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사, 당근마켓, 오늘의집은 모두 기업가치가 2조원을 훌쩍 넘는 대형 플랫폼으로 성장했습니다. 지금은 수백만의 이용자를 끌어모은 세 플랫폼의 첫 출발은 어땠을까요? 여기에도 공통점이 숨어 있습니다.
생활 속에 스며든 이들은 이용자들끼리 소통하는 '커뮤니티'에서 시작됐습니다. 사람이 모인 덕분에 새로운 사업모델을 추가할 수도 있었습니다.
대학생은 에브리타임으로, 직장인은 블라인드로, 게이머는 디스코드로 모이는 세상입니다. 커뮤니티 기반 스타트업을 한경 긱스(Geeks)가 알아봤습니다.

"당근이세요?" 당근마켓은 국민 5명 중 1명이 쓰는 앱이 됐다. /사진=허문찬 기자
'무신사, 당근마켓, 오늘의집'

생활 속에 스며든 세 플랫폼의 공통점은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이라는 것 외에도 또 있다. 이용자들끼리 소통하는 '커뮤니티'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무신사의 모태는 2001년 문을 연 포털 사이트 프리챌의 '무진장 신발 사진 많은 곳'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다. 신발 '덕후'들이 운동화를 자랑하던 이 커뮤니티는 2005년 무신사닷컴으로 독립해 종합 패션 커뮤니티가 됐다. 커뮤니티에서 웹진, 이커머스로 영역을 넓힌 무신사는 2012년 법인을 설립했다. 이후 국내 1위 온라인 패션 플랫폼으로 발돋움했다.

당근마켓의 첫 출발은 2015년 만들어진 '판교장터'였다. 처음엔 판교 지역 회사원 대상 중고거래 플랫폼이었다. 판교 기업 이메일을 인증해야 이용할 수 있었다. 이후 입소문을 타자 지역 주민으로 이용자의 범위를 넓혔다. '당신 근처'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반경 6㎞의 좁은 지역 기반 '하이퍼 로컬'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성장해왔다. 지금은 국민 5명 중 1명이 쓰는 초대형 앱이 됐다.

오늘의집 역시 인테리어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 앱에서 시작된 사례다. 2014년 커뮤니티 오픈 이후 올해 오늘의집은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 600만명에 달하는 '국민 앱'으로 성장했다.

제 2의 무신사, 당근마켓을 꿈꾸는 커뮤니티 스타트업들의 활약이 이어지고 있다. 단순 대학생 모임부터 넷플릭스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 골프 친구를 구하는 모임 등 분야도 다양하다. 이 회사들은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의 장점을 발판삼아 '이용자 수'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코로나19로 삶의 방식이 '재택근무' '비대면' 등의 키워드로 재편되자 소통의 수요가 늘어난 점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모든 엄마들이 건강해지는 것'... 운동맘 커뮤니티 '히로인스' 운영사 패러다임시프트는 첫 기관 투자금을 끌어모았다.
'모든 엄마들이 건강해지는 것'... 운동맘 커뮤니티 '히로인스' 운영사 패러다임시프트는 첫 기관 투자금을 끌어모았다.

투자금 몰리는 커뮤니티들

24일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운동맘 커뮤니티인 '히로인스' 운영사 패러다임시프트는 최근 베이스인베스트먼트로부터 4억원의 시드(초기) 투자를 유치했다.

히로인스는 출산 이후 엄마들의 운동 습관 형성을 돕는 '운동 일기'와 함께 엄마들끼리 건강에 대한 노하우와 고민을 나누는 커뮤니티가 주력 서비스다. 투자를 주도한 이무영 베이스인베스트먼트 이사는 “이 회사는 대규모 커뮤니티 서비스를 구축해 본 경험이 있는 인재들로 구성돼 있다”며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수요를 포착해 이를 사업 기회로 연결시키는 데 최적화된 회사"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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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넷플릭스를 혼자 보는 사람들을 위한 커뮤니티도 등장했다. '넷플연가' 운영사 세븐픽쳐스는 지난 9월 14억원 규모 프리 시리즈A 투자를 받았다. 스트롱벤처스, 캡스톤파트너스,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 등 대형 벤처캐피털(VC)의 선택을 받았다.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4월 문을 연 넷플연가는 넷플릭스와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이용자들이 각자 관심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다. 최근엔 OTT를 넘어 와인, 향수, 재즈, 베이킹, 철학 등 폭넓은 주제에 대한 깊은 경험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넷플연가에선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 모임이 열린다. 약 20만원의 3개월짜리 멤버십 비용을 결제하면 서울 홍대, 을지로, 사당 등에서 3주에 한 번 열리는 정기모임에 참석할 수 있다. 자연스레 뒤풀이나 '번개' 만남도 이어지곤 한다. 넷플연가 관계자는 "모임은 항상 필요해왔지만 재택근무 등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하면서 사적인 커뮤니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며 "규칙, 콘텐츠 구성, 모객과 홍보 등 번거로운 커뮤니티 운영 과정을 대신해 '커뮤니티 크리에이터'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회사를 설명했다.
문토는 MZ세대를 겨냥했다. 이용자 중 70% 이상이 20~30대다.
문토는 MZ세대를 겨냥했다. 이용자 중 70% 이상이 20~30대다.

