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자금난을 겪는 한국전력에 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을 통해 연말까지 2조원을 수혈하기로 했다. 채권시장에서 한전채 발행이 사실상 어렵게 되자, 시중은행을 긴급 구원 투수로 내세운 것. 한때 우량 공기업의 대명사였던 한전이 어쩌다 채권시장과 시중은행 문 앞을 전전하는 신세로 전락했는지 딱할 뿐이다.

이유는 다 아는 그대로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강행을 정당화하기 위해 에너지 가격 상승 속에서도 전기요금을 5년 동안 꽁꽁 묶었다. 그 결과 전력을 판매하면 할수록 적자가 커지는 역(逆)마진 구조가 고착화했다. 한전의 현 경영 상태는 그야말로 최악이다. 적립금과 자본금을 헐어 쓰면서도 166조원에 달하는 누적 채무와 적자 때문에 한 해 30조원 가까운 채권을 발행하지 않으면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다.

올해는 그럭저럭 넘기더라도 앞으로가 더 문제다. 내년 한전채 발행 한도는 6조4000억원이다. 그러나 현재 같은 적자구조라면 내년 운영자금 부족분은 최소 4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당장 30조원 넘는 돈을 메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치권은 한전채 발행 한도를 현재 자본금(적립금 포함) 대비 두 배에서 열 배까지 늘리는 관련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땜질 처방이다. 가뜩이나 한전채가 채권시장 돈줄을 말려 한계기업과 금융회사의 연쇄 부도 가능성을 키우는 상황에서 한전채 발행을 더 늘리기는 어렵다. 국가 신용도에도 악영향이 우려된다.

결국 전기요금 현실화와 에너지 절약 등 정공법 외엔 답이 없다. 어렵지만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이미 전철을 밟고 있는 일본이나 유럽 여러 나라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한전이 먼저 인력 감축이나 자산 매각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나서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