국의 조 바이든 정부의 고위 관계자도 CNN 등과 인터뷰에서 “(재원 마련에 대한) 법적 의무나 보상금 조항을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환경부도 “기금의 상세한 내용과 절차 및 운영 방안은 향후 준비위원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라며 “논의 과정에서 개도국들이 ‘보상’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이번에 합의된 사항은 어디까지나 손실과 피해 복구 기금”이라고 부연했다.
이에 따라 선진국-개도국 인사로 구성된 준비위원회를 설립해 ▲기금의 제도적 장치 ▲기존 재원 확장 방안 등에 대한 논의를 내년까지 지속한다. 결국 구체적 논의는 다음 COP에서나 결론이 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국에는 어떤 영향이 있나
이번 합의에도 불구하고 손실과 피해 부문에서 한국이 당장 재정 부담국으로서 의무를 지거나 비용을 지출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 관계자는 “손실과 피해 부문에서 재정 부담을 지는 선진국은 1992년 유엔 기후변화협약과 2015년 파리협약을 기반으로 결정한다”며 “기후변화협약에 따르면 한국은 선진국이 아니라 당장 재정 부담 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현재 자발적 재정 지원만 하고 있다.
다만 기후변화협약이 30년 전 기준이다 보니 기존 선진국들은 이후에 발전을 거듭한 중국, 사우디 같은 신흥국도 재정 부담에 동참하라고 요구했다. 중국은 OECD 기준으로 개발도상국이지만, 세계 탄소배출량 1위 국가다.
이번 COP27에서는 중국 등의 강력한 저항으로 재정 부담 요구가 수용되지 않았지만, 이후 준비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신흥국에 대한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 관계자는 “중국이 재정 부담을 지게 되면 한국도 지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손실과 보상 외 재원(finance) 부문에서는 한국도 재정 부담 의무를 진다. 선진국들은 2025년까지 연간 1000억 달러 조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기로 재차 확인했다. 이 부문에서는 한국도 선진국의 일원으로서 일반적 부담을 지게 된다.
또 이번 COP27에서는 2015년 파리협약에서 언급된 지구 온도 상승폭 1.5℃ 제한 목표와 지난해 글래스고 총회에서 합의한 온실가스 저감 장치가 미비한 석탄화력발전의 단계적 축소도 유지하기로 했다. 다만 석유·천연가스 등 모든 종류의 화석연료 사용을 감축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구온난화 문제 해결을 위해 시급한 탄소감축 추진에는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국내 산업계가 탄소배출과 관련해 추가로 지는 부담이나 규제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이번 총회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국 및 관련 기구 직위(132석)에 대한 선거가 시행됐으며, 한국은 적응기금이사회(AFB) 이사 재임과 재정상설위원회(SCF) 위원 진출이 확정됐다.
곽용희 한국경제 기자 kyh@hankyung.com
COP(Conference Of the Parties)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가입국이 모여 기후 위기에 관해 논의하는 자리로 1995년 처음 시작됐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아래로 낮추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은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도 COP 합의를 통해 탄생했다.
올해 COP27은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불참을 선언하는 등 다소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난해 COP26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채 개막했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에너지 대란과 인플레이션 탓에 COP27에서 의미 있는 결과 도출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했다. 실제로 일부 아프리카 국가는 에너지 빈곤을 막기 위한 화석연료 개발을 주장하고 나서기도 했다.
극적으로 합의한 ‘손실과 피해’ 기금
이번 총회에서는 2015년 파리협약의 ‘1.5℃’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감축’, ‘적응’, ‘손실과 피해’, ‘재원’, ‘기술’, ‘역량 배양’ 등 주요 요소별로 논의가 이뤄졌다.
처음 정식 의제로 채택된 손실과 피해 보상 문제는 총회 내내 최대 화두였다. 이는 기후변화에 책임을 지닌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의 피해를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지난 7월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기는 대홍수로 17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파키스탄과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가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한 카리브해, 남태평양 섬나라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COP15에서는 선진국이 민간과 공공기금을 합쳐 매년 1000억 달러(약 118조원) 기금을 조성하기로 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목표 금액을 충족한 적이 없다는 것이 개도국의 주장이었다.