취향 맞는 사람끼리 모인다

넷플연가처럼 관심사나 취향을 바탕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한 플랫폼들의 성장세가 이어지는 중이다.

관심사 기반 커뮤니티 플랫폼 문토는 등산, 러닝부터 맛집 탐방, 영화토론, MBTI별 모임 등 MZ세대를 겨냥한 서비스를 내놨다. 이용자들끼리 만든 모임에 참여할 수 있는 '소셜링'이나 일상을 공유하는 피드형 SNS인 '라운지', 온라인 채팅형 플랫폼 '클럽' 등이 주요 기능이다. 모임 참여자들의 취향과 이력을 확인할 수 있는 프로필 기능과 믿을 만한 사람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매너 온도' 등 이용자 친화 요소를 넣은 게 특징이다.

반응은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NHN데이터에 따르면 문토는 지난달 기준 앱 다운로드 수가 5월 대비 102.2% 증가했다. 지난해 초 서비스가 출시된 이후 회원 수 30만명에 육박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누적 모임 수는 6만 개를 넘어섰다.

오프라인 모임 플랫폼 남의집도 비슷한 사례다. 카카오 출신 김성용 대표가 만든 남의집은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의 오프라인 모임을 연결한다. 가정집, 작업실, 동네 가게 등 다양한 곳에서 모이게 된다. 호스트가 모임을 만들면 게스트가 신청을 통해 모임에 참여하는 구조다. 실링왁스나 요가, 그림 그리기, 도자기 빚기 등의 활동을 함께 하며 대화를 나누는 '힐링'에 초점을 맞췄다.

남의집은 '로컬 커뮤니티' 생태계에서 잠재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당근마켓으로부터 1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지금까지 호스트는 2000명, 게스트는 1만5000명 이상을 끌어모았다. 진행된 모임 수도 5000개를 훌쩍 넘기며 성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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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가 된 버티컬 플랫폼... '찐' 이용자는 여기에

특정 직군에 초점을 맞춘 버티컬 플랫폼 형태의 커뮤니티도 눈길을 끌고 있다. 틈새시장을 공략, 보다 더 '끈끈한' 이용자들을 끌어모으는 방식이다. 단순 커뮤니티의 역할을 넘어 이용자를 묶어두기 위한 콘텐츠를 곳곳에 심어두기도 한다. 진성 이용자를 확보해 커머스나 교육과 같은 새로운 사업모델을 시도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데니어는 치과의사, 치위생사 등 치과업계 종사자를 위한 커뮤니티를 선보였다. 치과의사들이 모인 '모어덴'이나 치위생사가 모인 '치즈톡', 치과의사와 치기공사를 연결하는 '치연' 등이 주요 서비스다. 관련 자격증을 인증받은 사람들만 모일 수 있다. 자칫 민감할 수 있는 임상 소식 등 업계 정보를 관계자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게 만든 게 특징이다.

1만 명 이상의 치과의사가 활동하고 있고, 전국 치대생 3분의2가 이 커뮤니티를 이용하고 있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환자 대응법이나 의료법, 규제 이슈와 같은 업계 종사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콘텐츠를 카드뉴스 형태로 제작하기도 한다. 회사는 확보한 충성 이용자를 기반으로 향후 치과용품 이커머스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고수플러스가 내놓은 고시원 구하기 앱 '독립생활'. 커뮤니티를 통해 모은 8만명 이상의 회원은 서비스 고도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가다.
고수플러스가 내놓은 고시원 구하기 앱 '독립생활'. 커뮤니티를 통해 모은 8만명 이상의 회원은 서비스 고도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가다.
고시원 운영자와 입실자를 위한 커뮤니티인 '아이러브고시원'엔 8만8000여 명의 회원이 있다. 고시원 창업과 운영, 전국 고시원 시설에 관한 정보가 공유된다. 2008년부터 시작된 이 커뮤니티는 2020년 고수플러스라는 법인을 세웠다.

