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예산 부담이 상당합니다. 당은 물론 정부도 전혀 준비가 안됐어요.”

국민의힘 관계자는 23일 조건부로나마 국정조사를 수용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내년 예산안 처리 전망이 예상보다 어두워 정부와 여당으로선 국정조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다음달까지 예산안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으면 준예산을 편성해 정부를 운영해야 한다. 준예산은 인건비 등 최소한의 지출만 가능해 정부가 편성한 내년 예산안 639조원 중 절반 정도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준예산이 적용되는 범위가 불명확하고, 구체적인 지침도 없어 상당한 혼란이 불가피하다.

더불어민주당의 행정안전부 장관 업무추진비와 행안부 경찰국 예산 삭감은 정부와 여당이 맞닥뜨린 예산안 협상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 관계자는 “통상 야당이 마음에 들지 않는 예산이 있더라도 부정적인 ‘부대의견’을 달아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넘기는 정도지 아예 삭감하는 사례는 드물었다”며 “경찰국 예산은 경상비 자체를 날렸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서울 용산공원 조성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도 비슷한 사례다. 국민의힘에서는 “대통령실과 조금이라도 연관 있는 예산은 모두 삭감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정은 정부 고유권한인 예산 증액권을 카드로 사용할 예정이다.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예산을 깎을 권한만 있는 만큼 기존에 정부가 삭감하거나 없앤 민주당의 중점 추진 사업 예산과 관련한 양보를 통해 문제를 풀어간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원천 삭감했지만, 민주당이 7060억원 편성을 요구하는 내년 지역화폐사업 예산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여기에 3000억원 정도를 배정하는 대신, 경찰국 예산 등을 되살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민주당이 예산안을 볼모로 추가 요구를 하면 여당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정치권 관계자는 “여당으로선 예산 협상을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