결국 COP27에서는 약속 이행을 요구하는 개도국과 이를 부담스러워하는 선진국 간 의견 충돌이 반복됐다. 자칫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게 될 우려에 선진국들은 소극적 자세를 취했지만 막바지에 열띤 논의가 이어졌고, 결국 폐막일을 이틀 넘긴 20일 새벽에 극적으로 합의안이 도출됐다.
협상 과정을 지켜본 비정부기구(NGO) 단체와 개발도상국들은 “우리의 기본적 요구가 수용된 중요한 성과”라고 강조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충분하지는 않지만, 무너진 신뢰를 재건하기 위해 절실히 필요한 신호”라며 반색을 표했다.
다만 기금 성격, 재원 마련 방안, 구체적 운영 방식은 여전히 과제로 남았다. 개도국들은 줄곧 손실과 피해 기금이 보상 성격을 띠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선진국들이 강력하게 반대했고, 결국 이번 합의문에는 ‘보상’이라는 개념 대신 손실과 피해 ‘복구’에 초점을 둔 대응 기금 설치에 그쳤다. 세계 탄소배출량 2위인 미국의 조 바이든 정부의 고위 관계자도 CNN 등과 인터뷰에서 “(재원 마련에 대한) 법적 의무나 보상금 조항을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환경부도 “기금의 상세한 내용과 절차 및 운영 방안은 향후 준비위원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라며 “논의 과정에서 개도국들이 ‘보상’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이번에 합의된 사항은 어디까지나 손실과 피해 복구 기금”이라고 부연했다.
이에 따라 선진국-개도국 인사로 구성된 준비위원회를 설립해 ▲기금의 제도적 장치 ▲기존 재원 확장 방안 등에 대한 논의를 내년까지 지속한다. 결국 구체적 논의는 다음 COP에서나 결론이 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국에는 어떤 영향이 있나
이번 합의에도 불구하고 손실과 피해 부문에서 한국이 당장 재정 부담국으로서 의무를 지거나 비용을 지출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 관계자는 “손실과 피해 부문에서 재정 부담을 지는 선진국은 1992년 유엔 기후변화협약과 2015년 파리협약을 기반으로 결정한다”며 “기후변화협약에 따르면 한국은 선진국이 아니라 당장 재정 부담 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현재 자발적 재정 지원만 하고 있다.
다만 기후변화협약이 30년 전 기준이다 보니 기존 선진국들은 이후에 발전을 거듭한 중국, 사우디 같은 신흥국도 재정 부담에 동참하라고 요구했다. 중국은 OECD 기준으로 개발도상국이지만, 세계 탄소배출량 1위 국가다.
이번 COP27에서는 중국 등의 강력한 저항으로 재정 부담 요구가 수용되지 않았지만, 이후 준비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신흥국에 대한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 관계자는 “중국이 재정 부담을 지게 되면 한국도 지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손실과 보상 외 재원(finance) 부문에서는 한국도 재정 부담 의무를 진다. 선진국들은 2025년까지 연간 1000억 달러 조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기로 재차 확인했다. 이 부문에서는 한국도 선진국의 일원으로서 일반적 부담을 지게 된다.
또 이번 COP27에서는 2015년 파리협약에서 언급된 지구 온도 상승폭 1.5℃ 제한 목표와 지난해 글래스고 총회에서 합의한 온실가스 저감 장치가 미비한 석탄화력발전의 단계적 축소도 유지하기로 했다. 다만 석유·천연가스 등 모든 종류의 화석연료 사용을 감축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구온난화 문제 해결을 위해 시급한 탄소감축 추진에는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국내 산업계가 탄소배출과 관련해 추가로 지는 부담이나 규제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이번 총회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국 및 관련 기구 직위(132석)에 대한 선거가 시행됐으며, 한국은 적응기금이사회(AFB) 이사 재임과 재정상설위원회(SCF) 위원 진출이 확정됐다.
곽용희 한국경제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