고수플러스는 미리 확보해 둔 방대한 회원을 발판삼았다. 고시원 시장에 확장현실(XR) 기술을 접목했다. 일일이 발품을 팔아 방을 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고시원 검색부터 입실까지의 번거로운 과정을 '원스톱'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XR을 통해 사진만으로는 제대로 알기 어려웠던 고시원 내부 수납공간, 가구사이즈 등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타깃 소비자층이 모인 커뮤니티 덕분에 빠른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내 최초의 인공지능(AI)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모두의연구소는 AI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커뮤니티엔 1000명 이상의 현직 AI 종사자들이 활동 중이다. AI 관련 연구 주제를 선정하고 사람을 모으면 일종의 소규모 연구실이 꾸려진다. AI 교육의 격차를 해소한다는 취지다. 오프라인에 AI 학교인 '아이펠'도 세웠다. 커뮤니티를 통한 집단지성이 수요에 비해 부족했던 AI 교육자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밖에 아파트 소유자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채팅방인 얼마집(한국프롭테크) 같은 플랫폼도 버티컬 커뮤니티로 꼽힌다.
관심사 비슷한 사람들 모았더니 대박…'커뮤니티' 스타트업의 세계 [긱스]

디스코드, 레딧도... 글로벌 트렌드 된 커뮤니티

해외에선 커뮤니티 사업모델만으로도 데카콘 기업(기업가치 10조원 이상 비상장사) 반열에 오른 스타트업이 등장했다.

음성 채팅 플랫폼 디스코드가 대표적이다. 온라인게임 이용자들이 게임 중 의사소통을 할 때 필수로 쓰이는 도구로 자리잡았다. 미국을 중심으로 학교 동아리와 같은 일상에서도 활발히 사용되는 플랫폼이 됐다. 최근엔 국내에서도 게이머들 외에 스타트업 등 회사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2015년 출시된 디스코드는 코로나19를 거치며 가파르게 성장했다. 이용자 수는 1억5000만명에 달한다. 2019년 4500만달러(약 600억원)였던 매출은 2020년 1억3000만달러(약 1700억원)로 뛰었고, 지난해엔 3000억달러(약 4000억원)의 매출을 거뒀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업가치는 15억달러(약 2조원)까지 불어났다.

'밈 주식' 열풍을 몰고 온 미국 커뮤니티 레딧은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레딧에 모여 주식 정보를 공유하자 커뮤니티도 덩달아 시장의 관심을 받았다. 레딧은 밈 주식 열풍을 이끈 주역으로 꼽힌다. 하루 평균 50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다녀가는 커뮤니티다.

한국인 문성욱 대표가 미국에서 창업한 블라인드(팀블라인드) 역시 순수 커뮤니티 기능만을 앞세워 성장해왔다. 직장인 커뮤니티로 국내에서 500만 명 이상의 회원수를 확보했다. 또 순수 국내 회사 중에선 대학생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비누랩스)이 600만 명의 회원 수, 300만 명의 MAU를 모았다.
"직장인은 모두 여기로 모인다"... 500만 회원 수를 확보한 블라인드는 새로운 공론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커뮤니티가 뜨는 이유는

커뮤니티는 플랫폼 스타트업 성장에 있어서 일종의 성공방정식으로 불린다. 당근마켓이나 무신사, 오늘의집처럼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입지를 다져 온 선배 스타트업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플랫폼 충성 이용자를 확보하기 용이하다는 게 커뮤니티가 가진 장점이라는 분석이다. MAU와 같은 지표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플랫폼업계에서 이용자를 많이 붙잡아두는 것은 회사의 덩치를 불리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이용자가 많아야 플랫폼에 붙일 수 있는 광고 수익도 늘어난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개인화 비즈니스에 뛰어들기도 쉽다. 이커머스 사업을 붙이기도 쉽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커뮤니티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조가연 가우스벤처스 이사는 "이커머스 플랫폼을 보더라도 단순히 상품을 사이트 내에 배치해두는 것만으로는 소비자를 유인할 수 없다"며 "오늘의집 역시 인테리어 제품들 판매 이전에 이용자들끼리 커뮤니티에 가구 사진을 찍어 올리고 정보를 공유한 게 소비자 입장에서 볼거리로 작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어떤 플랫폼이든 '자생적'으로 이용자를 모으기 쉬운 게 커뮤니티 비즈니스"라고 덧붙였다.

다만 커뮤니티만으로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나가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광고 수익만으로는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이나 틱톡 같은 초대형 플랫폼이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장을 감안하면 단순 커뮤니티형 모델로 성과를 만들어내기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VC업계 관계자는 "빙하기가 왔다는 투자업계 분위기 상 지금은 초·중기 스타트업들에게도 수익성을 요구한다"며 "대부분의 커뮤니티 스타트업들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새로운 수익모델을 붙일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