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새로 단장한 청자실 23일 공개…'명품 청자'로 꾸민 공간 마련
중요 가마터 출토 조각 등 250여 점 선보여…"한국 美 보여줄 대표 기준 되길"
고려가 완성한 파란 꽃…은은하고 맑은 '고려비색'에 빠지다(종합)
어둠이 짙게 깔린 공간에 음악이 고요히 흐른다.

한 걸음 내딛자 오묘하면서도 찬란한 빛의 형상이 들어온다.

연꽃 위에 거북이가 앉아 있는가 하면, 하늘로 올라가려는 용의 모습도 있다.

약 150㎡ 규모의 방. 식물과 동물 모양으로 빚은 상형 청자 18점이 은은하면서도 맑은 하늘빛을 뽐내며 관람객을 맞이한다.

고려를 대표하는 '비색'(翡色)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인 고려청자의 참모습을 보여주고자 약 1년에 걸쳐 새로 단장한 청자실을 22일 공개했다.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청자실 재개관을 하루 앞두고 열린 언론 공개회에서 "청자는 우리 전통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라며 "청자의 본 모습을 느낄 수 있도록 (전시실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상설전시관 3층에 있는 청자실은 말 그대로 고려청자의 '모든 것'을 다뤘다.

국보로 지정된 '청자 참외모양 병', '청자 음각 연꽃무늬 매병' 등을 비롯해 국보 12점과 보물 12점 등 총 250여 점의 유물을 통해 청자가 지닌 독특한 아름다움을 전한다.

고려가 완성한 파란 꽃…은은하고 맑은 '고려비색'에 빠지다(종합)
전시실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건 비색 청자다.

고려는 중국의 자기 제작 기술을 받아들인 뒤 10세기 무렵 청자와 백자를 만들어냈다.

특히 12세기에는 은은한 비취색을 띠는 비색 청자를 완성했으며 다양한 모양의 상형 청자도 제작했다.

1123년 고려를 찾은 송나라 사신 서긍(1091∼1153)이 남긴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송나라 청자의 색과 구별하기 위해 고려청자의 색을 '비색'이라 불렀다고 돼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혜곡 최순우 선생은 고려청자의 비색을 '비가 개고 안개가 걷히면 먼 산마루 위에 담담하고 갓 맑은 하늘빛'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강경남 학예연구사는 "중국의 청자는 유약층이 두꺼워 색이 탁해 보일 수 있지만, 고려청자는 우리 미감에 맞게 기포 층이 가득 차 빛이 산란하며 색을 낸다.

고려 장인이 기울인 노력의 결정체"라고 말했다.

청자실 가운데에 있는 '고려비색'은 '색'(색깔)과 '형'(형태)에 집중한 공간이다.

12세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 '청자 사자모양 향로' 등 국보 5점과 보물 3점 등 총 18점을 엄선한 이곳은 다른 전시실보다 어둡다.

고려가 완성한 파란 꽃…은은하고 맑은 '고려비색'에 빠지다(종합)
천장의 조명은 켜지 않았고, 장식장에 놓인 국보급 청자에는 작은 조명 2개만 비출 뿐이다.

그러나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는 여러 겹의 꽃잎으로 싸여있는 향로 몸체는 물론, 이를 등에 지고 있는 토끼 세 마리까지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

맑은 하늘빛 그대로다.

강 학예연구사는 "고려청자의 비색은 사실 태양 아래에서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박물관이라는 실내 공간에서 전시하는 특성상 가장 온전하게, 또 제대로 색을 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프로듀서인 다니엘 카펠리앙이 작곡한 음악 '블루 셀라돈'(Blue Celadon)은 전시 공간을 은은하게 채우며 관람객들이 '명품' 청자에 집중하도록 돕는다.

청자실에서는 이 밖에도 청자 제작의 시작부터 끝까지 다양한 부분을 조명한다.

초기 자기 제작 기술을 엿볼 수 있는 경기 시흥시 방산동 가마터 출토 조각, 고려 제17대 임금인 인종(재위 1122∼1146)의 무덤에서 나왔다고 전해지는 각종 공예품 등이 관람객의 시선을 끈다.

홈을 파거나 무늬를 새기고 그 속에 금, 은, 자개 등 다른 재질을 넣어 무늬를 도드라지게 하는 상감(象嵌) 기법을 활용해 화려함을 더한 청자 유물도 다수 확인할 수 있다.

고려가 완성한 파란 꽃…은은하고 맑은 '고려비색'에 빠지다(종합)
그간 청자실에서 보여주지 않던 청자 조각 등을 활용한 점은 작지만 큰 변화다.

예를 들어 전북 부안 유천리 가마터의 경우, 이곳에서 만들어진 청자는 현재 완전한 형태가 전해지지 않아 더욱 가치가 있다.

청자 조각에는 파초잎에서 쉬는 두꺼비, 왜가리가 노니는 물가 풍경 등이 묘사돼 있어 눈여겨 볼 만하다.

강 학예연구사는 "기존에는 박물관이 소장한 최고급 명품 청자 위주로 보여줬다면 이번에는 깨지거나 완전하지 않은 형태도 다뤘다"며 "파란 꽃으로 화려하게 꽃피운 고려청자를 다각도로 감상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점자 안내 지도, 촉각 전시품 등을 함께 설치해 취약계층의 접근성도 높였다.

이애령 미술부장은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청자의 반사 빛에 최대한 근접하려고 노력했다"며 "한국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대표 기준으로 자리매김하고 싶다"고 바랐다.

새로 바뀐 청자실과 '고려비색' 공간은 23일부터 만날 수 있다.

고려가 완성한 파란 꽃…은은하고 맑은 '고려비색'에 빠지다(종합)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