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제품 설치기사는 근로자가 아니라 자영업자이므로 퇴직금을 받을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회사의 지시, 부기사 고용 여부 등을 두고 법원의 판단이 엇갈리고 있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1 민사부(재판장 정봉기)는 지난 17일 가전제품 설치 기사 15명이 주식회사 엘엑스(LX)판토스를 대상으로 청구한 퇴직금 등 청구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했다. 엘엑스판토스는 LG전자 가전제품을 고객 집에 배송·설치하는 회사다. 회사는 ‘개인사업자 모집 공고’를 내고 기사를 모집해 왔다. 기사들은 회사와 업무 위탁계약을 체결하고 세부 담당 지역은 기사들끼리 협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결정해왔다.

기사들은 모바일 단말기(PDA)를 통해 회사 시스템에 접속해 당일 배송 설치 물량 정보를 전달받는 점 등을 근거로 “자신들이 실제로는 종속적 지위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자”라고 주장했다.

법원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업무 장소를 회사가 임의 지정·변경하는 일이 없었고, 근태를 확인하지도 않았다”며 “PDA 입력도 위임 업무 처리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 제공이었다”고 했다. 재판부는 설치기사들의 자영업자적 요소가 더 크다고 봤다. 법원은 “설치기사들은 여러 명의 부기사를 고용해 더 많은 배송 물량을 받는 등 독립적으로 사업을 영위했다”고 판단했다. 이 밖에 △회사의 취업규칙, 복무규정 적용을 받지 않는 점 △차량이나 작업 도구를 직접 구매한 점 △기본급·고정급이 없고 실적에 따라 보수가 산정된 점 등도 근거로 들었다.

최근 법원은 코웨이와 쿠쿠전자 설치기사들이 제기한 퇴직금 소송에선 근로자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놨다. 같은 업종에서 다른 결론이 나와 상급심 판결에 관심이 쏠린다.

최진석/곽용희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