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조합장 직무집행 정지…"비밀투표 원칙 위배"
기표 결과 사진 찍어 선관위원에 문자 제출…법원 "무효"
투표용지에 기표한 뒤 사진 촬영을 해 선거관리위원에게 보내는 방식은 비밀투표 원칙에 반해 무효라는 법원 결정이 나왔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1부(전보성 부장판사)는 조합원 A씨가 서울 서초구의 한 주택 재건축 정비사업 조합을 상대로 낸 조합장 직무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최근 일부 받아들였다.

조합은 올해 3월 조합장 선출을 위한 정기총회를 열기로 하고, 2월 28일 조합원들에게 투표용지(서면결의서)를 나눠줬다.

조합원은 용지를 직접 제출하거나 우편·팩스로 보낼 수 있었고, 투표용지에 기표한 뒤 사진으로 찍어 조합 선거관리위원회에 문자로 제출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런데 총회 당일 오전, 후보 A씨가 조합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 뒤 후보직을 사퇴했다.

그는 메시지에서 "표가 분산돼 비상대책위원회 출신이 조합장이 될 수도 있어 우려하는 조합원들이 많다"며 "내게 투표한 조합원들은 총회에 참석해 서면결의서 철회 의사를 밝히고, 현장 투표용지를 받아 (다른 후보) B씨를 찍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따라 서면결의서를 제출한 1천922명 중 198명이 철회 의사를 밝히고 직접 투표했고, 그 결과 B씨가 조합장으로 당선됐다.

2위와 격차는 100표였다.

법원은 이 투표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시정비법)을 위반해 무효라고 봤다.

도시정비법상 선거는 무기명 비밀투표로 진행해야 하는데, 선거관리위원이 문자로 서면결의서를 제출받고 이를 인쇄해 보관하면 기표내용이 사전 집계돼 비밀투표가 아니라는 취지다.

재판부는 "조합원 신원의 비밀이 보장되지 않으면 회유·외압이 발생할 수 있고, 서면결의를 철회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총회 직전에 A씨가 조합장 후보에서 돌연 사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며 "기존 조합장으로서 기표 결과를 미리 파악하고 있던 B씨가 A씨와 연락해 선거에 개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심각한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당선된 조합장 B씨의 직무 집행을 일시적으로 정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