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10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지난달보다 4% 넘게 하락했다. 에너지 가격이 대폭 하락한 것이 주 원인이다. 미국에 이어 유럽에서도 인플레이션 정점론이 부상하며 12월 유럽중앙은행(ECB)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21일(현지시간) 독일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10월 PPI는 전월 대비 4.2% 하락했다. 지난달보다 하락한 것은 2020년 5월 이후 약 2년 5개월 만에 처음이다. CNBC에 따르면 상승세를 점쳤던 시장 추정치(0.9%)를 크게 밑돌았다. 전년 같은 달 대비 상승률도 34.5%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8월 및 9월 상승률(45.8%)보다 둔화됐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중단 위기에도 에너지 가격이 지난달보다 10.4% 급락했다.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와 따뜻한 겨울 날씨가 맞물린 영향이다. 특히 전기요금과 천연가스 가격의 하락폭이 컸다. 전체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전기 가격은 9월 대비 16.9%, 천연가스는 9% 떨어졌다. 이달 들어서도 국제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안정세인 만큼 PPI가 11월 반등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도매가격인 PPI가 꺾이면서 최종 가격인 소비자물가 상승세가 완화될 거란 기대도 커지고 있다. 10월 독일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0.4%로 사상 최고치였다. 독일 은행 LBBW는 10월 PPI를 두고 “물가 압력이 완화될 거라는 징후를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때문에 다음달 15일 열리는 통화정책회의에서 ECB가 3연속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한 번에 0.75%포인트 인상) 대신 빅스텝(한 번에 0.5%포인트 인상)으로 인상폭을 줄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독일이 유로존 최대 경제 대국인 만큼 독일 물가가 꺾이면 유로존 물가상승세도 둔화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ECB는 지난 7월 빅스텝을 시작으로 9월과 10월 두 차례 연속으로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했다. 현재 ECB 기준금리는 2.0%다.

다만 신중론도 여전하다. 독일 은행 코메르츠방크의 랄프 솔벤 수석 경제학자는 “10월 독일 PPI로 소비자물가도 곧 정점에 도달할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면서도 “그렇다고 인플레이션이 끝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독일 물가상승률이 내년 봄에나 정점을 지날 것이며 내년 내내 ECB 목표치인 2%를 웃돌 것으로 전망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